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똑같은 옷을 두 벌이나 산 거야?"

  내가 등산용 재킷을, 그것도 똑같은 옷을 두 벌 샀다고 하자 동생은 그렇게 물었다. 글쎄, 왜 그랬을까? 나는 동생의 그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이 글은 그 대답을 찾기 위한 나 자신의 자아성찰기가 될 것 같다.

  그 재킷은 검정색의 등산용 솜 잠바였다. 그 잠바의 원래 가격은 299,000원. 기껏해야 합성 솜이 누벼진 그 잠바가 비싼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 합성솜의 이름이 '프리마로프트(PrimaLoft)'였기 때문이다. 프리마로프트는 미군의 재킷과 침낭에 쓰이는 특수 기능성 소재이다. 가볍고 따뜻한 데다가, 보관과 세탁도 용이하다. 고가의 등산 의류 브랜드에서는 프리마로프트로 된 의류들을 이전부터 내놓았다. 나는 무척 비싼 가격 때문에 그 잠바는 살 생각도 안 했다. 그렇다고 내가 등산을 다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잠바가 정말로 그렇게 좋은지 궁금하기는 했다.

  바로 그 프리마로프트 잠바가 얼마 전, 갑자기 할인에 들어가서 10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이건 사야 해. 나는 이번이 아니면 저 잠바는 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했다. 색상은 검정색과 노랑색, 흰색이 있었다. 언제나 검정색은 진리이다. 품절이 뜨기 전에 내가 사려는 사이즈를 선점해야지. 그때, 등산 관련 사이트에서는 이 프리마로프트 잠바 대란이 일어났었다. 다행히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검정색의 그 솜 잠바를 받을 수 있었다.

  택배 박스를 여는 순간, 나는 이 잠바가 정말이지 마음에 무척 들었다. 이 옷은 등산복 같지 않았다. 그냥 어디 나갈 때 가볍게 입고 나가도 괜찮은 옷처럼 보였다. 거기에다 검은색이라 튀지도 않는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 나는 이 옷을 입고 산책을 나갔다. 세상에, 바람이 옷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 옷은 냉기를 아주 효과적으로 차단해 주었다. 거기에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아서 아주 편했다. 나는 이 옷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걸 하나 더 사면 어떨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냥 한 벌을 더 샀다. 색깔과 사이즈는 동일했다. 노란색과 흰색이라는 옵션이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 색깔의 옷을 입고 밖을 돌아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 색깔의 옷들이 필요하다. 등산복의 색상이 화려한 이유는 조난이나 위기 상황 시에 눈에 잘 뜨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동네 공원에 산책이나 다닐 뿐이었다. 검정색 말고는 다른 색의 옷은 필요 없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솜 잠바'를, 그것도 똑같은 것으로 두 벌을 샀다.

  막상 그렇게 잠바를 받아놓고 보니 한숨이 나왔다. 아니, 아무리 이 잠바가 좋아도 그렇지, 같은 옷을 또 사다니...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는 '프리마로프트'에 홀린 것 같았다. 이 좋은 솜 잠바를, 다시는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는 나름의 절박함이었을까?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입어도, 이 솜 잠바가 닳아서 새옷을 살 일이 없을듯 하다. 

  '그저 이 잠바가 좋았을 뿐'이라고 하면, 내가 이 잠바를 똑같은 것으로 한 벌 더 산 이유가 될까? 여전히 나는 동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느낌이다. 옷장에 잘 포장해서 넣어둔 또 한 벌의 잠바를 볼 때마다 내 기분은 이상하게 착잡해진다. 그렇다. 질문을 바꾸어 보자. 왜 한 벌로는 만족할 수 없었을까?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름의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잘 지키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솜 잠바만큼은 그 원칙을 지킬 수가 없었다. 스스로 깨버린 원칙에 대해 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옷은 갑옷 같은 겁니다. 매일 우리는 삶이라는 전쟁터로 나갑니다. 그럴 때,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을 잘 챙기는 건 중요하죠."

  빌 커닝햄(Bill Cunningham, 1929-2016)은 뉴욕의 거리 패션을 담은 유명한 사진작가이다. 문득, 나는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나는 이 하잘것없는 솜 잠바를 그 갑옷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좋은 갑옷을 구했는데, 똑같은 것으로 하나 더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는지도.


*빌 커닝햄의 삶을 담은 다큐
'Bill Cunningham New York(2010)'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168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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