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네 권의 역사책을 간단한 메모로 정리하고 넘어간다. <정의의 감정들>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제기한 소송을 분석하여 그들이 풀고자했던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을 연구의 대상으로 한 감정사 책이다. '한국 사회 집단 불안의 기원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식민지 트라우마> 역시 열등감과 열패감, 모욕과 수치, 인정욕망과 히스테리컬한 공격성 등 식민지 시기 감정사를 탐구한다. <전쟁과 가족>은 한국전쟁의 경험을 가족과 공동체라는 관계망 속에서 사유하는 책이다. '근대성의 표준으로 설정된 남성을 역사화하려는 시도'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는 <남성성의 각본들>은 해방 후 민족국가 성립 과정에서 배제된 비남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의의 감정들>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차별당한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같은 시기 유럽이나 중국, 일본 등과 비교해도 특이할 정도로 법 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여성은 남성 대리인을 법정에 세워야 했다고.) 또 하나는 여성들이 주로 법정에서 호소한 것이 남편을 비롯한 가족의 억울함이었다는 점인데, 이 경우 여성이 가부장의 대리인으로 격하되는 동시에 질병등으로 무능한 남편을 대신하는 능동적인 여성으로 상승하는 면이 있는 것으로 읽혔다. 조선시대에 여성의 삶 특히 사대부 양반 남성에 의해 차별당하고 배제당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독서가 더 필요하다.
사실 나처럼 감정사에 무지한 독자 입장에서는 <식민지 트라우마>에서 다루는 식민지 시기의 조선인의 감정이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보여 이런 것이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놀라운 정도다. 다만 뒤 표지에 적혀있듯 '권위주의, 부정부패, 정치 불신, 물질주의 등 해방 이후 우리 사회 적폐의 뿌리까지 엿볼 수 있는' 연구라는 점에서 내게는 아주 반가운 역사책이었다. 이 책에서 발견한 (아주 사적인 기준에서) 최대의 수확에 해당하는 문장을 옮겨보면 이렇다. 한국 사회는 왜 공동체 또는 공공선에 대한 관심이 약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다.
삶의 모든 면에서 불안과 불안정을 안고 살았으므로 적대적 타자에 대해서는 빠르게 대항적 에너지를 끌어내지만 타자가 부재할 때 그 적대의 에너지는 자기 자신, 가족, 이웃, 마을, 지역의 구체적이고 사적인 이해를 위해 투입된다. 국민국가 경험의 부재는 공과 사, 국가와 시민사회, 개인과 국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주체의 모습으로 공동체, 친족과 같은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 <전쟁과 가족>에서는 친족이 사적 영역에 속하며 이 친족이 공적 세계에서 물러나야 근대사회와 정치의 지평이 드러난다는 주장을 근대 정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책은 전쟁을 경험한 주체는 홀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친족의 일원이었고, 국가권력(남과 북, 그리고 미군도)은 이 점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좌제로 대표되는 전후에 펼쳐진 역사도 마찬가지로 친족관계를 정치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공적 세계가 회복되기 위해 친족의 목소리가 오히려 크고 분명하게 들려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내게는 대단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희생자(친족)를 애도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면서도, 친족을 철저히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나의 편견(?)을 쉽게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시 관련된 독서가 더 필요함을 실감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족을 달자면, 이 책 덕분에 최근 독서모임에서 읽은 박완서의 작품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안티고네>에 대해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열렸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민족국가의 탄생과 남자-되기'라는 <남성성의 각본들>의 부제가 암시하는 바는 익숙한 주제인데, 이것을 이광수, 김동리, 염상섭, 손창섭, 황석영 등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 풀어나는 것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거기에 서북청년단, 국민개병제, 국가보안법과 병역법 등 현대사가 버무려지면서 네 권의 책 중 가장 내 입맛(?)에 맞는 책이 되었다.
한국문학에서 보편으로 삼은 민족문학, 리얼리즘 문학은 철저히 젠더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분석은 주목할 대목이다. 그런데 그 문학(그리고 몇몇 영화)사 안에서도 '남성성의 각본'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목소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지적은 더 주목할 만한다. '남성성을 탈구축하고, 젠다화된 문학사를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라는 지배적 허구에 관한 텍스트로 다시 읽음으로써 더 많은 텍스트들, 더 많은 가능성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를 응원한다. 우리 문학사가 써내려온 남성성이 허구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가능성'과의 조우가 아닐까?
굳이 네 권의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자면 '국가'가 될 것인데, <정의의 감정들>에서 국가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최종 심판자, 국왕으로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작 억울한 일이 펼쳐질 때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는, 왕은 마지막 장면에만 등장한다. <쌀 재난 국가>에서 말한 재해를 방지하는 정도의 역할만 맡은 국가가 떠올랐다.
<식민지 트라우마>에 국가는 없다. 일상적으로 전방위적으로 폭력과 모욕을 가하는 당국(총독부)가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민족감정으로서의 민족주의가 성립했고, 이것이 초래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은 위에 적은 것과 같다.
<전쟁과 가족>의 국가는 한국전쟁 기간 중 철저하게 친족, 공동체, 관계를 파괴했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 모두에서 전후에도 철저하게 친족을 정치적으로 관리하면서 통치에 이용했다.
<남성성의 각본들>의 국가는 오직 남성을 일등 시민으로 호명하는 국가다. 여성과 남성성을 의심받는 남성들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