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가리키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무언가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무언가가 너무나 중요한 나머지 당연히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그것을 말로 논의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279

우아함에 대한 이런 생각은 또한 사실주의의 발전을 막있다. 전통적인 일본의 미학에서는 예술이 추하거나 혹은 우아하지 않은 사물로부터 아름다움을 구현해낸다는 개념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다루지도 않는다. 일본 예술이 주목하는 것은 그보다는 귀족과 부자들에게 친숙한 우아함이다.
따라서 일본 미학과 그 산물에 반영된 현실에는 논밭이나 농부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특수한 효과를 위해 예외적으로 포함하는 경우는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다룰 예정이다.) 하지만 자연은 거기 포함되어 있다. 자연의 묘사는일본의 예술과 미학에서 다루는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예술에 등장하는 자연은 편집되고 축약되었으며, 일본 미학과 예술의 대부분을 규정하게 된 규칙들을 충실하게 따른 나머지 ‘자연‘을 암시했다고 하는 편이 나올지도 모른다. - P284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은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는 생각을 애써 회피하며 한평생을 보낸다. 오직 몇몇 시인만이 그 사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그결 기념하고 찬양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인들뿐이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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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지위에 오른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일본만큼 여성을 여전히 이토록 노골적으로 물품처럼 여기지 않는다. 이중 잣대의 뿌리가 너무 깊은 나머지 어디에서나 당연시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중 잣대를 감추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여성을 경제적, 사회적, 성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장치들이 부끄러움 없이 드러나 있고, 누구도 그 정당성에 제대로 된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남성이 이토록 혜택을 누리는 시스템에서 남성이 시스템에 의문을 던질 리는 물론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여성이 자신들에 대한 억압의 정당성에 동참하는 경우도 흔히 보인다. 여성들이 복종하고 견디는 것이다. 혹은 남성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생겨난 업계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런 업계의 여성들은 방심하는 사이에 자신들이 상대하는 남성들만큼이나 약자를 착취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진심에서건 냉소에서건 어쩔 수 없어서건, 여성들은 시스혐의 부역자가 된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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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국경을 넘는다는 행위를 경계해왔다. 줄곧 자신들의 국경을 단순히 근처에 그어져 있는 선이 아닌, 행위를 제한하는 경계선으로 인식해왔다. - P226

일본에는 일본인이라는 것에 대한 완고한 정의가 존재한다. 일본인은 경계 안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바곁에 있다. 귀화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다른 나라들이 귀화를 받아들이는 만큼이나 완고하다. 귀화와 같이 정해진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일본에 살면서 일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P229

일본의 단어들은 자체적으로 순화되기는 했어도, 진정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들은 아직 일본의 문도 두드리지 않았다. 정치적 올바름이 가져다준 성취와 그 반면의 끔찍한 불편함 또한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은 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매우 수상쩍게 여긴다. 그러한 경향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군함이 무역의 탈을 썼으나 사실은 누가 봐도 제국주의 착취의 시도라는 목적을 갖고 등장했을 때에 대폭 심화되었다. - P230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언제나 자신보다 뒤떨어졌다고 생각했고 이용할 대상으로만 여겼다. 스스로도 제국주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처지였던 일본은 자신들이 동경해 마지않았던 서구 열강을 모방해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중국 및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는 한국을 병합해 이른바 국경을 확장해나갔다.
20세기의 초반에 이런 작업에 성공했던 일본은 식민 지배의 야망을 결국 아시아의 나머지 지역에까지 확대했다. 이런 식으로 타국의 국경을 파괴하던 행위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슬로건 아래 행해졌다. 이 문구는 서구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비로운 일본의 리더십 아래에 아시아를 경제적·정치적으로 통합한다는 생각을 내세우고 있었다.
동시에 일본 국내에서 이 문구는 아시아 대륙으로의 확장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본(혹은 일본 정부의 일부 인사)은 서양 제국주의의 위험으로부터 아시아의 불행한 나라들을 구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주장을 통해, 일본인과 일본 자본이 침략해들어갈 구실을 찾고자 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에게"가 그때 사용되었던 구호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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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을 찬양하는 일련의 문화는 다도로부터 탄생했다. 이는 세심하게 낡고, 과시적으로 가난하고, 요란하게 정갈한 식탁과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 - P139

일본은 친밀하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딱 잘라 거리를 두는 정도가 다른 나라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한다. 일본은 여전히 은밀하기보다 노골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나라다. - P151

겉으로 잘 얘기하지는 않지만 일본은 한때 자국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열등한 동생 취급했던 과거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P174

광활한 수경재배 농장과 거대한 유통망을 자랑하는 현대의 일본에서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제철 꽃과 제철 음식에 열광한다.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 덧없음을 찬양할 구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P183

가령 전통 조경사가 여기 있던 바위를 두 가량 이동시키고 대나무 수풀을 1~2미터 정도 뒤로 옮겨서 산이 바라다보이던 조망이 사라졌다고 하자. 일본에서는 이런 인위적 변화의 결과물을 자연 그대로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혹은 일본 전통의 꽃꽂이인 이케바나生花는 꽃을 꺾어다 다른 장소에 가져다놓고 배열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꽃生花‘이라고 부른다. 꽃은 꺾여서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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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에는 사이즈가 두 개밖에 없다. 남성용 사이즈와 여성용 사이즈. 기모노가 옷을 입는 사람의 사이즈에 맞추어 디자인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사람을 기모노에 맞추려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일본인은 성별과 같은 중요한 차이를 빼면 모두 같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진정한 독창성이 흔히 묵살되곤 하는 일본에서 개인의 특성을 살려 맞춤옷을 만든다는 개념은 중시되지 않있다. 그보다는 화합이 만사의 목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복장에서도 기꺼이 동질성을 드러낸다. - P73

자기 업무는 끝났을지라도 동료들과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룹의 일원이라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이기적인 일정을 위해 서둘러 퇴근하는 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조직의 시간표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사무실에 남아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전혀 아니며, 남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P115

일본의 직장인들이 서양에서 업무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붙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다. 일본의 그 악명 높은 업무 효율은 시간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일본의 효율은 조직 내 갈등이 없다는 사실과 조직 내 경쟁은 넘쳐나지만, 미국인들과 대부분의 유럽인으로서는 거의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일본인들이 사상적 단결을 한다는 데서 힘을 발휘한다. - P116

서양과 비교하면 일본의 마약 문제는 아주 작다. 하지만 망가와 워크맨의 효과는 마약이 가져다주는 효과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두 경우 다 현실세계가 차단되고, 중독되면 현실세계보다 환각으로 인한 가짜 세계를 선호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유사점이 있다. 망가와 워크맨도 중독된다. 대한 ‘현실‘이 훨씬 더 즐겁기 때문이다. - P126

오랜 세월 일본에서 비판의 표현은 침묵을 통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비판할 일이 있으면 반응하기를 거부한다. 침묵의 비판이 내는 소리는 더 크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비판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입을 닫고, 눈을 망가에 몰입시키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있다. - P127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 대중이야말로 모든 사회와 따라서 모든 정권의 집단적인 소망에 대한 답이다. 그런 사회의 이상적인 시민들은 무조건적 화합이라는 이상에 모두 동의하고, 모두 소극적인 방식으로 기여한다.
하지만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체주의적 방식에 의문을 던지면서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의식 있는 단체와 개인들(나가시마 오시마 감독, 나가사키 시장, 내가 탔던 택시의 기사)의 숫자와 목소리가 커져만 간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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