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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겐 1
나카자와 케이지 글.그림, 김송이.이종욱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만화의 저자인 나카자와 케이지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으로 가족을 잃었으며, 작가 자신도 피폭의 후유증을 앓으며 당뇨병으로 투병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맨발의 겐』은 바로 그러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려진 만화입니다.
『맨발의 겐』은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만화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루고 있는 진실이 너무나도 참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원폭이 떨어질 당시의 끔찍한 상황과 그 속에서 죽어갔던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냅니다. 살이 녹고 온몸에 파편이 박힌 채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리 만화라도 해도 보는 것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작가가 이 만화를 그린 이유는 바로 그러한 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또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 참혹한 진실에 대해서 알리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맨발의 겐』은 단지 원폭 투하의 처참한 실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의 고발정신은 전쟁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본 천황과 군국주의자들,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 정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만화의 주인공 겐과 가족, 친구들은 모두 작가의 대변인이 되어 죽음과 공포만을 가져다준 이들에게 준엄하게 책임을 묻습니다. 졸업식에서 천황에 대한 맹세와 국가 부르기를 거부하는 겐의 모습에는 작가 뿐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만화에서 겐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생명력 있는 보리처럼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며 겐은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겐이 보여주는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와 사람들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나는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겐이 우연히 만나 동생으로 삼게된 원폭 고아 류타가 보여주는 낙천주의 또한 이 만화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특히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류타는 기쁘거나 슬플 때 자신의 심정을 담은 노래를 부르며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줍니다.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류타에게는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는 긍정의 힘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있습니다. 류타도 겐처럼 보리의 생명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맨발의 겐』은 화려한 색감의 그림체로 그려진 만화가 아니며,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 만화를 보는 동안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만화가 들려주는 진실은 참으로 감동적인 것입니다.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비극을 딛고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서 강한 생명력과 희망의 위대함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 만화를 그리게 된 이유를 다시는 전쟁과 원폭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참혹한 고통을 넘어서서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지가 『맨발의 겐』에는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겐이 결국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입니다.
보리처럼 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며 겐은 어떠한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있어도 견디어냅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삶은 위대한 것입니다. 원폭의 비극을 딛고 일어선 겐이 들려주는 가슴뭉클한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도 보리의 생명력을 느끼고 배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