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한국경제 위기의 역사
한국은행은 얼마 전 1976∼98년 한국경제의 `자본이윤율' 추계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김대수·박형수, `우리나라의 자본이윤율 분석', <조사통계월보>, 2000년 6월; <한겨레> 7월4일치) 여기서 자본이윤이란 초과이윤을 가리키는 것인데, 본래 이윤은 초과이윤에 이자를 더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해 새로 계산한 이윤율(95년 불변가격, %)은 다음과 같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
전 산업의 경우, 76년 36.5, 77년 35.8, 78년 35.9에서 79년 32.9, 80년 29.7로 낮아진 이윤율은 81년 34.0, 82년 36.0으로 회복한다. 이윤율이 계속 급상승해 49.0을 달성한 것은 86년인데, 이후 반전해 87년 48.0, 88년 42.7, 89년 35.7로 떨어지다가 97년 18.6, 98년 18.3까지 내려간다.
제조업의 경우, 76년 34.3, 77년 31.1, 78년 30.3에서 79년 26.3, 80년 20.9로 낮아진 이윤율은 81년 25.2, 82년 25.2, 83년 30.7로 회복한다. 이윤율은 39.3을 달성한 86년 이후 반전해 87년 36.7, 88년 34.1에서 89년 28.8로 떨어진다. 92년 25.8에서 94년 27.7로 약간 상승한 이윤율은 결국 97년 16.7까지 떨어지고 98년 18.4로 약간 오른다.
이윤율의 저하는 자본생산성(국내순생산과 고정자본의 비율, 95년 불변가격, %)의 저하와 임금분배율(임금과 국내순생산의 비율, 경상가격, %)의 상승이라는 두 요소로 분해된다. 87년 이후 이윤율 저하는 대체로 자본생산성 저하와 관련되고, 90년대 전반기는 임금분배율 상승도 얼마간 관련된다.
이상의 계산을 근거로 76년 이후 한국경제에 대한 몇가지 논평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76년은 사채 동결 및 저금리 정책, 중동건설 호황으로 인해 70∼72년과 74∼75년의 경제위기에서 회복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60년대 수출지향적 공업화 이후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지속되는데, 이는 70년대 재벌 중심의 중화학 공업화가 이윤율 저하를 이윤량 증대로 상쇄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둘째, 79∼80년 경제위기는 순환적 위기보다는 구조적 위기지만, 80∼83년 정책개혁은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순환적 위기만을 해결한다. 84∼85년 경제위기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중간적 수준의 순환적 위기다. 86∼88년 `3저 호황', 특히 85년 플라자 협정으로 인한 엔화 평가절상과 그에 따른 일본 자본 및 기술 수입으로 인해 이윤율이 사상 최고 값으로 급상승하면서 구조적 위기는 유예된다.
셋째, 89년과 92년의 경제위기도 중간적 수준의 순환적 위기인데, 아직 3저 호황의 여세가 남아 있던 탓이다. 80∼83년 정책개혁을 계승하려던 93∼94년 정책개혁은 94년 위안화 평가절하, 특히 95년 엔화 평가절하(`역플라자 현상')로 인해 좌절되고 3저 호황 직후인 89년 이윤율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한다. 97년 경제위기는 79∼80년 경제위기를 재현하는 사상 최악의 구조적 위기다.
97년 위기는 79년 위기의 재현
이윤율이 고정자본 전체의 효율성을 측정한다면, 케인스가 말하는 자본의 한계효율 또는 투자수익률은 신규로 투자되는 고정자본의 효율성만을 측정한다. 이 때문에 투자수익률을 이윤율에 대한 선행지표로 생각할 수 있는데, 둘 사이의 시차는 대체로 고정자본의 경신주기인 10년이다. 미국의 경우 투자수익률은 이윤율과 거의 동일하면서도 경기순환적 요인, 특히 설비가동률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원만한 곡선 형태를 지닌다.
따라서 87년 이후 이윤율 저하는 73∼78년 재벌 중심의 중화학 공업화로 인한 투자수익률 저하를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79∼80년 경제위기가 97년 경제위기의 예행연습이었다면, 전두환 정부의 정책개혁과 김대중 정부의 정책개혁 사이의 친화성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다만 역사의 비극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윤소영/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spinmax@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