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운동 가볍게 하고 유통기한 지난 우유 처리해야 해서 빅파이 오물거리면서 조금씩 읽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또 이런 식으로 마주할 수도 있다는 게.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여섯 시간 채우고 아가들 데리고 삼겹살 먹었다. 당근 거래 끝내고 온 딸아이가 우연히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편의점에서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 와서 이야기, 그 친구가 막 다 읽은 [균형 잡힌 뇌] 이야기를 했노라고. 우리 엄마도 도서관에서 오늘 그거 내내 읽었는데! 라고 반가웠노라고. 자기도 읽어보겠노라고 신나서 이야기. 책읽기에도 카르마가 적용되는 건가, 싶어 후훗 웃었다. 그 아가 괜찮네, 엄마랑 독서 취향도 겹치고. 했더니 그런데 이윤기 선생님 신화책은 안 읽어봤다고 그래서 나는 그거 추천했어, 엄마, 라고 말. 마리 루이제 크노트 30분 읽고 스피노자 만화책 조금 읽으면 오늘은 자정쯤 침대에 뻗을듯. 체조해서 그래도 아직 머리가 쌩쌩 돌아가네. 삼겹살 먹을 때 맥주 자제하여 스스로 머리 쓰다듬어줌. 







워렌은 대화 중에 기본적인 질문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남북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만일 남부의 노예 소유자와 농부가 노예제도 폐지에 대한 동의를 쉽게 하도록 보상을 받았다면 미국 내부에 더 많은 평화가 있었을지에 대한 의견이었다. 몇몇 정치 평론가는 남부인이 패배를 경험하기보다 보상을 받았다면 굴욕감을 덜 느꼈을 테고, 따라서 노예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반복해서 피력했다(워렌은 노예가 겪은 불의에 대한 보상이나 원상회복에 대해 어느 대목에서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의 두 번째 질문은 흑인의 자기 이해 문제로 직행했다. 일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흑인 미국인에게는 두 영혼, 즉 항상 백인의 시선과 기대를 염두에 두고 스스로를 인지하는 이중의식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의심스러운 경우에 흑인 미국인의 충성심은 누구에게로 향하는가? - P34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도 빠트리지 않았다. 워렌은 도발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흑인은 매일 경험했고 경험하는 온갖 불의, 억압, 굴욕 앞에서 비통해하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는가? 훨씬 적절한 반응은 복수가 아니었을까? 국가의, 경찰의, (백인의) 폭행에 맞서 고집스럽게 비폭력으로 자신을 묶어두는 것은 영혼이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 아니었을까?
워렌은 열려 있는 정신으로 대화 상대방의 열려있는 정신을 이끌어냈다. 그는 상대방에게 발언권을 주었고, 상대방은 발언권을 얻었다. 아마도 아렌트는 다음의 이유로 랠프 엘리슨에게 편지를 썼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피억압자에 소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주인이며 자신의 발언권을 행사해야 하고, 또 해야 한다는 엘리슨의 소견에 감사했기 때문이었다. - P35

엘리슨과 아렌트에게 자유란 인간의 행위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과거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원동력이다. 아렌트의 책 [인간의 조건(Vita activa)]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말하고 행위하면서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던 속세로 들어가며, 이런 접속은 말하자면 탄생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제2의 탄생과 같다." 만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나타나는", 즉 스스로 속세의 관심사에 섞여서 이런 자신의 세계를 공동으로 형성하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렌트와 엘리슨은 인간이 존재임을 실현해야 할 필연성이 행위를 통해 가능함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행위하지 않는데 특별한 담력과 자제력이 필요한 순간, 즉 행위하지 않음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난다면, 행위하지 않는 것도 행위의 순간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계속되는 굴욕을 더 보태주는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면, 행위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아렌트와 엘리슨, 두 사람은 모두 순응의 위험이나 유혹에 대해 경고했다. - P50

그들은 간단히 말해서 순응을 통제의 변주로 보았다. 소설에서 엘리슨의 주인공은 타인이 그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할 채비를 갖춘 성격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의 조상처럼 그 역시도 (너무 오랫동안) 낯선 세상의 톱니바퀴였다. 순응하려는 주인공의 열망은 너무 강렬했다. 주인공처럼 동화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특별함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도 일종의 보이지 않음이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