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담론과 수평주의적 사고 실험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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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교차로에서 탈제국을 꿈꾸다』백영서·최원식 외 지음┃창비│2008│349쪽 |
2009년 02월 23일 (월) 13:08:41
고성빈 제주대·정치학 editor@kyosu.net
독립왕국이었다가 메이지 일본제국에 합병당한 후에, 다시 미국이라는 거대제국의 군대가 점령했다가 일본에 반환된 곳. 그러나 미군의 주둔은 여전하고 일본 본토로부터의 차별도 여전하다. 이렇듯 오키나와는 동아시아주변부가 흔히 겪고 있는 세계의 중심과 지역의 중심에 대한 중층적 저항을 상징하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중국, 서구, 미국의 침략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펼치면서 자주적으로 독립을 쟁취한 후, 충만한 정신적 자부심으로 물질적 궁핍과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있는 호치민. 중국본토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가 다시 본토에 대항하려는 국민당 정권의 전진기지로 흡수당하면서 공산당과 국민당 양대 대국주의지향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받았고, 이제는 중국본토귀속에의 압력으로 자신의 독립의지가 풍전등화 상태에 있는 타이뻬이. 이들 모두가 주변부의 중층적 ‘저항정신’을 체현하고 있지만 優勝劣敗의 신화에 사로잡힌 국민국가주의의 틀 안에서보다도 동아시아차원에서의 문제해결을 원하고 있다.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국민국가주의의 폭력보다는 화해와 관용을 저항 에너지로 삼기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여정에서 지향하는 사고는 중심부를 타자로 규정하고 대결을 추구하는 게 아닌 주변부와 중심부와의 ‘和而不同’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다름을 존중하고 일치를 모색’하는 사고이다. 오키나와 지식인인 아사또 에이꼬는 오키나와가 체현하고 있는 중층적 저항과 국민국가주의의 불확실한 현실화문제를 의식하면서, 동아시아 국가 간이 아닌 지역 간, 시민들 간의 교류를 제시한다.
쳔팡밍은 동아시아에서 주변화 된 타이완의 내부가 지금 중국본토의 민족주의공격에 직면해 통일과 독립이 대치하는 소용돌이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타이완에 가해진 수 차례의 식민지배의 피해, 즉 스페인에서 국민당까지 타자들의 지배에서 당한 피해를, ‘혜택’으로 어떻게 전환시켜 내느냐 하는 것이 타이완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역설하고 있다. 호치민에서도 이러한 관용과 화해의 정서는 특별한 게 아니다.
그들이 누리는 자유가 일면 엄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랜 저항에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러한 저항으로 내면에 원한을 쌓아 놓기보다는 관대함과 유연함으로 과거의 압제자를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적국이었던 미국에 대해 먼저 관계정상화를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그에 대해 오랫동안 ‘금수조치’로 응답했던 미국이라는 제국의 오만함에서 주변주의와 중심주의 사이에 넘기 힘든 골짜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저항에너지를 발전과 관용의 원동력으로 전화시키고 있는 세 도시에서 방문자들이 찾은 것은 주변부 동아시아 사고의 씨앗일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원리인 ‘저항’과 ‘관용’이며 거기에 ‘수평주의’를 접목시켜야 한다. 주변부는 중심부사고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 즉, 서구에 대항키 위해 주변부를 포섭해 대표하려는 중심주의와는 다른 수평주의사고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여정은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수평주의적 사고를 실험하고 확산시키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주변부 동아시아담론에서의 ‘수평주의’적 사고의 함의는 단순히 지역 국가 간 힘의 불균형 상태를 무시한 기계적 평등상태를 추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중심국, 주변국을 망라해 국가 간의 차별성-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인 측면-을 인정하되 상호인식과 관계에서 차별성을 위계화하거나 절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지적, 문화적 차별성을 다원성으로 받아들이면서 중심부의 주변부에 대한 동아시아내부의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와 주변부의 중심부에 대한 옥시덴탈리즘적 사고 모두를 초탈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고에서는 근대의 국민국가주의와 대국주의를 탈피한다는 의미까지도 중층적으로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사고를 더 확장시켜 유추해 보면 동아시아지역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와 더불어 세계중심인 미국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대한 수직주의적 사고(위계주의)를 벗어나 서구 중소규모국가들을 대하듯 수평주의를 배양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주변부의 시각과 운동은 있으되 실천을 위한 이론화작업의 결실로서 ‘주변주의’가 아직 명확히 보이진 않고 있다. 주변부의 문제의식으로써 중심부를 ‘되감기’하면서 탈제국, 탈국민국가로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부의 저항정신과 관용, 수평주의, 다양성을 동아시아 주변주의적 원리로 삼아 중심부와의 소통을 확대하면서 구체적 실천을 지향하는 이론화작업을 할 수는 없을까. 주변부 지식인들의 여정은 아직 멈추기에는 때가 이른 것 같다.
고성빈 제주대·정치학
필자는 『칼 야스퍼스 - 비극적 실존의 치유자』,「문화충돌 현상의 서사성에 대한 철학적 예비고찰」 등의 저술을 발표했다. 독일 튀빙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책의 목차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책머리에 세 도시 이야기: 남쪽에서 본 동북아시아
1부 오끼나와
동아시아 속의 오끼나와_강태웅
오끼나와에 온 까닭_최원식
‘조국복귀’ 운동에서 ‘자치’ 주장으로: 문제로서의 오끼나와_강태웅
근대 오끼나와에 있어서 마이너리티 인식의 변천_야까비 오사무
재일 ‘오끼나와인’, 그 호칭이 조명하는 것_토베 히데아끼
종합토론
2부 호찌민시
제국의 주변국이길 거부하는 베트남_신윤환
베트남의 동아시아 인식_신윤환
베트남전쟁 소설론: 용병의 교훈_송승철
21세기 초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_응웬 반 릭
동아시아 공동체의 전제_호앙 칵 남
종합토론
3부 타이뻬이
다중적 식민경험과 타이완 민족주의_양태근
평화에 대한 상상력의 조건과 한계_백영서
타이완 민족주의를 통해 본 중국_양태근
동아시아의 미래와 타이완의 현재_쳔팡밍
천민선언, 혹은 타이완 비극의 도덕적 의의_우루이런
정보와 담론: 타이완에서의 ‘아시아’에 대한 사고와 인식의 가능성_뤼샤오리
종합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