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인 올해는 무슨 마가 끼었는지 나에게 이런저런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자주 방문할 일이 생겼다. 여러 과의 전문의를 만나면서 내가 느꼈던 바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1. 환자, 네가 의사 말을 안 믿어서 아픈 거야: Retronychia가 뭔지도 모르는 피부과 의사
올해 초, 왼쪽 엄지발톱이 자라지 않은 채 내내 붓고 아팠다. 2월에 피부과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는 그냥 두면 된다고 했다. 무좀도 아니고, 염증이 생긴 것도 아니니 발톱을 내버려 두란다. 그럼 자라나거나 아니면 빠지거나 할 거라고. 그 후 2달이 지났지만, 발톱은 자라지도 않았고, 빠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붓고 아파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4월에 다시 방문한 그 피부과에서 의사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린다. 내가 의사인 자기 말을 신뢰하지도 않고 이런저런 연고와 약을 발라서 악화된 것이라고. 그러면서 피부과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날더러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자가처방으로 소염진통제와 항생제 연고를 발라서 발톱이 그리 된 것일까? 명백하게 그건 아니었다. 문제는 Retronychia가 뭔지도 모르는 그 피부과 의사에게 있었다. 발톱, 주로 엄지발톱에 외상이 가해지면 발톱 뿌리 부분의 성장판이 손상된다. 그렇게 되면 발톱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마치 떡판이 겹겹이 쌓이듯 두껍게 겹쳐 자라면서 통증과 염증을 야기한다. 그런 경우에 유일한 치료 방법은 발톱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내버려 두라고? 의사의 말을 믿지 않는 환자인 내가 문제라고? 자신의 한정적인 임상 경험에만 의존해서 제대로 된 진단도 내리지 못하는 의사는 오만하고 무능하다.
Retronychia로 고생한 내 경험담은 여기에 기록해 두었다.
https://blog.aladin.co.kr/sirius7/14695630
2. 난 망막만 본다니까: 사소한 결막 질환을 대학 병원에 가서 보라는 안과 의사
지난 4월에는 책상 스탠드의 전구를 갈다가 유리 조각이 내 눈에 들어가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 다음 날, 안과 진료를 받고 유리 조각을 제거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눈의 이물감과 불편함이 지속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눈 가장자리의 결막 안쪽에는 조그만 수포 같은 것이 생겼다. 며칠 후에 그 안과에 다시 방문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자기는 결막에 생긴 게 뭔지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진료의뢰서를 써줄 테니, 나에게 대학 병원에 가보란다.
그 의사는 대학 병원 안과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환자를 봐온 사람이다. 그런 안과 전문의가 결막에 생긴 작은 질환이 뭔지 모른다고? 대학 병원 안과가 동네 점방인가? 환자인 나는 대학 병원에 예약해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진료를 기다려야 한다. 정말로 그 의사는 내 눈의 결막 질환이 뭔지 몰라서 그랬을까? 그는 환자인 내 불편과 고통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뒤에 밀린 환자 진료를 위해 나를 얼른 진료실에서 내보내고 싶어 했을 뿐이다. 나는 의사에게 무책임하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의사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난 망막만 봅니다. 지금 환자들 밀려서 환자분하고 말할 시간 없습니다."
의사가 돈벌이에 집착하면 그렇게 된다. 나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진료실을 나왔다. 결국 나는 다른 안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진료실에서 주삿바늘로 결막에 생긴 수포를 터뜨리는 것으로 끝났다. 아주 간단한 처치였다. 새로 만난 안과 의사 선생님은 눈도 잘 보고,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명의였다. 나는 이 경험을 다음의 글에 남겼다.
https://blog.aladin.co.kr/sirius7/14714480
3. 어디가 아픈지 빨리 말해: 무성의한 병력 청취에다 예의도 없는 이비인후과 의사
지난여름에는 한 달 넘게 목이 붓고 아팠다. 좀 큰 병원에 가서 목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합병원에서 두경부를 전문으로 보는 이비인후과 의사를 찾았다. 이 의사는 나름 두경부 전문 명의로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의사라면 내 목의 질환을 잘 봐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그 의사를 만난 지 몇 분이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내가 어떻게 아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의사가 내 말을 뚝 자르더니 묻는다.
"그래서 환자분은 어디가 아프다는 겁니까?"
내가 그 의사에게 이야기한 지 2분이나 되었을까? 왜 저 의사는 환자의 병력 청취를 저따위로 하는 것일까? 저런 사람이 과연 명의라고, 환자를 잘 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종합병원에는 늘 환자들이 넘쳐나고 5분 단위, 10분 단위로 진료 예약이 잡힌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의 병력 청취를 그딴 식으로 하는 것이 의사로서 정말로 잘하는 일인가? 병력 청취는 환자 진료의 기본이다.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환자에 대한 예의도 없다. 만성 편도선염으로 진단을 내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편도선이 좀 부어서 그래요. 정 힘들면 편도선 절제 수술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나이 들어서 그런 수술 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 내가 좀 나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따위로 말하는 건 아니지. 병력 청취는 개나 줘버리고, 환자의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참으로 그는 저렴한 태도를 지닌 의사 양반이었다. 나는 당시의 불쾌한 경험을 다음의 글에 남겼다.
https://blog.aladin.co.kr/sirius7/14814494
4.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위내시경 하면서 한마디도 안 하는 목석같은 내과 의사
11월에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나는 위내시경은 진정 내시경으로 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충분히 참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 내시경을 하는 경우에 검진자가 힘든 이유는 구역 반사(嘔吐反射, gag reflex) 때문이다. 인체는 목 안쪽으로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반사 작용으로 대응한다. 당연히 내시경 같은 기구가 들어오는 것을 맨정신으로 참아내는 것은 괴로운 경험이다. 위내시경할 때,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의 불안을 줄이고 안심시켜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런데 이번 검진에서 만난 위 내시경 의사는 내시경을 하는 과정 내내,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구역 반사가 심해서 내시경이 잘 들어가지 않자, 그냥 내 목에서 내시경을 도로 뺐다. 나는 내시경이 목에서 나오는지도 몰랐다. 아마도 그 의사는 나름대로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환자인 내가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서 내시경이 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고 두 번째에서야 내시경이 겨우 들어갔다. 내시경이 내 위장을 들쑤시는 동안에도 나는 도대체 이 과정이 언제쯤 끝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검사가 끝나서 내시경이 나온다고 간호사가 알려주었다. 이 간호사는 내시경을 받는 동안, 내 머리를 꽉 잡고 마구 뒤흔들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내시경 의사에다 무지막지한 간호사였다.
환자와 그 어떤 소통도 하지 않는 그 의사는 환자를 도대체 뭘로 생각하는 걸까? 환자인 나는 자신의 내시경 경험 케이스를 더하기 위한 도구인가? 그 어떤 환자도 의사에게 도구로 취급되길 원하지 않는다. 이 끔찍했던 내시경 체험을 나는 글로 기록해 두었다.
https://blog.aladin.co.kr/sirius7/15043804
엄밀히 말하면 의사도 환자에게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매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올해 진료실에서 만난 위의 4명의 의사는 그런 서비스 마인드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들이었다. 아마도 AI로 대체될 직업군 가운데 '의사'는 가장 나중의 목록에 있을 것이다. 저런 최악의 의사들을 만나느니, 나는 차라리 인공지능 의사를 만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아픈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 괴로운 마음도 헤아려 주는 의사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고 나는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