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덕숭산 자락에 안개가 자욱하며 바람에 산을 타는 그림같은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수덕사에 도착하여 밤중에 산사에 들어가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분향소에서 숭산대선사님을 뵙고 삼배를 올렸습니다.  아주 많은 벽안의 스님들이 계셨었고, 취재진들도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곁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는 분명 우리나라분인듯 했는데 잠시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모습에 외국인인줄 알아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으로만 뵈었던 현각스님, 무량스님, 무심스님, 성광스님등등 많은 제자스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덕사는 덕숭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선맥의 대선사님들이신 경허, 만공, 고봉, 숭산스님이 계셨던 곳입니다.  토요일 오전 10시30분에 추모식이 시작하였고, 각계 각층의 조문사절이 추모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존케리 미대통령선거후보자도 추모편지를 보냈고, 노대통령께서도 추모사절을 보내셨습니다.  12시조금 넘어서 다비식장으로 장소가 옮겨졌으며 40여분간 다비장을 쌓고 거화되었습니다.  수많은 인파로 인해 아주 가까이는 아니었지만 산비탈진곳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활활타오르는 광경을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만감이 교차함을 뒤로한채 7시간이 넘게 걸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숭산문하에는 법사제도가 아주 특이하고 엄격한 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단계의 최고단계는 선사인데,  10여년의 내공뿐아니라 1700공안의 무문관을 돌파하고 숭산스님이하 여러 선사들의 법거량 그리고 미국에 상주하는 다른나라 고승들과의 법대결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야 선사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6명의 선사가 배출되었다고 하니 숭산스님의 법맥이 세계로 계속 뻗아나감은 물론이고 한국불교발전에도 큰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숭산대선사님의 마지막 설법은 불교신문 2086호 12월 7일 화요일자를 참고하여 보시면 좋을 줄로 압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존경하는 대행스님 글중 짧은 한토막 올립니다.


* 일체의 대상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모아들여서 내면으로 던져라.  수행이란 스스로 공부를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항복하고 스스로 항복받는 것이다.


* 이 공부는 자기가 가르치고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 자기가 놓고 자기가 받는다. 자기가 항복하고 자기가 항복을 받는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닦는 일은 결국 자기와 자기의 일인 것이다. 밖을 이야기 하고 밖으로 끄달리지 말라.


* 회개하는 것도 자기요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자기요 후회하는 것도, 행을 고치는 것도 자기다. 누가 있어서 고쳐주고 회개를 받아 주고 하는 게 아니다.  이리가라 저리가라 일러주는 사람이 있다해도 길 안내자일 뿐이다. 정말로 나를 깨닫는 길을 가려면 부처님도 없다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내 마음 근본 주인공에 그대로 상응하는 것이다.


* 나를 깨닫고 나서 안으로 굴리는 수행자가 있고 안으로 굴려서 나를 깨닫는 수행자가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다 안으로 굴린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경계를 마음 안으로 관하라.


* 자기 내면에 일체 제불의 심인이 있다.


* 마음을 증득하지 못하면 자기 안에서 스스로 밝혀져 나오는 빛이 없기 때문에 항상 남의 지식, 남의 생각들만을 자기 머리에 넣어 놓고 있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진정한 대장부, 대자유인으로서 자유스런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부자유한 남의 삶을 사는 것이요, 그래서 속고 사는 인생이요 예속된 삶일 뿐이다. 이래서야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라고 감히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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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2-0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불교 방송으로 숭산스님 다비식 장면을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육신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가셨을 거라고 머리론 믿지만, 아쉬움과 슬픔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가까이서 작별인사 하고 오셨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