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신자유주의의 불황기정책



불황기 경제정책으로서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화폐 관리와 관련하여 탈인플레이션, 노동력 관리와 관련하여 `실업의 조직화'라는 쟁점을 제기하는 일종의 정책개혁 프로그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

1995년 미국에서 연방준비은행법 개정을 둘러싸고 새뮤얼슨 식의 전통적 케인즈주의가 정식화한 `필립스 곡선', 즉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대체관계를 둘러싼 정책 논쟁이 재연된다. 새 케인즈주의는 일단 전통적 케인즈주의의 입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외견상 70년대 화폐주의와의 논쟁이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고 할 수 있다.

 

연준법 개정 논쟁은 공화당 상원의원 코니 맥이 제안한 대로 화폐정책의 목표를 물가안정만으로 고정할 것인가, 아니면 78년에 제정된 험프리-호킨스의 완전고용과 균형성장법에 따라 계속 고용안정과 결합할 것인가를 쟁점으로 한다. 이는 화폐정책의 효과에 대한 토빈의 정식화를 이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데, 이때 시장의 불완전성에 기인하는 고유한 노동제도로서 특히 명목임금의 경직성이 전제된다.

 

우선 제로 인플레이션을 주장하는 화폐주의의 관점에서 명목임금의 경직성은 곧 실질임금의 경직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화폐정책 하에서도 실업이 발생한다. 이른바 `화폐의 중립성'에 의해 필립스 곡선이 부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업을 해소하려면 명목임금을 비롯한 노동제도의 신축화가 필연적이라는 신보수주의적 결론이 도출된다.

 

그렇지만 케인즈주의에 따르면 3% 정도의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실질임금의 하락을 초래하기 때문에 디플레이션 위험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실업을 축소할 수 있다. 즉 필립스 곡선에 따라 화폐정책의 효과가 발생하고 오히려 `화폐의 중립성'이 부정되는 것이다.

 

새 케인즈주의와 전통적 케인즈주의의 유사성은 여기서 끝난다. 새 케인즈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은 완전고용을 포기한다는 데 그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애컬로프의 새 케인즈주의가 발전시킨 솔로우의 `효율성 임금'이란 화폐주의적 제로 인플레이션과 다른 방식으로 실질임금의 경직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새 케인즈주의는 효율성 임금을 통해 비자발적 실업을 상대화하고, 노동일 단축에 의한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한다. 이렇게 해서 비정규직의 비중을 증가시키고 고용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실업의 조직화를 통해 노동의 신축화를 간접적으로 실현하려는 것이다. 유럽식 신자유주의인 `사회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생산적 복지'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새 케인즈주의는 결국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 형성을 통한 사회보장의 평가절하를 두 축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중도좌파로서 새 케인즈주의의 타협적 정책개혁은 신보수주의적 우파의 비타협적 화폐주의라는 `최악'에 대한 `차악'일 뿐이다.

 

최악에 대한 차악일 뿐

게다가 효율성 임금 하에서 노동일 단축이라는 관념은 생산성 임금 하에서 노동일 단축이라는 테일러적 관념을 시대착오적으로 반복한다는 지적도 고려해야 한다. 30년대 초 후버 정부 하에서 중도좌파가 주창한 `6시간 노동일, 30시간 노동주' 운동은 38년 루즈벨트 정부에 의해 `8시간 노동일, 40시간 노동주'를 핵심으로 하는 공정노동기준법 제정으로 귀결된다. 사실 케인즈조차도 자본주의의 개혁을 위해 `3시간 노동일, 15시간 노동주'를 주창했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비자발적 실업을 상대화하고 일자리를 나누어 실업을 조직화한다는 게 아니라, 완전고용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는 것이다. 이는 전후 미국경제가 성장기에 진입함으로써 비로소 실현된다. 그렇지만 오늘의 문제는 7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불황기가 시작했다는 데서 비롯되는 까닭에, 어제의 해답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윤소영/한신대 교수, 국제경제학spinmax@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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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이란 `시장의 실패'에 대한 처방으로 형성된 것이다. 시장의 실패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 화폐나 노동력 같은 특수한 상품, 독점적으로 공급되는 일반 상품, 또는 공공재 같은 비상품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미국 경제는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으로 1930년대 대불황을 극복하고 동시에 법인자본주의를 완성한다.

 

거시정책 개혁, 미시정책 유지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은 거시적 수준과 미시적 수준에서 구성된다. 거시정책은 재정정책을 위주로 하면서도 화폐정책과의 `정책혼합'과 이를 통한 경기순환의 `미세조정'을 배제하지 않는 유효수요 정책이다. 거시정책은 의회의 견제 아래 재무부가 담당하고 중앙은행은 이를 보좌한다. 미시정책은 법인자본의 독점(시장지배 또는 불공정거래)을 규제해 느슨한 과점 아래 `유효경쟁'을 촉진하려는 경쟁정책이다. 반독점법에 의해 지지되는 미시정책은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하는데, 이번에는 의회보다 사법부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미국식 `자유기업'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의 핵심은 당연히 미시정책이 아니라 거시정책이다.

 

유효수요를 진작하고 유효경쟁을 유도하려는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은 세계경제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려는 미국에 고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수출지향적 현대화를 통해 미국을 따라잡으려 한 전후의 독일이나 일본만 하더라도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은 아주 예외적이고 대신 중상주의적인 산업정책이 경제정책의 기조를 형성한다. 프랑스나 영국은 케인스주의적 거시정책에 국유화 또는 공기업화라는 미시정책을 결합하는데, 이는 전전부터 강력한 노동자 운동이 존재했다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새 케인스주의'란 전통적 케인스주의에 대한 화폐주의적 신보수주의 도전의 반응으로 출현한다. 새 케인스주의는 화폐주의가 내세우는 이른바 `정부의 실패'에 대해 `시장의 실패'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 케인스주의에 대해서는 정책개혁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새 케인스주의는 화폐주의와 마찬가지로 화폐정책을 통한 물가안정을 중시하지만 고금리가 아니라 저금리를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과소비를 부추겨 이른바 `신경제'를 달성하려 한다. 전통적 케인스주의에서 화폐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가경쟁력' 논쟁이 제기되면서 산업정책이 잠시 부각된 적도 있지만, 새 케인스주의가 대두하면서 다시 경쟁정책이 주목받는다.

 

단적으로 새 케인스주의는 전통적인 것과 달리 완전고용을 포기한다. 이른바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수반하는 실업률'(나이루)은 올해 대불황 직전 60년대의 최저 수준인 4% 가까이 저하한다. 그러나 유동적 실업(일시해고자 또는 임시직) 외에도 잠재적 실업(자영업자 또는 여성노동력)이나 정체적 실업(일용직, 빈민 또는 부랑자)을 고려하면 실제 실업률은 거의 두배에 이른다고 한다. 60년대와 90년대의 고용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실업률 4%라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신흥시장의 경우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른 신흥공업국의 정책개혁 핵심은 새 케인스주의적 의미에서 거시적 안정화와 금융과 기업 등 경제구조의 미국화라는 의미에서 미시적 구조조정에 있다. 미국식 신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이른바 `신흥시장'으로 변모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구조조정의 핵심은 재벌을 지원하던 산업정책을 폐기하고 금융개혁을 통해 재벌을 금융화하는 데 있다. 공기업 민영화도 소유형태 변화보다는 오히려 주식시장을 육성하는 데 목표가 있다. 재벌과 공기업을 금융세계화로 통합하는 또다른 수단은 세계시장의 개방압력을 전달하는 경쟁정책이다.

 

윤소영/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spinmax@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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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금융세계화와 석유위기



석유위기로 대표되는 자원위기는 토지처럼 재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또 토지와는 달리 고갈 가능성이 높은 광업자원, 그보다는 좀 덜 하지만 임업 및 어업자원의 문제다. 이 점에서 석유위기는 이윤율 저하로 인해 자본이 축소재생산되는 문제인 경제위기와는 일단 구별된다.

 

환율과 유가의 불안정성

1973년 1차 석유위기의 직접적인 계기는 중동전쟁의 재발로 인한 석유수출국기구(오펙)의 유가 인상이다. 그렇지만 이는 미국의 경제위기로 인한 국제화폐체계의 붕괴라는 맥락 속에서 인식해야 한다. 유가의 불안정성과 환율의 불안정성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 이후 이윤율의 저하와 유로달러시장의 팽창으로 닉슨이 71년 달러의 금태환 중지, 73년 고정환율제 포기를 선언하면서, 금-달러본위제를 근간으로 하는 전후 국제화폐체계는 붕괴하고 만다. 이후 유가는 국제정치경제의 상황에 따라 동요한다. 73~75년 공황 이후 독일과 일본이 미국의 추월에 실패한 것도 환율과 유가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고갈 가능성이 높은 석유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같은 이유로 유가는 선물시장의 투기에 의해 결정되는 `페이퍼 배럴' 가격이 선도하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적인 초민족적 자본인 석유메이저는 거대한 초과이윤을 실현한다. 농업메이저에 의한 토착농업의 파괴와 이른바 `녹색혁명'이 초래한 세계적 식량위기의 가능성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석유위기가 금융세계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사실은 유로달러시장과 초민족적 은행을 통한 이른바 `석유달러의 환류'(리사이클링)에 의해 극적으로 확인된다. 남미의 신흥공업국이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을 본받아 외채의존적 수출지향공업화를 시작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렇지만 유가 인상으로 인한 교역조건 악화는 석유수입에 의존하는 신흥공업국(`노펙') 전체를 달러 강세와 금리 인상에 취약하게 만든다. 78년 오펙의 유가 재인상에 따른 2차 석유위기와 81~82년 공황에 대응한 레이건의 강한 달러-고금리 정책으로 조성된 이른바 `3고'가 노펙의 외환-외채위기와 석유위기를 초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외환-외채위기와 석유위기가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위기가 초래한 금융세계화 속에서 경제위기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양상을 드러낸 셈이다.

 

레이건식 신보수주의가 퇴조하고 클린턴식 신자유주의가 형성되던 과도기인 86~88년 조성된 `3저'는 몇가지 상황을 반영한다. 85년 플라자 협정과 87년 루브르 협정에서 세계경제 중심 3국의 환율 조정이 합의됨에 따라 달러가 평가절하된다. 또 반주변-주변의 외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85년 베이커 플랜과 89년 브래디 플랜에 따라 저금리 기조가 정착된다. 게다가 중심에서 대체에너지 개발과 반주변-주변의 자본축적 둔화로 인해 석유수요가 급감해 86년부터 유가가 인하된다. 그렇지만 3저에 대한 `노펙'의 대응은 상이하다. 예를 들어 남미경제가 이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은 반면, 한국경제에서 이는 시대착오적인 재벌체제와 코퍼러티즘적인 재벌 노조를 강화한 계기가 된다.

 

3고의 가능성과 재벌 체제의 위기

95년 세계무역기구 출범, 96년 오이시디 가입으로 금융세계화에 통합된 재벌체제가 위기에 빠진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지만 97~98년 공황은 이윤율 저하에도 과잉자본을 처리하지 못한다. 95년 이후 지속되는 달러 강세 속에서 91년 걸프전 때와 유사한 중동 정세로 인한 유가 불안과 미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으로 인한 금리 불안이 새로운 3고를 예고하는 상황이지만,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은 중도반단되고 재벌체제 위기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라도 97~98년 공황은 내년, 내후년 공황의 예고일 뿐인지도 모른다. 마치 74~75년 공황이 79~80년 공황의 전조였던 것처럼 말이다.

 

spinmax@chollian.net

윤소영/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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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신경제와 경제 금융화



1930년대 대불황에 빠진 자본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케인스는 기관투자가를 비롯한 일체의 금리 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70~80년대 대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 케인스주의가 내세운 저물가-저금리 안정화 정책과 금융-기업 구조조정 정책은 이런 케인스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금융 세계화에 통합된 `신흥시장'을 형성하려는 현 정부의 경제개혁과 국내외 기관투자가가 주도하는 이른바 `소액주주운동'도 마찬가지다. 두 경우 모두 연금기금과 상호기금 같은 금리 생활자를 대변하면서, 케인스가 걱정하던 대로 `투기의 소용돌이 위에서 기업을 거품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거품과 시장붕괴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한계는 우선 투기거품의 폭발로 인한 금융시장 붕괴로 드러난다. 금융시장의 수익률이 실물경제의 펀더멘틀(이윤율에 영향을 주는 거시적-미시적 여건)에서 괴리되는 노이즈 현상이 투기거품을 형성한다. 투기거품의 폭발은 `시장'과 `경제', 주가와 펀더멘틀의 수렴을 강제한다. 올해 1월4일 다우존스 공업주가가 사상 최고 시세인 1만1723을 기록하지만 4월14일 `피의 금요일'에 5.6% 하락하면서 클린턴식 신경제의 한계가 드러난다.

 

투기거품을 측정하는 지표인 주가수익률(PER)은 주가와 순이익(손익계산서 상 영업이익에서 이자와 법인세를 뺀 좁은 의미의 이윤으로 배당금과 유보금의 합)의 비율인데, 이를 배당률과 배당수익률의 비율로 표시할 수 있다. 여기서 배당수익률이란 실질이자율에 리스크 프리미엄을 더하고 배당성장률을 뺀 것이다. 주가수익률은 이자율이나 주가처럼 무작위적으로 운동한다.

 

에스앤피(스탠더드 앤 푸어스)500 지수로 계산한 주가수익률의 장기 평균값은 14.4인데, 70년대 내내 평균값을 밑돌다가 80년대부터 상승세를 타면서 87년 8월 23.4, 88년 11월 12.1, 92년 7월 26.1, 95년 1월 16.1로 등락을 거듭한다. 96~97년 이후 신경제가 도래하면서 배당률 상승, 실질이자율 하락, 리스크 프리미엄 하락, 배당성장률 상승으로 인해 주가수익률이 급상승해 98년 11월 이후 올해 초까지 계속 30을 넘는다. 특히 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나스닥 첨단기술주가가 시장을 이끌면서 투기거품과 시장붕괴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올해 3월 사상 최고 주가수익율 368을 기록한 나스닥은 이미 단순한 투기가 아니라 폰지(금융 피라미드) 상태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클린턴 집권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미국경제의 금융화는 주식 및 부채 시장가치와 자산 대체비용의 비율인 토빈의 `q'로 설명할 수 있다. 에스앤피500 지수로 계산한 q는 이윤율과 마찬가지로 70~80년대 하락한다. 68년에 달성된 전후 최고값은 아직 100%에 약간 미달하고, 73~75년 공황 이후 80년대 중반까지는 전후 최저값인 30~40%에 머무른다. 87년에도 50%를 약간 웃돌아 장기 평균값인 65%에 훨씬 못 미치던 q는 90년대 들어와 급상승하는데, 사상 최고값인 29년 대공황 직전의 122%를 돌파한 것은 97년 말이다. 언젠가는 시장의 경착륙이 경제를 대공황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리생활자의 반역

이렇게 q를 금융화 지표로 해석할 수 있다. 80년대 성행하던 정크 본드를 이용한 기업인수는 q가 예외적으로 낮은 데 따른 것이다. 90년대 q가 급상승하지만 투자 증가는 그에 못 미치고 자본축적은 집적(이윤의 재투자)이 아니라 집중(소유권의 이전)이라는 형태로 진행된다. 금리생활자의 반역을 상징하는 `주주 가치의 극대화', 그리고 이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의 개혁이 전 산업에 걸친 리엔지니어링-다운사이징-네트워킹을 낳고, 특히 금융·정보통신·전기전자·자동차 산업에서 기업합병 열풍을 초래하는 것이다.

 

윤소영/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spinmax@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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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한국경제 위기의 역사



한국은행은 얼마 전 1976∼98년 한국경제의 `자본이윤율' 추계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김대수·박형수, `우리나라의 자본이윤율 분석', <조사통계월보>, 2000년 6월; <한겨레> 7월4일치) 여기서 자본이윤이란 초과이윤을 가리키는 것인데, 본래 이윤은 초과이윤에 이자를 더한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해 새로 계산한 이윤율(95년 불변가격, %)은 다음과 같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

전 산업의 경우, 76년 36.5, 77년 35.8, 78년 35.9에서 79년 32.9, 80년 29.7로 낮아진 이윤율은 81년 34.0, 82년 36.0으로 회복한다. 이윤율이 계속 급상승해 49.0을 달성한 것은 86년인데, 이후 반전해 87년 48.0, 88년 42.7, 89년 35.7로 떨어지다가 97년 18.6, 98년 18.3까지 내려간다.

 

제조업의 경우, 76년 34.3, 77년 31.1, 78년 30.3에서 79년 26.3, 80년 20.9로 낮아진 이윤율은 81년 25.2, 82년 25.2, 83년 30.7로 회복한다. 이윤율은 39.3을 달성한 86년 이후 반전해 87년 36.7, 88년 34.1에서 89년 28.8로 떨어진다. 92년 25.8에서 94년 27.7로 약간 상승한 이윤율은 결국 97년 16.7까지 떨어지고 98년 18.4로 약간 오른다.

 

이윤율의 저하는 자본생산성(국내순생산과 고정자본의 비율, 95년 불변가격, %)의 저하와 임금분배율(임금과 국내순생산의 비율, 경상가격, %)의 상승이라는 두 요소로 분해된다. 87년 이후 이윤율 저하는 대체로 자본생산성 저하와 관련되고, 90년대 전반기는 임금분배율 상승도 얼마간 관련된다.

 

이상의 계산을 근거로 76년 이후 한국경제에 대한 몇가지 논평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첫째, 76년은 사채 동결 및 저금리 정책, 중동건설 호황으로 인해 70∼72년과 74∼75년의 경제위기에서 회복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60년대 수출지향적 공업화 이후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지속되는데, 이는 70년대 재벌 중심의 중화학 공업화가 이윤율 저하를 이윤량 증대로 상쇄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둘째, 79∼80년 경제위기는 순환적 위기보다는 구조적 위기지만, 80∼83년 정책개혁은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순환적 위기만을 해결한다. 84∼85년 경제위기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중간적 수준의 순환적 위기다. 86∼88년 `3저 호황', 특히 85년 플라자 협정으로 인한 엔화 평가절상과 그에 따른 일본 자본 및 기술 수입으로 인해 이윤율이 사상 최고 값으로 급상승하면서 구조적 위기는 유예된다.

 

셋째, 89년과 92년의 경제위기도 중간적 수준의 순환적 위기인데, 아직 3저 호황의 여세가 남아 있던 탓이다. 80∼83년 정책개혁을 계승하려던 93∼94년 정책개혁은 94년 위안화 평가절하, 특히 95년 엔화 평가절하(`역플라자 현상')로 인해 좌절되고 3저 호황 직후인 89년 이윤율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한다. 97년 경제위기는 79∼80년 경제위기를 재현하는 사상 최악의 구조적 위기다.

 

97년 위기는 79년 위기의 재현

이윤율이 고정자본 전체의 효율성을 측정한다면, 케인스가 말하는 자본의 한계효율 또는 투자수익률은 신규로 투자되는 고정자본의 효율성만을 측정한다. 이 때문에 투자수익률을 이윤율에 대한 선행지표로 생각할 수 있는데, 둘 사이의 시차는 대체로 고정자본의 경신주기인 10년이다. 미국의 경우 투자수익률은 이윤율과 거의 동일하면서도 경기순환적 요인, 특히 설비가동률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원만한 곡선 형태를 지닌다.

 

따라서 87년 이후 이윤율 저하는 73∼78년 재벌 중심의 중화학 공업화로 인한 투자수익률 저하를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79∼80년 경제위기가 97년 경제위기의 예행연습이었다면, 전두환 정부의 정책개혁과 김대중 정부의 정책개혁 사이의 친화성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다만 역사의 비극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윤소영/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spinmax@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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