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일리아스>를 읽었다. 두 달에 걸쳐 읽는 동안 여러 다른 책들을 번갈아 보았다. 그 중 신영복 선생의 책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을 읽는 관점이 선생의 그것을 흉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리아스>에 대한 첫인상은 한마디로 불편함이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너무나 하찮은 것에 대해서 너무나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의 명예에 흠집이 생겼다는 것인데, 나는 이것이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앞에서 너무나 하찮게 여겨졌다. 또한 아가멤논의 엄청난 선물 공세와 눈 앞에서 동료들의 죽어가는 것도 잠재울 수 없는 그의 분노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되었다. 공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군자라 할만 하다고 했다. 또 소인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만, 군자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아킬레우스는 전형적인 소인이었다.
사실 아킬레우스에 대한 나의 판단과 불편함은 정당하지 못한 것일 지도 모른다. 선생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사람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놓여있는 상황과 맥락을 살피라고 말했다. 아킬레우스의 시대, 그리스는 약탈전쟁으로 사회와 경제가 굴러가던 때였다.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이 시대 남자들의 명예는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을 많이 챙기는 것으로 높아졌다. 그런 전리품을 아가멤논에게 빼앗겼으니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그는 일찍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 일찍 죽는 대신 이름을 남기는 것을 택하겠다는 것이 과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겸손한 자세인가를 따져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에게 명예를 얻고 이름을 남기는 일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그의 분노가 극단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람을 평가할 때 선생이 강조하는 또 하나가 시간의 흐름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 놓여있고, 크든 작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는다. 아킬레우스도 그러하다. 사실 수 천 년 전의 작품에서 어떤 인물이 변화와 성장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23권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 경기에서 그는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기거나 바꿔가며 경기를 진행한다. 이는 공정함의 문제라기 보다는 유연함의 문제인데, 작품의 시작 시점에서 아가멤논에게 전리품을 빼앗겨 분노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프리아모스 왕과 마주 앉아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마지막 장면 전에 이미 그의 변화와 성장이 이런 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이 작품에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등장하는데, 신들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킬레우스가 다른 인간들로부터는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고, 신들과는 굉장히 밀접해 있다는 점이다. 그가 불멸의 명성에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신들과 같이 영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킬레우스의 변화와 성장은 시간을 초월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신이 시간 속에 놓인 존재임을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프리아모스 왕이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와 아킬레우스와 대면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프리아모스 왕이 여러 자식을 모두 트로이 전쟁에서 잃은 비운의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방대한 작품 속에서 실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그때마다 시인 호메로스는 죽은 전사의 출생과 가족관계, 전쟁터에 흘러들어온 내력을 알려준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어떤 전사가 죽을 때,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슬퍼하고 고통받을 지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의 시신을 찾으로 온 프리아모스 왕은 나에게 선생이 우크라이나에서 본 승전기념탑과도 같은 충격을 주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을 제시하는 방법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타인과의 만남과 대화였다. 아킬레우스는 작품 속에서 시종 자신의 상처 입은 명예와 일찍 죽을 운명만을 걱정한다. 저 높은 곳에서 신들과 어울리며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고고한 모습이랄까? 그런 아킬레우스가 낮은 곳으로 내려와 인간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머니 테티스 신도 아니고, 가장 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도 아닌 내가 죽인 적장의 아버지다. 그 사람과 마주 앉아 아킬레우스가 인간의 운명과 존재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모든 의미는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선생의 관계론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