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는 그만 써야지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일기장에 올해 있었던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대해 쓴다 어제 그걸 쓰는데, 좋은 일은 겨우 2개에
불과했다 나는 시를 써서 좋았다, 라고 써놓았는데, 써놓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시를 써서 좋았는가? 그냥 나 혼자서
쓰고는 좋았다, 고 할 것이면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열심히, 써가지고는 어디 공모전에다 내려고 하니까
문제였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시집들을 보다가 심한
이질감을 느꼈다 도무지 알아먹지 못할 정서와 시어들의
잔치판이었다 그랬다, 시에도 유행이 있는 것이다 무엇엔들
유행이 없겠는가 무슨 도급 공사 담합하듯이 기성 시인들과
평론가들이 내세운 기준에 맞추어서 시를 써내야 등단을
하든가 할 수 있는 거였다 그 기준이라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철저한 자기들만의 패거리 리그에 들어올 멤버 찾는 것 같았다
웃기게도 거기에는 시인들의 첨삭 과외와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 강의까지 있었다 참으로 역겹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단순히 첨삭을 넘어서 거의 대필 수준의 시로 등단한 이도
있었다 등단을 하고, 자기 시를 쓸 지면을 찾고, 시 창작
강의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꾸역꾸역 시집을 내고
하는 시인의 삶이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였다
물론 그 시작점에는 등단, 이라는 바늘구멍이 존재했고, 그걸
뚫지 않고는 일반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담벼락에다 끄적거리는
낙서 수준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1년 써보고, 이리저리 응모해서
번번이 떨어져 봤으면 되었다, 는 생각이 든다 무슨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올 한 해 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제는 소설 쓰기로 방향을 바꾸어야겠다, 고 마음을 먹는다
물론 그것도 쉽지 않겠지만, 소설이 공모나 투고의 범주에서
시보다는 더 큰 개성과 자유가 허용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든 글을 쓸 시간을 쥐어짜 내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어렵다 내가 글을 쓸 운명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써낸 글이
언젠가 독자를 만날 수 있다면, 결국 글은 써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