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 출장다녀온 직장 동료가 아침부터 나한테 따지듯이 묻는다.

"아니, 남자들은 원래 다 그래요?"
"네?"
"이제 돌을 갓 지난 아기도 있고 결혼한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고 싶어요?"

뭔 일이더냐 하고 긴장해 있는데, 찬찬히 설명한다.

직장에서 일본으로 출장 겸 여행을 몇명이서 갔는데, 그 중 남자 하나가 기어코 스트립쇼를 보겠다고 가이드를 졸라서 결국은 스트립쇼를 보고 왔다는 것이다.

"저는 이분법적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혈액형으로 사람 나누는 것도 상당히 싫어하잖아요..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렇다는 구분은 별로 안좋은 것 같아요.. 남자도 그런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나같이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라고 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생각할수록 기가 차다.

개인적으로 스트립쇼를 가겠다는데 별로 말릴 생각은 없다. 다양성을 추구하고 존중하는 세상에서 다양한 성적 욕구를 풀겠다는데 말린다고 될 일인가?
그런데 내가 열받은 것은 이러한 상황이다.

말은 직장이라고 했지만 내 직장은 엄연히 국가기관에 속한다. 말이 출장이지, 4박 5일에 공식 방문 일정은 하루뿐이고 나머지는 여행하는 것이다. 근속년수 많은 사람들 위주로 해마다 일부를 해외여행시켜주는 것이다. 결국은 나랏 돈으로 출장보내주고 여행까지 시켜주는 것인데, 이 사람은 필경 나랏돈으로 스트립쇼까지 봤을 것이다. 게다가 같이 간 정부부처 사람까지 함께....

스트립쇼를 본다면 몰래 몰래 혼자서 볼 수는 없나? 그걸 같이 간 3명의 유부녀 여직원들도 자세히 알 정도로 떠들고 다녀야 했나? 남자들 컴퓨터에 이상한 사진 띄워놓고 여직원들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 있다던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이 일도 그런 것과 성격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닐지... 왠지 자기가 스트립쇼를 보러 간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은 아닌지... 그 속마음이야 모르지만.

난 이 일이 있기 전부터 그 사람을 싫어했다. 남자직원이 소수인 우리 직장에서, 특히나 적은 우리 부서에서 몇 안되는 남자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다.

여자들이 같은 여자를 싫어하는 이유의 카테고리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만,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가장 싫은 범주의 남자들은 바로 마초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사람도 당당히 이 그룹에 속한다. 자세한 것은 언급하기조차 싫다.

가장 열받는 일은 이 남자가 자신의 옛 추억을 이야기한 것이다.

설악산으로 워크샵을 가서 늦게까지 방에서 기타를 치고 논 적이 있었는데, 그 기타로 옛 민중가요들을 연주하고 크게 불러제낀다. 그러면서 옆 동료랑 하는 말이, 우리 기관에서 민중가요 동호회나 하나 만들까? 이런다. 그러더니 자기가 예전 90년도 무슨 가두투쟁때 자기 학교 투쟁의 우두머리였느니 어쨌느니 떠들어댄다.

그때까지 그 사람을 잘 몰랐었지만, 그 이후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신뢰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후 그 사람의 일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예전에 학생운동했다고 그렇게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하는 사람이, 현재는 이렇게 생활을 한다? 그의 정치적 견해는 어떤지 모르지만, 사상적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아직 대학생때의 열정을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자랑스럽게 후일담을 떠들어 제끼는 그와 룸싸롱 아가씨를 찬양하는 발언을 마구 하는 그 사람이 동일인물이라?

아픈 과거를 팔아먹지 마라! 당신에게는 이제 추억거리가 되고 자랑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당신의 과거에 대한 평가는 당신의 현재의 평가와 그리 다르게 가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다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는 과거 순수했던 학생들의 행적을 욕먹이는 과오를 저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너희 같이 과거만 알고 현재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의 일부 386들이 이렇게 욕을 먹지 않느냐? 제발 그 더러운 입으로 과거를 말하지 말아다오..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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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2-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한 술자리에서 보란 듯이 민중가요 불러제끼는 인간 중에 진짜로 데모질해본 사람 많지 않더이다. 울 회사에도 그런 사람 하나 있는데, 하도 목에 힘주길래 슬쩍 알아봤더니 2학년 1학기까지 노래패하다가 관둔 한량이더군요.

(그런데요, 전 서림님이 남자분이라는 걸 늘 깜빡하고 깜짝 놀라곤 한답니다. ㅋㅋㅋ)

sooninara 2004-12-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나는 스타일이군요..그냥 냅두세요. 그런사람은 아무리해도 철이 안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