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페데리치의 책을 충동적으로 꺼내 다시 읽고 있는 중에 슬슬 정리를 한번 더 해야 한다는 마음에 책장을 둘러보다가 마리아 포포바의 책을 꺼냈다. 요하네스 케플러 단락을 읽는 동안 우연히 마주한 에밀리 디킨슨 시를 읽고 찢어진 상처에서 날개가 뻗어나오는 이미지가 저절로 그려졌다. 에밀리 디킨슨의 모든 시가 주는 이미지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이 구절에서는 더더욱. 영혼이 공명하는 건 그가 쓴 구절들. 1800년대의 사람이 쓴 그 수많은 활자들이 2025년을 살아가는 이에게 닿기까지. 영혼이 바다로 가라앉는다, 라는 표현은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정확히는 바다에 가라앉는다라는 표현보다는 솟구친다, 가 옳다. 영혼이 바다로 솟구친다. 그 첫느낌이 하도 강렬해서 그 어린 시절에 활자에 탐닉하기 시작했으니까. 얼마 전에 옛사랑과 통화를 하다가 우리가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게 어쩐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그도 내게 몹쓸 짓을 한 인간이긴 인간이지만 그 수많은 대화의 시간이 어쩌면 우리의 관계를 만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제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맥주를 마시다 말고 퍼뜩 깨달아서 석이는 되게 답답한 게 딱 그 틀 안에서 살아가,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히스테리 증세를 보여. 어느 순간 아 이 인간은 평생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겠구나 그걸 알았어. 라고 말했다. 다들 묵묵부답으로 대꾸를 보여서 나 혼자 그렇군, 그거였어, 스스로를 답답한 인간으로 보는 게 뭔지도 알 거 같네, 라고 또 혼잣말하듯 말하고 맥주를 마저 마셨다. 그냥 혼자 안으로 파고들려고 하는 게 마치 골뱅이를 연상시키기도. 안으로 파고들어 하염없이 홀로. 성정이 맞지 않아 충돌한다는 게 뭔지 오랜만에 다시 느끼면서 하나를 주면 하나를 잃는다는 게 반드시 옳은 공식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정환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걸 석을 통해 느끼면서 아 이 사람과 오래 가긴 힘든건가 라는 마음과 함께 그래도 마음이 가는 방향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한번 보고난 후 정하도록 하자 했다. 끝내 다다른 길은 같지만 다른 식으로 향방은 만든다, 이런 좀 고집불통 같은 게 있어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하고 피하지 않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지금 이걸 속편하게 읽을 일이 아닌데 그래도 한 시간이라도 짬을 내보도록 하자 싶은 마음으로 페이지를 조금씩 펼치다가 또 호기심이 일어서 마리아 포포바 얼굴 사진 찾아봄. 견과류를 넣은 그릭요거트에 꿀을 살짝 올리고 진하게 커피가루를 잔에 담아 뜨거운 물을 호로록 붓는 동안 다가올 것들이 무엇일지, 다가올 이들이 누구일지 궁금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어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어리석은 행태에 후훗 웃음을 흘리고 아이가 요즘 빠져 듣고 있는 피아노 소리를 연하게 볼륨을 낮춰 듣는다.







이 시대의 외눈박이 윤리를 납빛으로 칠하는 것이 그토록 큰 죄일까? 이런 글을 통해 지구를 떠나 달의 관점에서 보도록 주의를 이끄는 일이 그토록 큰 죄가 될까?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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