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는 전쟁을 일으킨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그들의 문화를 섭취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개인으로서 져야 할 전쟁 책임은 물론 없지만, 침략전쟁에 빠져든 사회나 문화, 그리고 국가의 책임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 P395

패전 이후 일본 사회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는지, 전쟁에서 얼마나 정신적으로 왜곡되었는지 되돌아보는 일 없이 약자를 배제하면서 경제활동에 매진해왔다. 과거의 짐이라는 유산은 회사 인간, 장·노년층에서 자주 보게 되는 억울증, 아이들이 자폐화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P422

강인함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물으면, 답은 강인한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진솔하고 강건하여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인간이 훌륭한 인간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과거 일본 군인의 정신주의와 같다. 그리고 강인한 의지에 평화주의를 접목해 놓으면, 바람직한 삶이 돼버린다.
과연 강함이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
나는 강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은 경직돼버린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늘 구체적으로 알려고 할 것. 충분히 알고 나서 당사자에게 감정이입하여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 P440

집착 기질 및 멜랑콜리 친화형 성격은 사회과학의 관점을 결여한 정신과 의사의 연구에서는 어디까지나 선천성 기질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러한 기질은 집단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질이다. 즉 사회의 주형에 부어 만들어낸 성격이다. 그것은 권위와 질서의 방향으로 경직돼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감정 교류를 중시하지 않는다. - P462

전시에서부터 전후로 이어진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강한 정신‘이라는 물음은 양방향으로 기능했다. 즉,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자신의 정신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었다. - P463

인간을 ‘물건‘ 취급하는 사고방식은 세상의 풍조에 몸을 맡긴 채 집단 속에 살면서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하고,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의식이 희박한 사회 속에서 빚어져 가는 게 아닐까요? 유아사 의사가 보낸 전쟁의 나날과, 지금의 일본은 이런 점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요? 그리고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수많은 사회문제도 여기로 귀결하는 것 같습니다. - P4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 이 부분 정말 <사세동당>에 나온 그 일본인 노부인 생각난다...

오노시타는 이때 어떤 부인의 발언을 통해 일본군의 패배를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이 국제 정세나 미국의 공업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리가 없다. 다만,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인 주부가 "일본군은 반드시 망한다"고 한 말에 수긍이 가는 바가 있었다.
그 부인은 양가에 태어난 일본인이었는데, 일본에 유학 왔던 네그로스섬 지주의 아들과 결혼한 후 필리핀 국적을 얻어 그 섬에 살고 있었다.
(중략)
그녀는 "일본군은 약탈하고 불을 질러요. 나는 그런 짓을 할리 없다고 변명해왔지만, 우리 집도 같은 일을 당했지요. 연대장에게 항의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주민을 모두 적으로 바꿔버리는 전쟁을 하다가는 반드시 망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 P3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병은 권력이 있습니다. 만주국의 경찰이나 헌병단, 철도경호대를 휘하에 두고, 군인이든 일반인이든 끌어다가 조사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무서운 게 없어요. 이렇게 되면, 안 해도 되는 일까지 하게 됩니다. 주어진 임무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공적을 세우기 위해 무엇이든 합니다." - P308

헌병은 일반 장병과 달라서 피해자와 개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군대에 의한 살상의 대부분은 완전히 일방적이며, 장병들 개개인은 피해자의 사정을 거의 모른다. 그러나 헌병은 피해자의 가정 사정을 알고 있으며, 게다가 죽음으로 몰아갔던 과정까지 기억하고 있다. - P360

상처 입은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음습한 협박의 문화, 죄를 자각하는 것의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367

"국가에 맹종해서는 안 돼. 전쟁만큼 큰 죄악은 없어. 이것만큼 쓸데없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 반드시 도망쳐야 해. 전쟁에 이겨서 행복해진 나라는 없다. 이겨도 져도, 수십 년 지나고 나면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버려."
나는 어눌한 도호쿠 사투리로 말하는 쓰치야를 바라보면서, ‘불타올랐던 야심도 그 불씨가 다 타서 잦아들게 마련이다. 쓰치야에게도 이렇게 따뜻한 노인이 숨어 있다.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는 살기 힘든 사회에서어떻게 도망치면 좋을지 우리에게 답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3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면에 공격성을 숨긴 긴장의 강도가 강한 사회가 전쟁에 치를 떤다고 해서 정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 - P253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는 데는 취약하고, 행동을 기술하는 데는 능통하다. 당시의 일본인, 그리고 지금의 일본인에게 이어지고 있는, 변함없는 성격 경향이다. - P2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 일본 병사의 대부분이, 그리고 패전 후 일본인의 대다수가, 전쟁기의 잔학행위를 알게 될 때마다 자신들이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바로, ‘전쟁이란 그런 거야‘라는 식의 사고로 방어하고, ‘그 이상은 말하면 안 돼‘ 하며 몸을 사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양한 이유를 붙인다. ‘잠자는 아이를 깨우지 마라, 국익에 손해를 끼친다, 배상을 청구하면 어떻게 하나.‘ 전후세대도 이와 같은 감정적인 과잉방어를 계승하며 살아온 게 아닐까? - P208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죽임을 당한 자의 처지에서 보았을 때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시점이다. - P220

그는 "포로를 죽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불교도로서)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저항에 대해, 일본적 집단주의에서는 명령자가 처벌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명령자, 즉 처벌하는 자가 개인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대신 집단 전체가 ‘저 자식은 못 써‘라고 판단하여 진급시키지 않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처벌을 한다. 보이지 않는 처벌에서 처벌하는 자는 숨어 있다. 처벌하는 것은 집단이다. 물론 그가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적극적으로 항의했다면 공개적으로 처벌당했을 것이다. - P227

밀그램은 ‘어떤 목적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회 조직에서 사람은 손쉽게 ‘대리 상태‘가 되며, 자신을 타인의 요구를 수행하는 도구로 간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 P233

부하의 마음속에서 책임은 줄곧 윗사람이 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하는 ‘권위에 의한 허가‘를 요구한다. 사실 윗사람에게 계속해서 허가를 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도덕적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을 감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볼수 있다. - P234

복종은 반대 의지나 철학이 극적으로 대결하는 형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 영달의 희망,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적인 관행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다. - P235

순종적인 것이 선(善)으로 간주된다. 판단력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요구되며, 목적 그 자체에 대한 회의나 비판은 기피된다. 그리고 업무는 집단의 관점에서 수행된다. 살인이나 반사회적 행위조차도 업무일 수 있다. - P2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