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서 아니 에르노의 작품 두 편을 읽었다. 책을 읽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을 듣게 되었는데, 에르노는 작품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주인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퇴행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충격이었다. 문학을 특히 소설을 읽으면서(에르노는 자신의 작품을 소설이 아니라고 한다지만)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작품을 읽으라는 말인가? 내게는 그것이 문학 독법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중반까지 얼마나 주인공 아킬레우스를 욕했는지 모른다. 전장에 나아간 장수가 어쩌면 그렇게 어린 아이 같은지. 그런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적장의 아버지와 마주 앉아 엄청난 감동을 선사한다. 의젓함을 넘어서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 그를 두고 나는 칭찬을 쏟아냈다. 그런데 모임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과연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가 우리들 일상에서 일어나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대개의 경우 나는 어떤 계기가 주어져도 변화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못한다.
사실 이 충격이 큰 이유는 다른 데에 있는데, 평소에 내가 사로잡혀 있는 이런 생각들 때문이다. 바로 '우리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모두가 잘날 필요는 없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변화하지 않고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판타지를 기대하며 작품을 대했던 것일까?
천동설의 세상에서 지동설의 세상으로 옮겨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앞으로는 전처럼 작품을 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당장 특별한 수가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지적하는 일은 얼마나 쉬웠던가? 이제는 작품을 중심에 두고 그 둘레에서 내가 움직여야 한다. 일단은 '나도 그러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싫어했던 주인공들처럼 나도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안티고네와 도련님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독서 모임에서 <안티고네>와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으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은 말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건만 역시 쉽지 않다. 나도 안티고네처럼 변화하지 않고, 도련님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어쩌면 사과가 아니라 화해를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