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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당국의 국가주의적 경제 정책의 중심 목표는 미국을 희생양으로 중국의 기술 고도화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이 야심은 2015년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정책에서 완전히 드러났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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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행정부의 첫해에 워싱턴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은 중국의 인권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무역을 우선시했다. 중국공산당과 국가는 가장 강력한 미국 기업 중 일부를 자신들의 ‘대리 로비스트‘가 되도록 동원해 미국 정책을 흔들었고, 민주당 정부가 정치적 자유화보다 중국과의 자유무역을 우선시하도록 만들었다. 사후 정당화로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과의 자유무역이 중국의 민간기업과 중산층에 힘을 실어줄 수 있고, 이는 결국 정치적 자유화의 추진으로 이어진다는 ‘건설적 관여‘ 이론을 내세웠다. 어쨌든 중국은 자신의 권위주의적 입당 통치에 손상을 입지 않고 미국 주도의 세계 자유무역 질서에 성공적으로 스스로를 초대했다. 중국의 MFN 지위와 인권 문제 연계 조치를 해제시킨 것은 미중무역 자유화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세계 최대 소비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자유무역 수용과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서 중국의 세계 무역 체제로의 통합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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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워싱턴과 베이징을 결속시킨 공동의 적이었던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중국 공산당과의 준동맹 관계를 재평가했고, 중국을 지구화의 궤도로 끌어들이는 데 급급해하지 않았다. 그 대신 클린턴 행정부회 외교 정책 엘리트들은 처음에 권위주의적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보았고 중국 정책에서 인권 개선을 우선시했다. ‘중국 위험론‘이라는 외교 정책 담론이 워싱턴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소련 다음으로 미국이 맞지고 견제해야 할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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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힘이 약하고 미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것에 만족하는 한 미중 관계는 조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이 일정 수준의 역량과 자신감을 갖추자 더 큰 야심을 내비쳤고 미국은 중국을 도전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두 나라 사이의 조화는 갈등으로 변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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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무관심‘이라는 병이 만연해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 매우 위험한 징조다. 세상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보기에 이거다 싶은 ‘알기 쉬운 악인‘이 아니라 ‘무비관적이고 무관심한 선인‘이기 때문이다. - P272

신규 대출 일관 채용이란 모두 똑같은 시기에, 모두 똑같은 활동을 하고, 모두 똑같은 시기에 입사하는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 심지어 채용하는 측인 기업은 정중하게 채용 활동 시작일까지 똑같이 맞추는 기괴한 일까지 벌이고 있다. 이러한 채용 방식을 주요 인재 획득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사회의 규칙에 동조하지 않는 개성 있는 인재는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어느 기업이나 판박이처럼 ‘변혁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개성적인 인재를 추구한다‘는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메시지를 취업 시장에 내걸고 있는데, 대 일괄 채용이라는 채용 방식을 취하면서 이러한 메시지를 보내는 자체가 자기기만이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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