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저는 야구를 모릅니다. 야구장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경기 중계를 볼 때면 아직도 모르는 규칙이 종종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응원하는 팀이 있고, 중계방송을 열심히 봅니다. 물론 이글스를 응원하지는 않습니다. 감독님께서 얼마 전에 라디오 인터뷰를 하셨더군요. 직접 듣지는 못 했고, CBS <김현정의 뉴스쇼>라는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감독님 말씀 중 궁금한 점 두 가지를 여쭈어 봅니다. 첫째, 거의 모든 투수가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를 말려야 하지 않느냐는 앵커의 물음에 감독님은 타협하지 않고, '거기'를 넘어야 강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지만 참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쭙습니다. 말리셨다는 겁니까? 독려하셨다는 겁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말리셨지만, 속으로는 반기셨다는 뜻입니까? 두 번째로 앵커와 기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가 혹사당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에 이글스 투수들도 포함된다고 여겨도 되겠습니까? 감독님은 '혹사 논란'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아니라면 모두가 혹사당하고 있으니 그냥 모르는 척 해달라거나, 누가 나한테 돌을 던질 수 있느냐는 취지로 하신 말씀입니까?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가 혹사당하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문제라고 인식하고 계십니까?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선배 세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아닙니다. 이 질문은 안 들으신 걸로 해주십시오. 아마도 감독님은 이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시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무슨 자격으로 감독님께 문제해결을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이 질문에 답하시라고 강요할 자격부터가 없겠군요.
'과학이란 마치 길 건너편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반대편 가로등 아래서 열쇠를 찾고 있는 술 취한 사람과 같다. 가로등 아래에 빛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은 없다.' 아시겠지만, 촘스키의 말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다지요. 저는 감독님께서 야구를 그만두시는 날까지 감독님의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감독님은 지금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계십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찾고 계십니다. 감독님의 야구는 옳습니다. 감독님의 야구 인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태는 감독님의 야구가 옳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사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추사가 그랬다지요. 지인들이 추사체가 '괴하다'는 말들 듣고 와서 추사에게 전하자, '괴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밖에 쓸 줄 모른다'고요. 과연 추사다운 자존심과 고집입니다. 훗날 감독님의 야구가 추사체만큼의 명품이 될 수도 있을까요? 추사체는 전범을 따르지 않은 글씨입니다. 추사체가 명품인 이유는 바로 그 파격에 있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감독님의 야구는 옳습니다. 일종의 전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전범을 뛰어넘는 파격이 이미 등장했고, 그것이 이제는 또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다른 젊은 감독들을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야구를 모릅니다. 따라서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 찾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덕분에 감독님께서 찾고 계신 열쇠가 '거기'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잘 보입니다. 중언부언했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감독님, 열쇠는 '거기' 없습니다. 외람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독님과 이글스의 행운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