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전혀 읽지 않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주로 소설을 읽었다. 소설만을 읽는 일이 물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비문학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해서 이제는 다시 소설을 떠나보낸 지 6개월쯤 되었다. 지난 반년 동안 읽을 책들을 정리해본다. 이 번잡한 독서에서 굳이 하나의 키워드를 찾자면 ‘공공성’이 적당할 것이다. 전에는 공동체, 가치, 윤리와 같은 문제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나는 요즘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혹시 진실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1. ‘나’라는 괴물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들이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킬레우스의 성장과 변화가 프리아모스 왕과의 대면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성장과 변화는 고립에서 벗어나 관계와 만남을 통해 가능하다. 작품 중반까지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아킬레우스는 골방에서 책만 읽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다.
한편 오디세우스가 만난 괴물 퀴클롭스의 정체(?)가 흥미롭다. 그는 같은 종족들과 어울려 살지 않고, 동굴 속에서 혼자 사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신의 명령이라는 말에 ‘나는 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대꾸한다. 공동체, 가치, 윤리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골방에 들어앉아 혼자서 책만 읽는 내가 바로 외눈의 괴물이 아니었던가? 외눈으로 책을 보니 제대로 읽지 못할 수밖에 없다.
2. 가치의 문제
한참 전에 유행했던 샌델의 책들을 이제야 읽었다. 본인은 공동체주의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뒤늦게 샌델을 읽으며 나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하는 문제, 즉 가치의 문제에 눈을 떴다. 샌델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와 권리 차원의 문제접근을 지양하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동성 결혼은 당사자들의 문제이니 국가가 허용 여부를 정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내 입장이기도 한데, 샌델은 이에 반대하는 것이다. 동성 결혼 허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이성 간의 결합을 신성하게 여겨 보호하는 것처럼 동성 간의 결합도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한 정치인의 페미니즘과 채식을 강요하지 말라는 발언을 들었다. 당연히 전후 맥락은 생략된 채 보도가 된 것이겠지만, 페미니즘과 채식의 공동체 차원의 가치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을 내세우며 강요하지 말라는 정치인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정치란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일이 아닌가? 그 정치인이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고 하니 다시 한번 그의 발언과 가치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의 발언을 비판했던 화살은 나에게 되돌아왔다.
3. 나의 조선사 공부
미야지마 히로시와 계승범이라는 역사학자를 새로 알게 되어오랜만에 조선사 책을 몇 권 읽었다. 조선사는 사극을 즐겨 보던 어린 시절부터 나의 오랜 관심 분야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논점은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이라 할 것인데, 나는 조선 시대 양반의 신분적 특징에 대한 논의에 눈길이 갔다. 집약적 도작으로 인해 토지 경영에서 물러나게 된 양반층이 토지에 대한 특권을 상실함과 동시에 과거 합격자의 소수 가문의 집중 등 폐쇄적 특권을 지닌 신분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조선사 전반에 걸쳐 일어난 일이고, 주자학의 확산과 보급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부가 더 필요한 지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시대에 대한 이미지, 즉 충효로 대표되는 유교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 질서, 사대와 소중화 의식은 주로 조선 후기의 모습인데, 이러한 변화의 시작점으로 계승범은 중종 대를 주목한다. 외교, 정치, 학문 등 전방위적으로 조선의 유교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반정으로 왕위에 앉혀져 재위 초반 실권이 없었던 중종과 명 황제 가정제와의 특별한 관계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한편 나로서는 16세기까지 한반도의 남성들이 귀걸이를 했다는 뉴스(?)는 의외이면서도 재미있는 소식이었다. 마침 계승범의 신간 <모후의 반역>이 나왔다기에 읽어볼 생각인데, 아마도 조선의 효치와 광해군 대의 정치사를 다룬 책일 터이다.
4. 미국이라는 나라와 한반도
<반지성주의>는 현상을 분석하기보다 그 배후를 추적한 책인데, 미국의 종교사가 거론되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미국 대외정책 실패의 역사를 현지의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틀로 살피는 책이다. 이 두 책은 ‘어떻게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공통으로 찾을 수 있는 답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불평등과 특권층에 대한 반감이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우려스럽다.
나머지 세 권의 책을 거창하게 소개한다면 한반도의 과거를 읽고, 비극을 반성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가 미국인을 위해 쓴 한국전쟁사라는 브루스 커밍스의 책은 추천할 만하다. 전쟁의 기원을 일제에 의한 병탄과 해방정국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술하면서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전쟁 발발 직전과 도중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 범죄의 참상은 한국인이라면 꼭 대면해야 할 과거사인데, 이는 아직도 풀지 못한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
5. 정치의 발견과 불평등 문제
어떤 책을 읽어도 불평등의 문제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불평등이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상훈의 책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냉소와 좌절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절박한 문제를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책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옮겨놓는 것으로 정리를 대신한다.
빈곤 인구의 비율이 낮고 계층 간 불평등 정도도 낮으며 비정규직의 규모도 작은 나라는 어디일까? 투표율은 높고 인권 및 자유화 지표도 좋으며 소수자 및 이주민에 대한 권리 부여 정도가 높고 여성 장관 비율도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기대 수명도 높고, 불법 약물 복용, 10대 임신, 10대 자살, 저체중아 출산율, 정신 질환 발병률, 영양실조, 비만율이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 후천적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한 사회적 유동성이 높은 나라, 즉 기회의 평등이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강력 범죄율과 재소자 비율이 낮은 안전한 나라는 어디일까? 요컨대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국가 간 민주주의의 성취를 통계적으로 조사 연구한 성과들이 몇 개 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설득력 있는 결론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진보 정당의 경쟁력(집권 기간, 득표 경쟁력 등)이 큰 나라일수록, 다른 하나는 (보통 노조 조직률, 노사 협약 적용률, 노조의 중앙 집중화 정도로 평가하는) 노동조합의 힘이 강할수록 좋은 지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노동을 배제하는 정도가 덜할수록 그리고 진보적인 정당들도 상당한 득표를 하고 집권의 전망도 있는 나라들이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6. 우리, 인간들
이런 과학책들은 아무리 쉽게 씌었어도 나로서는 어렵고 낯설기만 하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는 책들인데,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간다. 윌슨의 책은 인간의 창의성과 인문학의 기원으로 우리의 먼 조상들이 밤에 불을 피워놓고 대화를 나누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장회익은 물리학의 법칙으로 생명을 정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뜻밖에도 ‘온생명’이라는 관계론적 결론에 이르고 있다. 철학자 김동규와 생물학자 김응빈의 책 역시 공생과 관계의 철학을 역설하고 있어 흥미롭다. 장대익의 책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우리 인간사를 설명하는 책이고, 김대식의 책은 그나마 쉽게 읽을 수 있는 뇌과학과 인공지능 입문서 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7. ‘나’라는 사람
연암은 물이고, 다산은 불이다. 두 사람의 사주와 살아간 내력, 두 사람이 남긴 저서에 드러난 학문과 글쓰기 방법론, 인간관계와 당대의 정치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둘은 서로 대비된다.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읽은 책인데, 오히려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불이면서도 불인 줄을 모르고 사십 년을 살았다. 심지어 나는 내가 물이거나 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내 사주에 (큰) 불이 들어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이 더 흥미롭게 읽혔고, 읽는 동안 내 문제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이 책을 숙제처럼 읽었는데, 새로운 숙제가 생기고 말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에 대한 내 생각은 얼마나 정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