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니 자네가 나보다 한 살 아래더군. 자네를 자네라고 부르겠네. 요즘 나는 가면 쓴 자네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라네. 자네의 공연장을 찾거나, 음반을 구매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열성적인 팬은 아니라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어떤 가수의 공연장도 가본 적이 없고, 사서 들은 음반도 손에 꼽을 정도이니 말일세. 첫 주에 자네는 신해철의 곡을 두 곡이나 선곡했더군. 자네도 신해철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나중에 한 곡을 더 불렀지 아마. 나도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네. 전에는 나에게 특별할 것 없는 가수였는데, 그가 떠난 후 왠지 그의 노래가 더 좋아지더군. 참 이상한 일이지.


자네가 선곡한 많은 곡들 중 압권은 단연 두 번째 방송의 바로 그 곡이었네. 그 때가 아마 2월이었지. 나는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었네. 감기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질병인지 예전엔 몰랐었지. 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그 때에 자네는 어쩌자고 그 곡을 선곡하셨는가? 또 자네는 어쩌자고 그 곡을 그런 음색으로 부르셨는가?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네. 서른을 훌쩍 넘긴 사내가 또래 남가수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인지 나는 모르겠네. 사실 나는 노래를 부를 줄도 모르고, 들을 줄도 모른다네. 그 때문인지 나는 노래를 들을 때, 주로 가사와 가수의 음색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네. 그 곡은 전에 많은 가수들이 부른 것으로 아네만, 내 생각에 그 가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바로 자네의 목소리네.


그래, 목소리라고 해야겠네. 자네의 노래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네의 음색 때문이라고 답하겠네. 나는 적당히 우울하면서도 적당히 경쾌한 음색의 가수를 좋아한다네. 자네의 음색이 바로 그런 음색이네. 자네의 음색은 소년의 그것과 청년의 그것 사이를 오고가는데, 그 음색에서 묻어나는 감성은 청년의 그것과 중년의 그것 사이를 오고가네. 덕분에 <FANTASTIC BABY>는 전혀 가볍게 들리지 않았고, <봄비>는 지나치게 무겁게 들리는 것을 피할 수 있었네. 반대로 자네 음색이 돋보일 수 있는 곡을 자네가 영리하게 선곡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적고나니 마치 내가 음악평론가라도 된 기분이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부를 줄도, 들을 줄도 모른다네.


자네가 신해철의 곡을 다시 한 번 들고 나왔을 때, 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네. 그동안 한바탕 잘 놀았지 않느냐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네. 나는 자네를 보내기 싫었네. 아마 거기 모였던 사람들도 그랬던 모양이었네. 어느새 자네는 대중들의 '아주 오래된 연인'이 되어 있었던 게지. 2주 후에 자네는 특기인 고음을 뽐낼 수 있는 곡을 다시금 선보였네. 나는 안심할 수 있었네. 그런데 일은 다시 2주 후에 벌어졌네. 세상에, <백만 송이 장미>라니, 경연프로그램에서 <백만 송이 장미>라니. 그래, 이제는 '그립고 아름다운 자네 별나라'로 가시게나. '모두가 떠날지라도 사랑은 계속 될' 테니. 나는 체념했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네의 노래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고 하더군. 그제야 그 노래가 귀에 들어왔네. 한마디로 좋았네. 원곡 가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 노래가 이렇듯 좋은 곡이었는지 전에는 몰랐었네. 대학시절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묻던 선배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심수봉이라고 답했던 일이 뿌듯하기까지 했네. 그리고 나는 다음번엔 자네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네. 다시 한 번 거기 모인 사람들과 나의 생각이 일치했네. 그렇게 자네는 가면을 벗었네.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해명이 필요한 그런 사태라고 하더군. 어떤 이유가 있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먼저고,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해명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네. 예쁘니까, 착하니까, 부모와 닮았으니까, 능력이 있으니까 등등의 이유가 다 그렇다는 것이었네. 하다못해 집이 같은 방향이라는 이유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네. 나는 그럴듯한 주장이라고 생각했었네.


내가 지금 자네의 노래에 대해 끄적거리는 것이 그런 것 같네. 이렇듯 뭔가에 열광한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네. 해서 나는 나름의 해명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적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걸세. 굳이 따지자면, 이 글은 편지가 아니라, 일기인 셈이네. 혹시 이것이 내가 만들어낸 해명이라고 해도 자네는 실망하지 마시게. 나 또한 미안해하지 않겠네. 아니, 이것은 나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해명임이 분명하네. 허나 이것 또한 분명하네. 지난 몇 달 동안 자네의 노래를 듣고 정말 좋았네. 그동안 즐거웠네. 고맙네, 음악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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