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층의 소녀
안녕하세요, 나를 보고 인사하는 여학생이 있다
같은 라인 6층에 사는 여학생이다 내 기억으로는
그 집에는 젊은 부부가 살았고, 자녀가 셋인지 넷인지
되었던 것 같다 부부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자였고,
꽤나 금슬이 좋아보였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인사성이
밝았다 오늘 나에게 인사하는 여학생이 그 집의 막내인지
아니면 그 막내의 언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아무튼 요즘 같은 세상에
저렇게 예의 바른 아이가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신기하고
고맙고 그랬다 응, 안녕, 그렇게 대답하고 가려는데, 오늘이
12월 30일이니까 뭔가 새해 덕담을 해주어야하지 않을까,
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이미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버렸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건강하게 잘 지내렴, 공부는 너무 열심히 안해도 된다
집에 와서도 나는 6층의 그 아이에게 해줄 말을 혼자서
생각해 보고 있었다 공부 이야기는 괜한 말일까?
저 나이에 어른들에게 맨날 듣는 소리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일 텐데, 나는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른들 머릿속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업을 얻고, 돈 많이 버는 것, 그런 사고 회로가 장착이
되어있다 돈을 많이 벌면 좋기는 하겠지 모두들 돈에 목을
매고 살고 있으니까 길 가다 넘어진 외상의 후유증으로
오늘은 안과에 다녀왔다 병원에는 환자들이 무척 많았다
3년 전 개업할 때는 3명으로 시작한 안과 병원은 이제
의사가 5명이다 이 병원은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돈을 너무나도 잘 벌기 때문에 다들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세상은 괜찮은 걸까?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돈으로만
정해지는 세상, 나는 거기에 반박할 그 어떤 대답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도 공부를 좀 잘하지 못하는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 돈 말고 다른 가치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웃의 어른을 보고 깍듯이 인사를 챙기는 예의 바르고
착한 그 6층의 소녀가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나무를 흔들어대는 흐린 날, 창밖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