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의 시카고에 열파가 들이닥쳤다. 그냥 많이 더운 정도가 아니었다. 특히 7월 12일부터 16일 동안, 섭씨 40도가 넘는 열파가 절정을 이루었다. 그 5일간에 폭염으로 인한 직간접적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739명에 이른다. 이른바, '1995 시카고 대폭염'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10년 전쯤에 본 재난 다큐에서였다. 화면 속에서 시체 운송용 검정 body bag이 산더미처럼 길바닥에 놓여있었고, 쉴새없이 수송차가 그것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시체들을 감당하지 못한 시체 안치소를 대신해 냉동 트럭들이 동원되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1995년의 미국 대도시에서 있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했다. 사회학자 에릭 클리넨버그는 시카고 폭염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사건 기록과 관련 당사자들을 인터뷰한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2002)'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폭염사회'로 번역되어서 나왔다.
주디스 헬팬드 감독의 '생존율 지도(Cooked: Survival by Zip Code, 2019)'는 바로 그 '1995년 시카고 대폭염' 사건을 오늘날의 시점에서 새로운 성찰로 담아낸 다큐이다. 주디스 헬팬드는 '재난'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이 다큐를 시작한다. 과연 시카고 대폭염은 지진, 홍수와 같은 순전한 자연 재난인가? 재난으로 규정할 수 있는 요건은 과연 무엇인가? 그러한 질문들을 풀기 위한 감독의 여정은 '재난 대비 박람회'와 FEMA(미국 연방 재난관리청)의 재난 대비 훈련 참관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감독이 직접 발로 뛰는 것을 보여주는 다큐가 되겠다. 마이크 들고 직접 인터뷰도 하고, 내래이션도 본인의 목소리로 한다. 이런 방식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 '로저와 나(1989)'가 아주 잘 보여주는데, 헬팬드도 아마 '같은 과'인 모양이다. 무어는 그래도 diction이라도 괜찮았지, 솔직히 헬팬드의 diction은 내레이션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발음이 그다지 명료하지 않아서, 다큐 내내 불편하게 들리는 면이 있다.
헬팬드는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시카고 대폭염은 자연 재난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임을 입증해낸다. 다수의 사망자들은 시카고 북쪽 지역에 치중되어 있었는데, 그 지역은 흑인 주거지역으로 범죄 발생률이 높은 곳이었다. 희생자들은 고령자, 독신자, 빈민들로 그 살인적인 더위에도 무장괴한이 들어올까봐 창문을 열지 못하고 지내다가 더위에 익혀져버린(cooked)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시카고 시 당국은 사망자가 폭주하는 상황에서 그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했고, 시장이란 작자는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당신들 부모, 조부모에게 잘 있냐고 안부전화나 좀 열심히 하시오."
1995년에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지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난하고, 많은 집들은 비어있고, 그곳의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런 곳에서 사는 이들은 갖가지 질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시카고의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백인들의 기대수명과 그곳 주민들의 기대수명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연구논문이 보여주는 숫자는 81/65, 무려 16년의 수명 차이가 난다. 말그대로 사는 곳(zip code)이 어디냐에 따라 '생존(survival)'의 가능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25년이 흘렀음에도 시카고라는 도시에서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다큐에 나온 재난 대비 전문가는 정부 당국이 모든 재난 희생자들을 구할 수는 없으며, 위급상황시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는 그 사회의 '역사'와 '전통'를 따른다고 말한다. 감독은 미국의 역사와 전통이 유색인종과 가난한 이들을 후순위로 밀어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엉터리이며 범죄라며 일갈한다. 헬팬드가 보기에 1995년의 시카고 대폭염은 오늘날에도 진행되고 있는 인종차별적 재난이다.
최악의 폭염으로 기억되는 2018년, 그해 폭염 사망자 수를 질병관리본부는 48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2019년의 통계청 발표에서 2018년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160명으로 집계되었다. 연구자들은 그 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하는데, 집계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들이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한겨레 21, 1288호 참조). 우리 사회도 그런 통계 자료의 분석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기후 재난에 취약한 이들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이어온 계층에 따른 평등하지 않은 죽음에서 이제는 '기후'라는 요인이 추가되었고, 우리 모두에게는 사회적 약자가 짊어진 그 부담을 제도와 구조의 개선을 통해 덜어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1995년의 시카고 대폭염이 남긴 교훈은 그런 것이다.
*사진 출처: cinemanova.com.au(사진 왼편이 다큐의 감독 주디스 헬팬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