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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세기 산업혁명기의 방직공장을 묘사한 그림. 자동방직기(power loom)이 설치되어 작동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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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속 사상/(20) 산업혁명과 마르크스
산업혁명은 공장제 생산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힘으로 등장했던 사건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공장제 산업이 농업과 수공업을 대체하고 사회의 발전동력으로 부상했다. 공장을 운영하는 자본가 계급이 기존에 권력을 잡고 있던 토지귀족 계급을 몰아냈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 계급은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자본가 계급에 맞서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19세기 유럽 각국에서는 혁명의 기운이 고조되었고,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이 혁명의 열기를 배가했다. 1848년에 <공산주의 선언>을 써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열변을 토했던 마르크스(Karl Marx)는 당시 불과 서른 살의 젊은이였다.
기계와 분업 선구적 연구
산업혁명을 기술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산업혁명을 출범시킨 것은 몇 가지 사소해 보이던 기술 발전이었다. 1770년대부터 면사를 생산하는 방적기계가 발명되었고, 곧이어 면사를 이용해서 옷감을 짜는 방직기계의 발명이 뒤를 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엔지니어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이렇게 개량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한 공장이 공업도시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기차는 원자재 생산지와 공장을 연결했고, 생산품을 소비지로 수송했다. 영국의 경우, 1750년에서 1800년 사이에 면화수입은 30배, 면제품수출은 120배가 증가했다.
자동기계 수백 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공장은 산업혁명의 심볼이었다. 수력 자동방적기계를 발명한 발명가 아크라이트는 면사 사업가로 변신했는데, 그의 공장은 무려 19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이 중 3분의 2가 미성년자였으며, 개중에는 6살 난 소년 노동자도 있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8초 이상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 속에 11시간 이상의 노동에 종사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맞추어서 기계를 다루는 대신에 기계의 규칙적인 운동에 자신들의 노동을 맞추어야 했다. 산업혁명기의 몇몇 사상가들은 이미 인간이 거대한 기계의 ‘수족’이 되었음을 감지했다. “우리 시대의 표식”(1829)이라는 에세이에서 카알라일은 “인간의 손뿐 만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도 점차 기계가 되었다”라고 개탄했다. 당시 기계와 공장 시스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앤드류 유어는 <매뉴펙쳐의 철학>(1835)이라는 책에서 공장을 “기계적이고 지적(知的)인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모두가 스스로 제어하는 동력에 종속되어 하나의 공통된 물건의 생산을 위해 쉴새없이 함께 움직이며 작동하는 거대한 자동기계”라고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당시 기계와 분업, 공장 시스템에 대해서 선구적인 연구를 했던 유어, 찰스 배비지, 아담 스미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유어와 배비지가 공장제를 낙관적으로 높게 평가했음에 비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공장제에 대해서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는 “(공장 시스템에서) 우리는 각각 고립되어 있는 개별적인 기계들 대신에, 하나의 기계괴물을 만난다”면서, “이 괴물의 몸은 공장 전체를 채우고, 이 괴물의 악마적 힘은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다리의 느릿느릿하고 절도 있는 움직임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마침내 빠르고 격렬하게 작동하는 무수히 많은 그 기관의 혼돈 속에서 나타난다”라고 기계화된 공장을 괴물로 묘사했다.
마르크스가 기계를 괴물로 보았던 데에는 그가 공장의 기계를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는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 뮬 방적기를 다루던 숙련 노동자들의 힘을 무력하게 할 방도를 꾀하던 자본가들은 리처즈라는 유명한 발명가에게 의뢰해서 자동 뮬 방적기를 만들어 보급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같은 계급사회에서 기술이 노동자를 억압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계급이 타파된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기계가 노동자의 지겨운 육체노동을 해방시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기술결정론자’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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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기계와 공장제의 모순을 타파하는 방법이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의 사적 소유를 없애는 것이라고 설파한 칼 마르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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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는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류의 문명이 진보했고, 지금도 진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에게 기술을 포함한 생산력의 발전은 철학적인 의미에서 긍정적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계급관계가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이 숙련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에 종사시키며, 거기서 얻어진 이윤을 자본가들에게 귀속시키는 도구라고 직시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산업혁명 초기의 러디스트(Luddist) 운동에서처럼 기계를 파괴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을 자본가의 손에서 빼앗아 와서 사회적 소유로 바꾸는 데에 있었다.
마르크스의 기술관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그가 기술결정론자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실제로 <철학의 빈곤>에서 “손방아는 봉건영주의 사회를 낳고 증기방아는 자본가의 사회를 낳는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고, <정치경제학 비판>에서는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구성하며, 그 위에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성립하고 그것에 조응하여 사회적 의식의 특정한 형태가 발생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구절들은 그를 기술결정론자로 평가하는 근거가 되곤 했다.
마르크스를 기술결정론자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생산력=기술”로 간주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생산력이란 기술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특히 마르크스의 생산력은 노동자의 노동력, 숙련지식, 경험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이렇게 생산력이 인간의 노동을 포함한다면 이는 역사의 변동 요인으로서 의식적인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기술결정론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주장이 된다.
또 마르크스는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지도, 기술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 방직기술, 제련기술, 증기기관과 같은 몇몇 기술의 발전이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혁명기에 나타난 핵심적인 기술혁신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더 증대시키기 위한 동기에서 이루어졌다. 마르크스는 자동기계와 같은 기술이 노동자들의 숙련 노동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세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통찰했다. 이렇게 생산력의 발전은 계급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며, 이러한 계급투쟁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계급간 착취 없어야 기술도 유용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과 사회변동에 대한 그의 논의에서 기술변화를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할애했다. 그는 기술이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는 활동임을 지적했으며, 사회적 관계와 기술변화가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기술의 변화는 계급관계의 변화를 포함한 사회적 변동을 가져오고, 사회는 기술을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기술의 발전 그 자체는 인간의 복지와 평화를 위해서 사용될 수 있지만, 그것의 사용은 항상 사회의 계급구조에 의해서 좌우된다. 따라서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기술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가장 잘 표출하고 이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길이다.
20세기의 역사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대로 바뀌는 듯 했다가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공장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사라지고 우리 눈에는 그 작동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 팬시한 핸드폰과 무선 인터넷이 현대 기술을 대표하는 지금, 계급간의 투쟁을 강조했던 마르크스의 기술론은 그 의미를 상실한 듯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그의 통찰력의 대부분은 아직도 유효하다. 마르크스의 기술관은 우리에게 기술에 내재한 사회성과 사회를 구성하는 기술적 특성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기술구조를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정립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욱/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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