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21일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눈을 떴는데, 온몸이 아프고 식은땀이 흘렀다.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로 가 대충 씻었다. 아침도 먹지 못한 채 학교로 갔다. 당연히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갑자기 토기가 치밀어 화장실로 뛰어갔다. 결국 교실로 돌아가지 못 하고, 양호실 침대에 눕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씰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잠이 들었다 깼는데,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무슨 큰일이 난 것 같았다. 어처구니없게도 한강 다리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아파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 그러나 한강 다리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은 지금까지도 가끔, 종종, 자주 일어나고 있다.


2007년 12월 19일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나오던 아버지가 쓰러졌다. 119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갔다. 뇌경색이었다. 문진과 검사와 처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중환자실로 옮긴 뒤, 의사가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슬프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서명을 하라면 서명을 했고, 수납을 하라면 수납을 했고, 필요한 물품이 있다고 하면 사다주었다. 그리고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다. 내 인생 최악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그날은 17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텔레비전을 보며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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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님께서는 입장은 立場이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두 발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 머릿속 생각은 저의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입으로 내뱉는 말은 저의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바라보는 곳이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저의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제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그곳이 저의 입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학 시절 지하철을 타고 하교하는 중이었습니다. 통로 쪽에 있던 휠체어 한 대가 출입문 쪽으로 바짝 붙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다음 역에서 그 휠체어가 내릴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역에서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역에서 저는 내렸고, 휠체어는 여전히 내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리기 한참 전부터 출입문에 바짝 붙어있어야만 하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고충에 대해 저는 계단을 뛰어올라가며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끼적거린 시에 '나는 모른다'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뇌병변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탔습니다. 저는 휠체어 탄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밥 먹고 씻는 일, 누웠다 일어나는 일, 진료실이나 치료실로 이동하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었습니다. 입원 병동이 아닌 다른 층에서는 장애인용 화장실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병원 안에서의 생활은 편한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병원으로 움직여야 할 때는 아버지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습니다.


다시 몇 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모른다'는 제목은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저의 무지를 고백한 것이 아니라, 저의 생각을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모른다는 말조차 꺼낼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비장애인이므로, 제 입장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한 번 쯤 선생님을 직접 뵙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 선생님의 글을 읽곤 합니다. 그곳에서 편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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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저는 야구를 모릅니다. 야구장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경기 중계를 볼 때면 아직도 모르는 규칙이 종종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응원하는 팀이 있고, 중계방송을 열심히 봅니다. 물론 이글스를 응원하지는 않습니다. 감독님께서 얼마 전에 라디오 인터뷰를 하셨더군요. 직접 듣지는 못 했고, CBS <김현정의 뉴스쇼>라는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감독님 말씀 중 궁금한 점 두 가지를 여쭈어 봅니다. 첫째, 거의 모든 투수가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를 말려야 하지 않느냐는 앵커의 물음에 감독님은 타협하지 않고, '거기'를 넘어야 강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지만 참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쭙습니다. 말리셨다는 겁니까? 독려하셨다는 겁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말리셨지만, 속으로는 반기셨다는 뜻입니까? 두 번째로 앵커와 기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가 혹사당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에 이글스 투수들도 포함된다고 여겨도 되겠습니까? 감독님은 '혹사 논란'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아니라면 모두가 혹사당하고 있으니 그냥 모르는 척 해달라거나, 누가 나한테 돌을 던질 수 있느냐는 취지로 하신 말씀입니까?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가 혹사당하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문제라고 인식하고 계십니까?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선배 세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닙니다. 이 질문은 안 들으신 걸로 해주십시오. 아마도 감독님은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무슨 자격으로 감독님께 문제해결을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이 질문에 답하시라고 강요할 자격부터가 없겠군요.


'과학이란 마치 길 건너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반대편 가로등 아래서 열쇠를 찾고 있는 술 취한 사람과 같다. 가로등 아래에 빛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은 없다.' 아시겠지만, 촘스키의 말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지요. 저는 감독님께서 야구를 그만두시는 날까지 감독님의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감독님은 지금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계십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찾고 계십니다. 감독님의 야구는 옳습니다. 감독님의 야구 인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는 감독님의 야구가 옳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사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추사가 그랬다지요. 지인들이 추사체가 '괴하다'는 말들 듣고 와서 추사에게 전하자, '괴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밖에 쓸 줄 모른다'고요. 과연 추사다운 자존심과 고집입니다. 훗날 감독님의 야구가 추사체만큼의 명품이 될 수도 있을까요? 추사체는 전범을 따르지 않은 글씨입니다. 추사체가 명품인 이유는 바로 그 파격에 있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감독님의 야구는 옳습니다. 일종의 전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범을 뛰어넘는 파격이 이미 등장했고, 그것이 이제는 또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다른 젊은 감독들을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야구를 모릅니다. 따라서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 찾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덕분에 감독님께서 찾고 계신 열쇠가 '거기'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잘 보입니다. 중언부언했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감독님, 열쇠는 '거기' 없습니다. 외람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과 이글스의 행운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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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니 자네가 나보다 한 살 아래더군. 자네를 자네라고 부르겠네. 요즘 나는 가면 쓴 자네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라네. 자네의 공연장을 찾거나, 음반을 구매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열성적인 팬은 아니라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어떤 가수의 공연장도 가본 적이 없고, 사서 들은 음반도 손에 꼽을 정도이니 말일세. 첫 주에 자네는 신해철의 곡을 두 곡이나 선곡했더군. 자네도 신해철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나중에 한 곡을 더 불렀지 아마. 나도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네. 전에는 나에게 특별할 것 없는 가수였는데, 그가 떠난 후 왠지 그의 노래가 더 좋아지더군. 참 이상한 일이지.


자네가 선곡한 많은 곡들 중 압권은 단연 두 번째 방송의 바로 그 곡이었네. 그 때가 아마 2월이었지. 나는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었네. 감기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질병인지 예전엔 몰랐었지. 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그 때에 자네는 어쩌자고 그 곡을 선곡하셨는가? 또 자네는 어쩌자고 그 곡을 그런 음색으로 부르셨는가?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네. 서른을 훌쩍 넘긴 사내가 또래 남가수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인지 나는 모르겠네. 사실 나는 노래를 부를 줄도 모르고, 들을 줄도 모른다네. 그 때문인지 나는 노래를 들을 때, 주로 가사와 가수의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네. 그 곡은 전에 많은 가수들이 부른 것으로 아네만, 내 생각에 그 가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바로 자네의 목소리네.


그래, 목소리라고 해야겠네. 자네의 노래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네의 음색 때문이라고 답하겠네. 나는 적당히 우울하면서도 적당히 경쾌한 음색의 가수를 좋아한다네. 자네의 음색이 바로 그런 음색이네. 자네의 음색은 소년의 그것과 청년의 그것 사이를 오고가는데, 그 음색에서 묻어나는 감성은 청년의 그것과 중년의 그것 사이를 오고가네. 덕분에 <FANTASTIC BABY>는 전혀 가볍게 들리지 않았고, <봄비>는 지나치게 무겁게 들리는 것을 피할 수 있었네. 반대로 자네 음색이 돋보일 수 있는 곡을 자네가 영리하게 선곡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적고나니 마치 내가 음악평론가라도 된 기분이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부를 줄도, 들을 줄도 모른다네.


자네가 신해철의 곡을 다시 한 번 들고 나왔을 때, 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네. 그동안 한바탕 잘 놀았지 않느냐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네. 나는 자네를 보내기 싫었네. 아마 거기 모였던 사람들도 그랬던 모양이었네. 어느새 자네는 대중들의 '아주 오래된 연인'이 되어 있었던 게지. 2주 후에 자네는 특기인 고음을 뽐낼 수 있는 곡을 다시금 선보였네. 나는 안심할 수 있었네. 그런데 일은 다시 2주 후에 벌어졌네. 세상에, <백만 송이 장미>라니, 경연프로그램에서 <백만 송이 장미>라니. 그래, 이제는 '그립고 아름다운 자네 별나라'로 가시게나. '모두가 떠날지라도 사랑은 계속 될' 테니. 나는 체념했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네의 노래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고 하더군. 그제야 그 노래가 귀에 들어왔네. 한마디로 좋았네. 원곡 가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 노래가 이렇듯 좋은 곡이었는지 전에는 몰랐었네. 대학시절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묻던 선배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심수봉이라고 답했던 일이 뿌듯하기까지 했네. 그리고 나는 다음번엔 자네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네. 다시 한 번 거기 모인 사람들과 나의 생각이 일치했네. 그렇게 자네는 가면을 벗었네.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해명이 필요한 그런 사태라고 하더군. 어떤 이유가 있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먼저고,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해명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네. 예쁘니까, 착하니까, 부모와 닮았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등등의 이유가 다 그렇다는 것이었네. 하다못해 집이 같은 방향이라는 이유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네. 나는 그럴듯한 주장이라고 생각했었네.


내가 지금 자네의 노래에 대해 끄적거리는 것이 그런 것 같네. 이렇듯 뭔가에 열광한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네. 해서 나는 나름의 해명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적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걸세. 굳이 따지자면, 이 글은 편지가 아니라, 일기인 셈이네. 혹시 이것이 내가 만들어낸 해명이라고 해도 자네는 실망하지 마시게. 나 또한 미안해하지 않겠네. 아니, 이것은 나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해명임이 분명하네. 허나 이것 또한 분명하네. 지난 몇 달 동안 자네의 노래를 듣고 정말 좋았네. 그동안 즐거웠네. 고맙네, 음악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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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라고 적었다가 지운다. 슬픔도 눈물도 너의 몫이다. 너의 삶과 사랑은 나와 같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가 지운다. 그것은 산 자의 일이다.  


삶의 끓는점은 적당히 높기에 라면처럼 쉽게 끓어오르지 않았다. 사랑의 조리법은 적당히 난해하기에 라면처럼 쉽게 맛볼 수 없었다. 적당하다는 것은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삶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네가 있었다. 그러나 딱 한 뼘이 모자라 너는 손에 닿지 않았다. 딱 한 뼘이기에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한 뼘은 얼마나 적당한 거리인가. 또 얼마나 잔인한 거리인가.


절벽 위에 핀 꽃을 꺾기 위해 바동거리는 아이처럼 나의 삶은 늘 위태로웠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용케 버텼으니 후회는 없다. 너를 향한 사랑이 모두 중독이었음을 깨달은 지금, 취하지 못한 꽃은 너를 위해 남겨두고, 나는 이제 스스로 몸을 던진다. 이제는 이 중독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물고기가 스스로 미끼를 물고 강과 바다가 아닌 곳으로 가듯, 나는 간다. 중독이 없는 곳으로, 너와의 거리가 적당하지 않은 곳으로.


마지막으로 먹는 라면이 펄펄 끓는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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