글쓰기 로드맵 101
스티븐 테일러 골즈베리 지음, 남경태 옮김 / 들녘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읽을만한 책이 없나 책장을 뒤적거리다 아주 오래전에 산 이 책을 발견했다. 사서 한번 보고는 그냥 처박아 두었던 것 같다. 매우 짧은 101개의 글쓰기 조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경박스러움에 무척이나 실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대체 이걸 왜 샀을까... 지금은 품절이 된 책이지만,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기대하고 대출할 수도 있겠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일은 아마도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사들이는 것이다. 내가 산 글쓰기 책들도 여러 권이다. 그 가운데 그나마 기억에 남는 책은 일본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쓴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정도이다. 나머지는 읽고 나서 돈만 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요새 불고 있는 주식 열풍에서 주식을 처음 시작하거나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그럴 것이다.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책들이 주식과 재테크 관련 책들이라고 들었다.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를 시작하려고 할 때 제일 손쉬운 방법이 '책 사는 일'이기는 하다. 


  글쓰기 책들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글이 저절로 써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이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건질만한 조언이 있다면 '무조건 쓴다'이다. 그냥 써보는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괜찮은 글쓰기 책을 읽었다 해도 정말로 자신이 직접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쓰기 책 대부분은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뭐랄까, 이렇게 글쓰기 책을 읽었으니 더 잘 쓸 수 있겠지, 하는 약간의 자기 위안을 느낄 수는 있겠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글쓰기 책들을 열심히 읽고도 글을 쓰지 못했다. 정말로 써야겠다는 절박함이 없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물론 '무조건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이 당장 나오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는 어쩌면 오랜 시간과 경험과 노력의 축적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생각을 했는지, 삶의 이력과 그 경험의 깊이는 어떤 것인지 누군가가 쓴 글에는 그런 많은 것들이 압축되어 있다. 독자는 자신이 읽는 어떤 '글'에서 그 모든 것들을 가늠해 본다. 그 글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보낸 세월과 그것을 알아봐 주는 독자가 만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글을 쓰는 이들이 소망하는 나름의 지향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엇이든 시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좋다. 무슨 대단한 작품을 써내겠다는 마음은 살짝 내려놓자. 매일, 꾸준히, 작은 것이라도 써보는 습관을 들여 본다. 일기를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작년 가을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그렇다. '글쓰기'는 매일 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잘 돌아가지 않는 기계와 같다는 점이었다. 하루를 건너뛰고 나서 다음날 글을 쓸 때는 어떻게 글머리를 열어야 할지 뭔가 영 어색한 느낌이 든다. 


  작년 가을쯤에 EBS 'Class e'에서 작가 장강명의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정말 유용하고 좋은 강의였다. 그가 알려준 글쓰기의 조언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조언이었다.


  '그냥 가만히,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모니터(또는 종이)를 응시하세요.'


  일단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으면 오직 글쓰기만 생각하라는 것이 그가 찾아낸 답이었다. 나는 그렇게 글쓰기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 그리고 진심을 담은 글이라면 언젠가는 그것을 알아봐주는 독자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믿음을 갖고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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