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삼십 대 여성의 고통에 주목하지만 그것은 이들이 가장 아픈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고통의 목격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어서다. 바라는 것은 이것이다. ‘이삼십 대 여성의 고통을 보아달라’라기보다는 (물론 그것도 있다) ‘이삼십 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달라.’ 이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통해 한 번쯤 당신 자신을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어떻게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될 것인지, 스스로를 컨트롤하면서 자립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그럴 때 부모에게도 의지해 보고, 남자친구나 회사에도 의지해 보지만 ‘결국에 다 소용없구나, 내 주관대로 살아가야지’ 하고 가장 먼저 깨우치는 사람은 이삼십 대 여성인 것 같아요

여태껏 너무 많은 여자들이 죽었다. 지금도 죽고 있다. 낙태한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다가 죽었고, 성관계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죽었고, 왜 안 만나주냐며 협박하는 이에게 스토킹을 당하다 죽었고, 한때는 서로 사랑하던 사람에게 맞고 마음을 조종당하다 죽었고,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다 죽었고, 창녀이면 강간당해도 싸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죽었다.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분노가 치밀어 세상에 불을 지르고 싶어진다. 가해자를 찾아가 차례로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고 싶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다른 방법을 찾을 뿐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내게 이 이야기들이 있는 한, 절망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누군가를 내 삶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로 인해 내 삶이 어그러질 가능성까지 껴안는 일이란 걸 알게 됐다. 내가 받을 기쁨과 사랑뿐 아니라 상처와 아픔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