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힘겹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히스테리의 전략을 사용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강박증의 전략을 사용한다. 즉 자신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만족시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거나 또는 자기 자신이 결여되어 있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결국 자신들의 전략이 실패하는 지점을 경험하게 된다. 라캉에 의하면 이것은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미 익숙한 일상이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지점은 우리 자신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이다. 불완전함을 견디는 사랑이 완전함을 목표로 하는 사랑보다 강하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는 사람이 완전한 인간이라는 환상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완전한 사랑과 완벽한 인간이란 인생의 중심에 똬리를 뜬 불완전한 틈새를 가려 덮는 허상에 불과하며 이에 집착할 때 일상을 견뎌내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보다 더욱 완성된 경지이며, 부족한 것이 완벽한 것보다 더욱 견고한 것임을 강조한다. 욕망의 움직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무엇인가가 결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불안한 느낌들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성숙한 존재가 - P38

된다. 불안을 보듬고 감싸 안아야 한다. 내 중심에 배치된 불안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보석이다. 그것은 결코 내 약점이 아니다. 불안을 견디는 용기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를 라캉의 언어로 바꾸자면 우리는 상상계를 넘어 상징계로 이행해야 한다. - P39

상상계 속의 인물들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는 ‘마마보이‘ 또는 ‘마마걸‘이다.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마냥 칭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른들이 적지 않다. 핸드폰에는‘집, 집, 집, 엄마, 엄마, 집, 엄마, 아빠, 엄마, 엄마‘가 찍혀 있고 무슨 일이든 ‘엄마‘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엄마‘라는 정답이 있으니 인생이 조금 편하다. 이것이 바로 상상계이다. 그 속에서 그들은 결코 자신이 진정 욕망하는 바를 말하지 못한다. 항상 정답이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거나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에 매진하기도 힘들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데도 시간이 걸리며 자신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사색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라캉은 아이를 놓아 주지 못하는 어머니의 욕망을 악어의 이빨에 비유한다. - P50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실재계라는 라캉의 용어를 기관의 에너지로 해석한다. 우리의 작은 몸을 이루고 있는 각 기관이 사실은 거대한 에너지의 보고라는 것이다. 그는 서사의 전체 구조와 관계없이 각 영화들의 세부에서 그러한 에너지를 파편적으로 제시한다. 한 예로 그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의 오른손이 갑자기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되어 자신을 초주검이 되도록 구타하는 장면을 지적한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손이라는 신체의 한 부분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젝에 의하면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눈의 감각 능력을 현저히 뛰어넘는 월등한 눈, 즉 카메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라캉의 실재계란 물리적인 능력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된 용어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감지할 수 있는 영역으로서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할 때 그/그녀의 정신세계가 내뿜는 에너지를 뜻한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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