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스타크 리딩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휴머니즘과 계속 유동적 관계를 유지했다. 제1물결은 여성이 근본적으로 남성과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자유주의 휴머니즘 이데올로기를 끌어들였고, 주로 계약 및 재산권과 관련해 목소리를 냈다. 제1물결 페미니스트들은 오직 남성만이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여성은 아버지의 재산, 나중에는 남편의 재산으로 여겨졌던 가부장적 체계와 싸웠다. 또 그들은 여성도 남성처럼 똑같이 투표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참정권을 위해 싸웠다. 투표할 권리는 정치적 대표성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이 공적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기에 중요하다. 투표하는 정치적 주체는 정치적 주체성 agency을 지닌 합리적 인간으로 상상된다. 이것은 여성에게 투표할 권리가 주어졌을 때 그들이 또한 정치적 인격체를 주장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재산을 소유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몹시 중요하지만, 그것이 가부장제의 전체적인 본성을 바꾸지는 않았다. 캐롤 페이트먼 Carole Pateman의 1988년 저서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후, 2001)은 가부장적 권력의 편재성과 공민civic 사회의 구성에서 가부장적 권력의 숨겨진 자리를 상기시킨다. 이 텍스트에서 저자는 사회계약, 즉 사회 안에 살면서 시민법에 종속되기로 한 사람들의 암묵적이고 명시적인 합의가 어떻게 성적인 계약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는 사회계약이 자유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여성의 억압을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P32

그들은 돌봄, 정서적 지능, 자연 친화력 등 데카르트적 체계 내에서 전통적으로 여성과 결부되었던 것을 선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3물결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구성하는 본질주의적 본질(혹은 보편적 정체성)이 있다는 관념을 거부하고 대신 ‘여성‘을 언어내의 구조적 위치로 자리매김한다. 그들은 ‘여성‘을 유연하고 이동하는 기표로 봄으로써 젠더 위치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던 방식들을 인정한다. 따라서 제3물결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젠더가 실행되는 방식을 포함하지만 이에 국한되지 않는 ‘여성‘ 범주내에 실존하는 차이들을 찬양한다. 주디스 버틀러의 작업은 제3물결 페미니즘의 좋은 예인데, 그는 성sex과 젠더gender 모두 이성애적 틀 내에서 담론적으로 구성됨을 검토한다(1990; 1993). 이는 제3물결 페미니즘에서 섹슈얼티리의 중요성, 그리고 차이가 ‘적히는‘written 사물artefact로서 신체가 차지하는 핵심적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제3물결 페미니즘은 복수적이고 pluralized 이론적이다. 그것은 이론적인 프랑스 페미니즘French feminism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이제 여기에 대해 설명하겠다.
유럽 페미니즘이 나름의 발생 조건과 궤도를 지녔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영미 페미니즘과 깨끗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 사이에는 공유된 의제들 그리고 관념과 텍스트의 상호수분 cross-pollination의 긴 역사가 있다. 예를 들어 1949년에 발행되고 - P36

프랑스의 철학적 전통에서 나온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대서양의 양쪽 모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엘렌 식수Hélène Cixous, 뤼스 이리가레,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작업으로 특징지어지는 프랑스의 지적인 페미니즘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성적 차이sexual difference를 힘주어 강조하면서 합리성과 이성의 젠더화에 대한 비판에 특히 집중했다. 식수는 "메두사의 웃음"The Laugh of Medusa에서 여성적 글쓰기 ‘ecriture feminine를 내세운다. 식수는 글쓰기가 중립적인것이 아니라 남근중심적phallocentric임을 주장하며, 글쓰기를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것은 글쓰기의 남성적 본성을 비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텍스트 내 여성 목소리의 침묵과 젠더화된 이성의 역사 간의 연관성을 명백히 한다. 여성의 글쓰기는 여성 신체의 구체성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다른 형식의 텍스트성을 표현할 잠재력을 가진다. 식수는 특히 "나도, 역시, 넘쳐흐른다. 내 욕망은 새로운 욕망을 창조했고, 내 몸은 들은 적 없는 노래들을 알고 있다"(1976: 876)라고 쓰면서, 여성의 모성적 수용력과 성적 즐거움에 대해 거론한다. 이 인용문에서 신체는 여성 욕망의 특수성에서 직접 발생하면서 구체화되는 들은 적 없는 텍스트의 생산자로 명시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신체성에서 나오는 글쓰기는 남성적 이성과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열시킨다. 이것이 식수가 여성의 글쓰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겠다고 운을 띄우며 위 글을 시작하는 이유다(1976: 875, 원문 강조). - P37

만일 들뢰즈와 가타리가 소수자-되기의 다양한 현현에 부여하는 긍정적가치 valence를 제쳐둔다면, 우리는 되기의 연속체(여성-되기, 아이-되기, 동물-되기에서 지각불가능하게 되기까지)가 여성을 문제적 위치에 두는 방식에 대해 추궁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는 여성을 아이처럼 보는 역사적 틀에 기여하면서, 여성을 아이의 형상에 더 가깝게 만든다. 즉 여성을 (역사적으로 성인 남성에 속한 공간인) 공적영역보다 사적 영역에 속하게 하고 남성보다 덜 성적이고 더 순진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것은 또 여성을 더욱 동물적이고 남성보다 더 비이성적이고 체화된 존재로 위치시키면서 여성을 동물에 더 가까운 근방역 안에 둔다. 이는 우리가 여성의 위치가 식물에 더 가깝고 궁극적으로는 지각 불가능함에 더 가깝다고 암시하는 문제적 측면을 살펴보기 이전의 일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그들의 저작에서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되기의 형상이 문제적인지 여부를 고려하고자 할 때, 들뢰즈와 가타리가 본질적 의미보다 구조적 의미로 여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자-되기라는 보다 더 넓은 문맥에서 여성-되기의 형상이 문제적인지를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되기는 ‘남성‘보다는 ‘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여성이 가진 어떤 내재적 특질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제 안에 놓여 있다는 위치, 즉 여성이 소수적이기 때문이다. - P57

여성에게 내면성 깊이 타고난 본질이 있다는 생각은 대개 여성을 제한하고 배제하는 데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여성은 본질적으로 양육적이며 따라서 가족 지향적이라는 생각은 많은 사회에서 돌봄과 친족관계의 확연한 성차별로 이어졌다. 친족관계의 성립은 노인 돌봄, 식사 준비, 사람들을 함께 하게 하는 감정노동 등 가족 유지를 위한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해냄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동에서의 성차별은 육아의 대부분을 여성에게 책임 지우고 일반적으로 여성의 직업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 문화에서 남녀 참여를 상대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본질주의적 믿음의 영향은 분명해진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승진을 못하거나 더 뒤처지고, 연금을 덜 받고, 리더의 지위에 오를 가능성은 더 적다. 따라서 본질주의는 남녀가 가졌다고 상상되는 속성에 관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속성들의 현현을 구체적 상황에서 목도하게 된다.
본질주의에 도전한다는 것은 젠더에 관해 문제적·제한적 관념에 맞설 뿐 아니라 ‘여성‘을 본질적으로 정의되는 일련의 특징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구체적이고 변화되기 마련인 일련의 특성들과 관련된 하나의 기표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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