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끼


무지근한 통증은 너와 함께 온다
나는 네가 절대로 그립지 않다
너 없이도 잘살고 있다 하지만
너의 부드러운 눈길을 기억한다
아주 약한 안약에서부터 센 안약까지
차례대로 넣어본다 나는 너를 막아야 한다

나은 것 같다가 다시 아프고 가렵다
나는 조금씩 끈기를 잃어가고 있다
너는 물기를 머금은 염화칼슘처럼 끈덕지게
내 눈가를 파고들며 묻는다 이길 수 있니?

곪아서 터지게 내버려둘 자신이 없으므로
열심히 눈을 닦아주며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대로 그렇게 잠들어 줄 수 있다면
그래,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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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剽竊)


남의 나라 작가 소설 베껴서
문학상도 타고
문학상 심사위원도 하고
교수 노릇도 한다

끼리끼리
짬짜미
붉어진 얼굴
더 붉어질 것도 없으니

악독(惡毒)한 시대를 견디려면
영악(獰惡)해야 하는데
우직한 글은 악덕(惡德)이 되어 버려

비릿하게 썩은 내가 나더라도
향내 나는 표절(剽竊)의 종이로
잘 포장해서 먹고사는 것들

아,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아는 걸
눈을 찡끗,

부끄러움을 모르면
그렇게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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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네요
다행히 엄마가 잘 적응해서 지내세요
그런데 한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요
엄마를 만나러 가면 엄마한테서 냄새가 나요
거기서는 목욕을 일주일에 한 번만 시켜준대요
이 더운 여름에 일주일에 고작 한 번이라니,
다른 곳도 그런가요?
네, 보통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들었어요
두 여자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엄마는 여름만 되면 땀을 됫박으로 흘린다
요양원에 가고 싶어하는 노인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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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참외


쇼핑몰에서 못난이 참외를 주문했다
정말로 못난이 참외가 집으로 왔다
너무 작고 너무 익은
참으로 못난 참외들이 잔뜩

장사꾼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내다 팔지도 못할 찌끄러기 참외를 파는 것
그걸 사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다
진짜로 못난이를 보내줄까?
좋은 거 몇 개는 보내주겠지

하지만 매우 정직한 장사꾼은
참말로 못난이 참외를 한가득 보내준다
내일이면 익어 문드러질 그런 못난이들을

다 인생의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못난이 참외가 물크러지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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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狂人)


그는 40대 후반의 남자로 보였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해장술을 들이켰다
오전 10시, 빛바랜 퍼런색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시킨다

시를 써야 할 시간

이 찌끄러기 같은 것들아
너희들이 인생을 알아?
그러면서 무슨 시를 쓴다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
자비 출판(自費出版)으로 4권의 시집을 냈지만
아무도 그를 시인으로 불러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쓴 시를 찬찬히 읽다가
금세 지겨워져서 그만두었다
그는 재능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어중간한 재능
후미진 이발소에 걸린 유화(油畫)같은 시

장맛비가 예고된 흐린 뒷골목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에는
소주 세 병과 마른오징어 한 마리
싸구려 월세방의 침대에 앉아서
경건하게 시상(
)을 다듬는다

꿀꺽,
시는 그렇게 그의 인생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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