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노에는 사이즈가 두 개밖에 없다. 남성용 사이즈와 여성용 사이즈. 기모노가 옷을 입는 사람의 사이즈에 맞추어 디자인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사람을 기모노에 맞추려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일본인은 성별과 같은 중요한 차이를 빼면 모두 같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진정한 독창성이 흔히 묵살되곤 하는 일본에서 개인의 특성을 살려 맞춤옷을 만든다는 개념은 중시되지 않있다. 그보다는 화합이 만사의 목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복장에서도 기꺼이 동질성을 드러낸다. - P73

자기 업무는 끝났을지라도 동료들과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룹의 일원이라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이기적인 일정을 위해 서둘러 퇴근하는 행위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조직의 시간표에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사무실에 남아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전혀 아니며, 남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P115

일본의 직장인들이 서양에서 업무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붙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다. 일본의 그 악명 높은 업무 효율은 시간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일본의 효율은 조직 내 갈등이 없다는 사실과 조직 내 경쟁은 넘쳐나지만, 미국인들과 대부분의 유럽인으로서는 거의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일본인들이 사상적 단결을 한다는 데서 힘을 발휘한다. - P116

서양과 비교하면 일본의 마약 문제는 아주 작다. 하지만 망가와 워크맨의 효과는 마약이 가져다주는 효과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두 경우 다 현실세계가 차단되고, 중독되면 현실세계보다 환각으로 인한 가짜 세계를 선호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유사점이 있다. 망가와 워크맨도 중독된다. 대한 ‘현실‘이 훨씬 더 즐겁기 때문이다. - P126

오랜 세월 일본에서 비판의 표현은 침묵을 통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비판할 일이 있으면 반응하기를 거부한다. 침묵의 비판이 내는 소리는 더 크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비판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입을 닫고, 눈을 망가에 몰입시키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있다. - P127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 대중이야말로 모든 사회와 따라서 모든 정권의 집단적인 소망에 대한 답이다. 그런 사회의 이상적인 시민들은 무조건적 화합이라는 이상에 모두 동의하고, 모두 소극적인 방식으로 기여한다.
하지만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체주의적 방식에 의문을 던지면서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의식 있는 단체와 개인들(나가시마 오시마 감독, 나가사키 시장, 내가 탔던 택시의 기사)의 숫자와 목소리가 커져만 간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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