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덕숭산 자락에 안개가 자욱하며 바람에 산을 타는 그림같은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수덕사에 도착하여 밤중에 산사에 들어가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분향소에서 숭산대선사님을 뵙고 삼배를 올렸습니다.  아주 많은 벽안의 스님들이 계셨었고, 취재진들도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곁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는 분명 우리나라분인듯 했는데 잠시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모습에 외국인인줄 알아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뵈었던 현각스님, 무량스님, 무심스님, 성광스님등등 많은 제자스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덕사는 덕숭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선맥의 대선사님들이신 경허, 만공, 고봉, 숭산스님이 계셨던 곳입니다.  토요일 오전 10시30분에 추모식이 시작하였고, 각계 각층의 조문사절이 추모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존케리 미대통령선거후보자도 추모편지를 보냈고, 노대통령께서도 추모사절을 보내셨습니다.  12시조금 넘어서 다비식장으로 장소가 옮겨졌으며 40여분간 다비장을 쌓고 거화되었습니다.  수많은 인파로 인해 아주 가까이는 아니었지만 산비탈진곳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활활타오르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만감이 교차함을 뒤로한채 7시간이 넘게 걸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숭산문하에는 법사제도가 아주 특이하고 엄격한 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단계의 최고단계는 선사인데,  10여년의 내공뿐아니라 1700공안의 무문관을 돌파하고 숭산스님이하 여러 선사들의 법거량 그리고 미국에 상주하는 다른나라 고승들과의 법대결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야 선사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6명의 선사가 배출되었다고 하니 숭산스님의 법맥이 세계로 계속 뻗아나감은 물론이고 한국불교발전에도 큰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숭산대선사님의 마지막 설법은 불교신문 2086호 12월 7일 화요일자를 참고하여 보시면 좋을 줄로 압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존경하는 대행스님 글중 짧은 한토막 올립니다.


* 일체의 대상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모아들여서 내면으로 던져라.  수행이란 스스로 공부를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항복하고 스스로 항복받는 것이다.


* 이 공부는 자기가 가르치고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 자기가 놓고 자기가 받는다. 자기가 항복하고 자기가 항복을 받는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닦는 일은 결국 자기와 자기의 일인 것이다. 밖을 이야기 하고 밖으로 끄달리지 말라.


* 회개하는 것도 자기요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자기요 후회하는 것도, 행을 고치는 것도 자기다. 누가 있어서 고쳐주고 회개를 받아 주고 하는 게 아니다.  이리가라 저리가라 일러주는 사람이 있다해도 길 안내자일 뿐이다. 정말로 나를 깨닫는 길을 가려면 부처님도 없다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내 마음 근본 주인공에 그대로 상응하는 것이다.


* 나를 깨닫고 나서 안으로 굴리는 수행자가 있고 안으로 굴려서 나를 깨닫는 수행자가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다 안으로 굴린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경계를 마음 안으로 관하라.


* 자기 내면에 일체 제불의 심인이 있다.


* 마음을 증득하지 못하면 자기 안에서 스스로 밝혀져 나오는 빛이 없기 때문에 항상 남의 지식, 남의 생각들만을 자기 머리에 넣어 놓고 있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진정한 대장부, 대자유인으로서 자유스런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부자유한 남의 삶을 사는 것이요, 그래서 속고 사는 인생이요 예속된 삶일 뿐이다. 이래서야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라고 감히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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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2-0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불교 방송으로 숭산스님 다비식 장면을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육신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가셨을 거라고 머리론 믿지만, 아쉬움과 슬픔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가까이서 작별인사 하고 오셨군요. 고맙습니다.....().....
 
삶은 고가 아니다
대행스님 지음, 혜원스님 옮김 / 여시아문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전설적인 선지식이라고 하면 대행큰스님에 대한 짧은 소개가 될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고행과 만행을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으신 분입니다. 


살아있는 삶속에서 저절로 솟아나오는 화두를 갖고 참구하셨으며,


산과 들과 강을 집과 베개삼아 만행하셨고, 수많은 죽을 고비에서 오로지 내면의 본성만을 믿고 의지해


깨달음을 완성하셨으며, 나무와 풀과 새들과 온갖 동물들이 친구였고 형제였던 ... 옛 전설에서나 볼수있는 수행자가 바로 대행큰스님입니다.  또한 남자의 몸도 아니고 여성의 몸으로 그 험난한 여정을 하셨기에


만행의 처절함이 어떠했을런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깨달음에 남녀가 어딨겠습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매한 사람들은 대행큰스님이 비구니라는 이유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설마 조계종 종단내부에서야 그런 편견은 없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사찰중에서 가장 신도수가 많고 남성신도수 비율이 높은 곳이 바로 한마음선원입니다.


각설하고... 큰스님께서 중생제도에 나서선지도 어언 40년이 되어 가십니다.


" 道"  "無"  "한마음" 이라는 베스트셀러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기도 한 대행큰스님께서는 지금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친견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삶은 고가 아니다"라는 이 책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쉽고 재미있게 큰스님의 정수만을 뽑아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책들은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고  가르침의 집대성인 한마음요전은


한마음선원이나 지원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더욱 이책을 추천합니다. 


저와 아내는 이책에 심취한 나머지 책이 닳아지도록, 정말 수없이 거듭 읽고 있습니다. 또한 큰스님의


다른 책들 역시 구할 수만 있다면 적극 추천합니다.


큰스님의 가르침중 핵심은 바로 "전부 다 놓는것"과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3000배 절을 하라는 것도 아니요,  화두를 붙들고 행주좌와 수십년 공부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내면의 자성을 밑고 자성에 모두 맡기며 모든 집착을 다 내려 놓으라는 것만을 말씀하십니다. 


전통 불교에서 하는 많은 수행법도 결국은 다 놓는것과 절대적인 믿음을 얻기위해 하는 방편이라 볼수 있습니다.  나와 우주가 하나로 내외가 다 공한것을 체득하고 그래서 다 내려놓고, 자기의 본래 면목을 깨닫는 것이 불교의 핵심일진대, 그것을 하기위해 화두, 염불, 위빠사나, 밀교수행등등 여러가지 수행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큰스님께서는 직접 들어가라 말씀하십니다. 


" 몽땅 내려놓고 주인공(자성)을 절대적으로 믿고 맡겨라!  그러면 끝이다. "


말은 쉽지만 실행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세한 공부방법과 마음과 세상 삼라만상의 이치가 이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년전에도 큰스님의 책을 접해보았지만 그때는 정말 이 말씀들의 가치와 깊이를 헤아릴수 없었습니다. 수년간의 수행과 긴 여정을 지나고 보니,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佛法이 아니고는 수많은 시간을 돌아가야 한다는 것, 부처님의 법과 0.0000001%만 차이가 있어도 결국 정확하고 완전한 자리를 알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큰스님의 가르침 안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책은 않그러냐?  다른 선지식의 가르침은 틀리단 말이냐? 라고 말씀하신다면 국물맛을 먹어봐야


맛을 알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각을 이룬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본래면목을 약간 맛을 본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이들의 말에 차이를 모르며 구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리로 향하는 여정이 힘든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만나기 어려우며 불법을 만나서 성불하기는 더더욱 어렵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여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착한 일하고, 계율을 지키며, 경전을 읽고, 절을 올리며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일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업을 소멸합니다.  그 결과 다시 사람으로 날때는 더 좋은 업으로 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천상에 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상세계도 끝이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천상세계에서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다들 그렇게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천상세계는 부족한 것이 없어 공부하는 마음내기가 또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몸을 받았을 때 공부하기가 좋다고 합니다. 생활속의 모든 부딪침들이 다 공부거리임을 알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 놓고 가는 법, 본래 자성을 믿고 가는 법은 제 경험으로 분명 다른 수행법들과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도반 여러분들께서도 맛을 한번 보시면 느끼시리라 생각됩니다.  다른 수행법들은 구체적으로 보이는 방법이 있어 처음에는 쉽지만 갈수록 첩첩산중, 은산철벽입니다.  또 한순간의 체험을 해도 그것은 곧 기억으로 될뿐 , 큰 신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체험하고도 늘 믿지 못하고 알쏭달쏭하며 경계를 만나면 흔들립니다.


바로 들어가십시요.  다 놓고 , 모든 사량을 쉬고, 그냥 자기 주인공에게 일임하십시요. 믿으세요.


그 가르침이 여기 대행큰스님의 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 많은 도반님들께 조그만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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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2-0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보고 대행 스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대행 스님의 이 책을 찾아서 읽고 있는 중입니다. 예전엔 근기가 모자랐는지 별 감동없이 그저 넘겨 읽었는데,다시 읽으니 정말 좋네요. .....()......

kleinsusun 2004-12-25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님의 리뷰를 읽고 이 책도 샀답니다.

아직 읽지는 못했어요.<삶은 고가 아니다>는 제목 자체가 참 마음에 와 닿아요.

한마음 선원 저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더군요.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주인공님을 보면 참 부러워요.

부부가 같이 수행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소중한 인연 아름답게 가꾸어 가세요! 감사합니다.

바람이되다 2004-12-2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선원 가까이 사신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대행큰스님의 책은 참으로 깊이 있으면서도 그냥보면 그냥 그런 말씀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잘 읽어보시구요... 큰스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절판된 책들이나 요전을 보시면 좋습니다. ^^ 처음부터 아내와 같이 길을 가게 된것은 아닙니다. 많은 시간동안 꾸준히 길을 가다보니 점점 마음도 하나로 모이게 되더군요. 아무튼 수선님께서도 근기가 높으신 분같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시어 내년에는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 꾸벅~
 

늘 잔잔하게 제 서재를 찾아주시는 도반여러분 건강하신지요?


근래에 책을 놓고 수행에 정진하느라 알라딘에 들어와 보질 못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들어온 것은 숭산대선사님의 입적을 당하여 몇마디 남기려 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동안 찾아주신분들이 많이 계셔서 놀랐습니다.


아무쪼록 도반님들의 자아를 찾는 여정에 조그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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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정신세계사에서 발행되는 월간 웰빙라이프가  책상위에 배달되었습니다. 


마음한번 변하면 그리 좋아하던 것도 무감각해지게 보입니다.  예전같으면 신이나서


펼쳤을 잡지인데...그냥 건성으로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다 눈에 딱 들어온사진한장.


바로 숭산대선사님의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옆으로는 짧막한 가르침이 있었구요.


제자가 선사님께 여쭈길 "스승이 꼭 필요한 것인지요?" 하자


" 너는 여기 왜 왔느냐?" ...." 네가 생각이 없다면 스승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생각을 끊질 못했다면


 스승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의 아버지는 숭산대선사님이셨고, 마음의 어머님은 대행큰스님이셨습니다.


사실 두분다 한번도 뵙질 못하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존경해오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펼쳐진 페이지의 숭산대선사님의 사진과 가르침을 빤히 쳐다보고 또 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의 절친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숭산대선사님에 관한, 그리고 대행큰스님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습니다.   태산처럼 우뚝 솟은 양대 산맥 두분이 계시기에 우리같이 복받은 사람들이 있으니 열심히 길을 가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전화통화를 한지 몇시간 되지 않아 그 친구로부터 황당한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침통한 목소리로 큰별이 떨어졌다....라고 하는데 저는 직감적으로 마음이 싸늘해지면서 무슨소리냐고 다그쳤습니다.  오늘 오후에 숭산대선사께서 입적하셨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긴 침묵을 지켜야 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으신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 한번쯤 먼 발치에서라도 뵐수 있을줄 알았는데


이렇게 홀연히 떠나실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정말 내 앞날이 막막해지는 걸 순간 느꼈습니다.


오고감이 없고 그대로 계신줄은 알지만 ...  허탈하고 허전한 마음 짝이 없었습니다.


뭐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남아 계신 대행큰스님의 안위도 걱정되기 짝이 없었습니다. 


두분다 세수도 비슷하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한분이 가버리시니 남은 한분마저 가시면


이제 우린 어쩌란 말씀이신지... 뵙지 못해도 살아 계시는 것 하나만으로 든든하게 길을 갈 수 있었는데..


 선사님께서는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요, 청산유수(靑山流水)니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기셨지만....그리워하는 심정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살아계실때는 못뵌 모습, 돌아가시고 나서야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토요일 충남 수덕사에서 다비식을 하신다고 하니 마침 그날 한달에 한번있는 비번이라.


 갈 수 있을듯 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숭산대선사님과 대행큰스님과도 같은 큰 선지식들이 생존하던 시기를 살던 사람으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 복이었고, 먼 발치에서나마 뵙지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 조그만 나라에서 이 시대에 태어나 두분의 정법을 만났으니 세세생생


제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수많은 중생.... 음으로 양으로 끌어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


도반 여러분들께서도 이리저리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마시고, 이리 저리 방황 마시고,


짧은 인생, 정말 열심히 정진하셔서 때를 벗고 업을 벗어 참주인공으로 거듭나시길


기원합니다.   책은 선지식의 가르침이니 발심과 거울로 삼으시길 바라며 생활에 있어서 물러섬없는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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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2-02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숭산 스님의 입적 소식은 마음 공부하는 우리 모두에겐 충격적이 소식이었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그분과 같은 시대에 간접적인 가르침이나마 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성철스님 가신지 11년이 지나도 아직 그분의 가르침이 생생하게 살아 있듯이, 위대한 스승님의 가르침은 육신의 변화에 관계없이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어, 늘 우리를 견책해주는 죽비가 되리라 믿습니다. ....().....

하나됨 2004-12-0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마음선원에서 대행큰스님께 가르침을 배우며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도반들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대행큰스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관하며 매일 향을 피우며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바람이되다 2004-12-0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개처럼 살면 천상에 태어날까?(견서계경)


각묵(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실상사 화림원)

필자가 좋아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초기경들 가운데 하나가 견서계경(犬誓戒經)으로 옮길 수 있는 『중부』(맛지마 니까야) 제57번 경인 「꾹꾸라와띠까 숫따」(Kukkuravatika Sutta)이다. 여기서 꾹꾸라는 ‘개’를 뜻하며 와띠까는 ‘서계(誓戒, 서원, 맹세)를 지닌 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경의 제목은 ‘개처럼 살기로 맹세한 사람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되겠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힐릿다와사나라는 꼴리야 족들의 읍에 머무셨다고 한다. 그때 개처럼 살기로 맹세하고 그렇게 사는 고행을 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와 소처럼 살기로 맹세하고 그렇게 사는 고행을 하는 그의 친구 뿐나가 세존을 뵈러왔다고 한다. 그들은 각각 개와 소처럼 사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하는 자들이었다. 개처럼 산다는 말은 개처럼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나체로 살고, 개가 음식을 땅에 던져주면 혀로 핥아먹듯이 그렇게 먹고, 개가 길바닥이나 노지나 처마 밑에서 자듯이 그렇게 자고, 개가 네발로 걷듯이 그렇게 다니는 한 마디로 말해서 개와 꼭 같이 먹고 자고 행동한다는 말이다. 소처럼 산다는 말도 소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산다는 말이다.

이들은 부처님께 찾아와서 “세존이시여, 이 개처럼 사는 서계를 지닌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합니다. 땅바닥에 던져준 것만 먹습니다. 그는 개처럼 사는 서계를 오랜 세월을 지니고 실천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의 고행자들이 고행을 하는 목적은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금생에 고행을 하여 받을 고통을 다 받고 나면 그 과보로 내생에는 행복뿐인 천상에 태어난다고 믿고, 어려운 고행을 한다. 아마 그들은 당연히 부처님으로부터 그대들은 천상에 태어나리라는 격려와 칭송의 말씀을 들을 줄 알고 질문을 드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만 하라, 뿐나여. 그쯤에서 멈추어라. 내게 이것에 대해서 묻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알고 싶은 마음에 압도된 뿐나는 개처럼 사는 그의 친구 세니야의 내생에 대해서 계속해서 질문을 드렸고, 세 번을 질문을 받자 부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 말씀하셨다. 세 번 질문을 받으면 여래는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덕담을 바랬는지도 모르지만 세존께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답을 하셨다.

“뿐나여,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서계(誓戒)를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버릇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행동거지를 닦고 나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는 개들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만일 그가 ‘이런 버릇과 서계와 고행과 청정범행으로 신이 되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진다면 이것은 그의 잘못된 견해일 뿐이다. 뿐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 두 가지 태어날 곳 중에 하나가 있을 뿐이라고 나는 말하나니 지옥이 아니면 축생이다. 뿐나여, 이처럼 개의 서계가 성취되면 개들의 일원으로 인도할 것이고 성취되지 못하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세존의 이런 대답을 들은 개처럼 사는 세니야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가 우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드신 세존께서는 “그러기에 내가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신다. 그러자 세니야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그처럼 말씀하셔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제가 개처럼 사는 서계를 오랜 세월을 지니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즉 오랜 세월을 그 힘든 난행고행을 했건만 그 서계를 닦아서는 아무른 향상이 없고 오히려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지는 퇴보가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셔서 [제 자신이 그렇게 잘못 믿고 힘들게 살아온 것이 너무 처량하고 억울해서] 우는 것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소처럼 사는 뿐나는 같은 방법으로 소로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둘 다 뜨거운 눈물을 흘린 뒤 뿐나는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제가 이 소처럼 사는 서계를 버리고 개처럼 사는 서계를 지닌 나체 수행자 세니야가 개처럼 사는 서계를 버릴 수 있도록 그러한 법을 설해주소서.”

세존께서는 네 가지로 업의 법칙을 말씀하셨는데 요지는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라는 것이다. 괴로운(해로운, 검은) 업을 지어 괴로운 과보를 받고 좋은(유익한, 흰) 업을 지어 좋은 과보를 받음을 말씀하신 뒤 이런 검고 흰 업을 초월한 것으로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를 가져오는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 있어서 그 업은 업의 소멸로 인도한다”고 도(道, magga)를 말씀하셨으며 진정한 사문의 길은 바로 이런 업에서 벗어나는 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세존의 설법을 듣고 소처럼 사는 서계를 가진 뿐나는 세존의 신도가 되었지만 개처럼 사는 서계를 가진 세니야는 다시 부처님 문하로 출가를 감행하여 불교교단의 비구가 되어 바르게 도를 실천하여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으로 경은 끝을 맺고 있다.

필자는 이 경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부처님 법을 만나 꽃다운? 젊은 나이에 남들이 하기 어려운 출가를 감행하였지만 혹시 이 개처럼 사는 세니야처럼 잘못된 견해와 잘 못된 수행법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깨달음을 얻으리라, 해탈열반을 실현하리라고 하고 있지나 않은가 나름대로 크게 반성해보았다. 아니 내가 도대체 해탈열반에 대한 바른 이해라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 움켜쥐고 있던 견해와 수행법을 근원적으로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초기경에서 말씀하시는 세존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나의 견해가 잘 못된 것은 과감히 제거하고 부처님이 제시하신 도닦음으로 자신을 바꾸고 개조해나가리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

각설하고, 이경을 통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업설(業說)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소박한 인과론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개처럼 살면 개로 태어나고 신처럼 살면 천상의 신으로 태어난다는 논리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 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정작 자신은 개처럼 사는지 신처럼 사는지 좀처럼 돌이켜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천상에 태어날까? 부처님께서는 『장부』 「수바경」에서 범천의 세상(바라문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천국)에 태어나려면 자애로운 마음[慈], 연민하는 마음[悲], 같이 기뻐하는 마음[喜], 평온한 마음[捨]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無量心]을 닦는 길 외에는 없다고 하셨다. 입으로는 자비와 사랑을 외치면서도 자기와는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이념을 가진 자에 대해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불타거나 혹은 삿된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천상이나 천국에 가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개처럼 살면서 천상에 나려는 세니야보다도 못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불교의 궁극은 천국에 태어나는 것까지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다. 세니야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이것을 알고 개처럼 살기를 그만두고 해탈의 길인 팔정도를 밟아서 아라한이 된 것이다.

나는 개처럼 살고 있는가, 신처럼 살고 있는가. 나는 개처럼 살면서도 천국에 날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개처럼 살면서도 업지음에서 벗어나 해탈하리라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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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올려주시는 글에서 많은 감동 받습니다. 퍼갑니다.

바람이되다 2004-10-1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역시 혜덕화님께 많은 도움과 힘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뜻하지 않게 부처님의 무재칠시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셔서... ^^  제가 좋아하는 부처님 말씀 하나 더 올립니다.  아마 아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하여...

예전 어느 회식자리에서 한 교수님이 자신은 사후생을 믿지 않으신다고 하시더군요. 왜냐하면 (아주 단순한 이유로) 사후생을 믿었다가 죽고나서 없다면 실망이 클 것이고 , 사후생을 믿지 않았다가 정말 있다면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셈이니까 좋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고요...물론 농담처럼 하신 말씀입니다만... 그때 교수님께 참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아마도 아래 이야기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명의 아내 >

4명의 아내를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첫째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 아내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城)과도 같습니다.


셋째 아내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 아내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라고


실망한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합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말합니다.

육체가 곧 나(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城)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직 마음뿐입니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善과 德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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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0-0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늘 살아있는 동안에 바른 마음을 써야한다고 가르치시는 거지요..^^
저도 바른 판단하는 마음과 자비롭고 하심하는 마음을 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되네요... 아무래도 육체를 가진 몸으로 물질을 중시하는 세상에 젖어 사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님의 글들을 보면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계속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