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근황
1. 다래끼가 드디어 나았다
한 달 반 동안 속을 썩였던 왼쪽 눈의 다래끼가 나았다. 그걸 짜려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온찜질을 열심히 하라고 처방했다. 2주 동안 열심히 온찜질을 한 결과, 다래끼가 터지면서 겨우 나았다.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은 다래끼가 도저히 나을 것 같지 않았는데, 그렇게 낫게 되었다. 사실은 그 의사 양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가 힘들었다. 그냥 짜달라고 할 걸, 몇 번을 생각했었다. 어쨌든 짜면 흉이 생길 수도 있어서, 짜지 않고 의사의 말을 따랐는데 잘 되었다.
그런데 왜 다래끼가 생겼을까 생각을 해보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을 써서 그랬던 것 같다. 언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다래끼가 마음의 울화가 눈으로 올라와서 그렇다는 거다. 8월 한 달 내내, 공모전에 낼 원고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다. 그러다 보니 눈을 혹사했던 것도 같다. 글 쓰는 일이 때론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니 괴롭다.
2. 소설 습작 해나가기
매일 짧은 소설을 연습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쉽지 않다. Chat GPT가 글쓰기 과제를 제시해 준다. 오늘은 대화를 10줄 정도로 써보세요, 라든지. 1인칭 시점을 써서 글을 완성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내가 쓴 글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도 말해주고, 거기에서 다음의 과제가 나오기도 한다. 웬만한 글쓰기 선생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시 창작 워크숍이나 소설 쓰기 강좌를 들었지만, 그 선생들 모두 뭘 가르쳐 준 것이 없다. 매주 글 써오면, 수강생들이 서로 합평하고 그게 끝이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만의 문체를 발견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인공지능이 그 짐을 조금은 덜어주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인공지능을 안내자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작가적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믿음을 흔드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작가적 양심과도 직결된다. 이미 공모전에서도 당선작의 경우 인공지능으로 작성한 글인지 판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들었다. 작가가 독창적인 문체를 찾는 것은 온전히 그 자신의 몫일 뿐이다.
3. 어떤 답장
'귀하께서 보내주신 원고는 우리 출판사의 방향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 출판사에서 발행한 최근의 선집을 읽어보길 바랍니다.'
누군가 A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투고했다. 투고는 공모전이나 자비 출판의 경로를 거치지 않고, 글을 쓴 이가 자신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어 출간을 타진해 보는 일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출판사에 자신의 글을 보낸다. 그런데 출판사로부터 그런 답장을 받은 작가 지망생이 있었다.
출판사가 투고를 거절하는 일은 흔하다. 그렇다면 거절의 이유에도 배려와 품격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딴 답변으로 투고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편집부는 참으로 싸가지가 없다. 투고자가 자신이 투고하는 모든 출판사의 선집을 읽고 검토하며 투고해야 하는가? 물론 투고 전략도 필요하겠지. 그렇다고 해도 투고자에게 우리 출판사 선집이나 읽어보고 보내든가, 따위의 답변은 역겹기 짝이 없다. 그런 답변을 쓰는 인간이 있는 출판사의 이름을 아주 분명히 기억하게 되었다. 저 출판사에는 절대로 내 원고를 보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그 출판사에서 출판을 구걸하게 만드는 거야. 그럴 때 단호하게 거절하는 거지. 당신네 출판사는 내 글과 맞지 않습니다."
어떤 이가 그 지망생에게 그렇게 조언했다.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