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적 탐욕이 음악 축제와 만났을 때:

Woodstock 99: Peace, Love, and Rage(2021)


  프로모터인 Michael Lang과 John Scher는 1994년, Woodstock의 영광을 재현하는 뮤직 페스티벌을 뉴욕에서 열었다. 축제는 평화롭게 치뤄졌으나, 갑작스럽게 내린 비 때문에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5년 후, 두 사람은 새롭게 Woodstock '99를 기획한다. MTV에서는 축제 전기간의 공연을 생중계하기로 했다. 뉴욕 Rome에서 열린 축제에 무려 40만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DMX, Limp Bizkit, Korn, Red Hot Chili Peppers, Rage Against the Machine, Metallica 같은 뮤지션들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 축제는 성황리에 끝났을까? 다큐 'Woodstock 99: Peace, Love, and Rage(2021)'의 감독 Garret Price는 시작부터 못을 박는다. "그 축제는 공포 영화 같았습니다."

  1969년의 Woodstock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그 시대의 반문화(counter culture)를 대표하는 평화와 사랑의 축제이다. 다큐 'Woodstock(1970)'으로 우드스탁은 일종의 신화적 상징성을 획득했다. 그럼에도 그 축제의 이면에는 폭력과 마약, 성범죄와 같은 문제가 엄연히 존재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Woodstock '99는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는커녕 오명만을 뒤집어 쓴다. 지독한 상업주의와 결합한 이 음악 축제는 폭력과 방화, 총체적인 혼란으로 점철되었다. 다큐는 그러한 실패의 원인을 축제 관계자와 뮤지션들, 참가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나씩 되짚어 나간다.

  축제가 열린 곳은 폐쇄된 공군 기지로 유해 물질에 오염된 지역(superfund)이었다. 이미 문제가 있는 장소에서 열리는 축제. 거기에다 날은 미치도록 더웠다. 38도가 넘는 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물탱크의 물을 마구 끌어다 썼고, 곧 기지 전체는 배설물과 진흙이 뒤섞인 거대한 진창이 되었다. 매점의 음식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특히 생수에 대한 폭리가 심했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더위와 성적 흥분이 참가자들의 이성을 점차 마비시켜 갔다.

  다큐는 축제 참가자 대다수가 20대 초반의 백인 남자 대학생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당시 언론은 이른바 X 세대(Generation X) 청년들을 '분노의 세대'로 불렀다. 거기에는 1999년의 미국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그 해에는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로 미국이 시끄러웠다. 기성 세대에 대한 지독한 불신, 지나치게 개방적인 성의식도 X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이었다. '가슴을 보여달라(show us your tits)'고 외치는 남성들의 구호가 현장을 지배했다. 그러한 분위기는 여성 참가자들에 대한 성범죄로 이어졌다.

  3일 동안의 공연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한 이 다큐에는 당시 참가자인 David DeRosia의 일기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데이비드는 공연에 대한 감상과 현장의 분위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그는 축제 마지막 날의 일기를 쓸 수 없었다. '탈수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축제 현장에서는 데이비드를 포함해 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곳곳에서 기물 파손과 난동 행위가 일어났다. 그 정점은 방화였다. 참가자들은 닥치는대로 물건을 불태우고 약탈했다. 결국 경찰 병력과 소방차가 출동한 뒤에야 사태는 진정되었다.

  Woodstock '99는 결국 최악의 뮤직 페스티벌로 남았다. 축제를 기획한 Michael Lang과 John Scher는 인터뷰 내내 변명으로 일관한다. 뮤지션들이 관객의 폭력 행위를 부추겼고, 중계를 포기하고 철수한 MTV가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고 성토한다. 러닝타임 1시간 50분 동안 미쳐 돌아가는 음악 축제의 실상을 보는 것은 감독의 말대로 공포 영화나 다름없다.

  그러한 광기와 폭력이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왔는지, 그 근원에 대한 의문은 다큐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머릿속을 맴돈다. 1999년의 미국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X 세대 백인 대학생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자본과 긴밀하게 결합한 대중 문화 사업의 본질적 속성 때문일 것이다. 주최 측은 제대로 된 보안 인력도 배치하지 않았고, 그저 참가자들의 돈만을 쥐어짜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음악을 사랑한 평범한 대학생 데이비드의 죽음은 어떤 면에서 착취적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만들어낸 비극인 셈이었다. 


*사진 출처: hbo.com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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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1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제를 맨발로 즐겨본 적 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배설물로 엉망이 된 바닥, 흥분한 군중, 성범죄.

말씀 그대로 공포스러워지네요

푸른별 2022-06-1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다큐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현장의 광기가 느껴지더군요. 결국 안좋은 의미로 ‘전설의 음악 축제‘가 되어버렸지요. 이 다큐는 documentarymania.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어요. 팝음악 좋아하는 이들은 뮤지션들 공연을 보는 나름의 의미는 있겠네요. 그런데 뮤지션들 인터뷰 보니 그들도 무대 위에서 관중들 보면서 무서웠다고 회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