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처럼 살면 천상에 태어날까?(견서계경)


각묵(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실상사 화림원)

필자가 좋아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초기경들 가운데 하나가 견서계경(犬誓戒經)으로 옮길 수 있는 『중부』(맛지마 니까야) 제57번 경인 「꾹꾸라와띠까 숫따」(Kukkuravatika Sutta)이다. 여기서 꾹꾸라는 ‘개’를 뜻하며 와띠까는 ‘서계(誓戒, 서원, 맹세)를 지닌 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경의 제목은 ‘개처럼 살기로 맹세한 사람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되겠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힐릿다와사나라는 꼴리야 족들의 읍에 머무셨다고 한다. 그때 개처럼 살기로 맹세하고 그렇게 사는 고행을 하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와 소처럼 살기로 맹세하고 그렇게 사는 고행을 하는 그의 친구 뿐나가 세존을 뵈러왔다고 한다. 그들은 각각 개와 소처럼 사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하는 자들이었다. 개처럼 산다는 말은 개처럼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나체로 살고, 개가 음식을 땅에 던져주면 혀로 핥아먹듯이 그렇게 먹고, 개가 길바닥이나 노지나 처마 밑에서 자듯이 그렇게 자고, 개가 네발로 걷듯이 그렇게 다니는 한 마디로 말해서 개와 꼭 같이 먹고 자고 행동한다는 말이다. 소처럼 산다는 말도 소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산다는 말이다.

이들은 부처님께 찾아와서 “세존이시여, 이 개처럼 사는 서계를 지닌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합니다. 땅바닥에 던져준 것만 먹습니다. 그는 개처럼 사는 서계를 오랜 세월을 지니고 실천했습니다. 그의 태어날 곳은 어디고 그는 내세에 무엇이 되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도의 고행자들이 고행을 하는 목적은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금생에 고행을 하여 받을 고통을 다 받고 나면 그 과보로 내생에는 행복뿐인 천상에 태어난다고 믿고, 어려운 고행을 한다. 아마 그들은 당연히 부처님으로부터 그대들은 천상에 태어나리라는 격려와 칭송의 말씀을 들을 줄 알고 질문을 드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만 하라, 뿐나여. 그쯤에서 멈추어라. 내게 이것에 대해서 묻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알고 싶은 마음에 압도된 뿐나는 개처럼 사는 그의 친구 세니야의 내생에 대해서 계속해서 질문을 드렸고, 세 번을 질문을 받자 부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 말씀하셨다. 세 번 질문을 받으면 여래는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덕담을 바랬는지도 모르지만 세존께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대답을 하셨다.

“뿐나여,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서계(誓戒)를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버릇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행동거지를 닦고 나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는 개들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만일 그가 ‘이런 버릇과 서계와 고행과 청정범행으로 신이 되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진다면 이것은 그의 잘못된 견해일 뿐이다. 뿐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 두 가지 태어날 곳 중에 하나가 있을 뿐이라고 나는 말하나니 지옥이 아니면 축생이다. 뿐나여, 이처럼 개의 서계가 성취되면 개들의 일원으로 인도할 것이고 성취되지 못하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세존의 이런 대답을 들은 개처럼 사는 세니야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가 우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드신 세존께서는 “그러기에 내가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신다. 그러자 세니야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그처럼 말씀하셔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제가 개처럼 사는 서계를 오랜 세월을 지니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즉 오랜 세월을 그 힘든 난행고행을 했건만 그 서계를 닦아서는 아무른 향상이 없고 오히려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지는 퇴보가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셔서 [제 자신이 그렇게 잘못 믿고 힘들게 살아온 것이 너무 처량하고 억울해서] 우는 것이라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소처럼 사는 뿐나는 같은 방법으로 소로 태어나거나 지옥에 태어날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둘 다 뜨거운 눈물을 흘린 뒤 뿐나는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제가 이 소처럼 사는 서계를 버리고 개처럼 사는 서계를 지닌 나체 수행자 세니야가 개처럼 사는 서계를 버릴 수 있도록 그러한 법을 설해주소서.”

세존께서는 네 가지로 업의 법칙을 말씀하셨는데 요지는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라는 것이다. 괴로운(해로운, 검은) 업을 지어 괴로운 과보를 받고 좋은(유익한, 흰) 업을 지어 좋은 과보를 받음을 말씀하신 뒤 이런 검고 흰 업을 초월한 것으로 “검지도 희지도 않은 과보를 가져오는 검지도 희지도 않은 업이 있어서 그 업은 업의 소멸로 인도한다”고 도(道, magga)를 말씀하셨으며 진정한 사문의 길은 바로 이런 업에서 벗어나는 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세존의 설법을 듣고 소처럼 사는 서계를 가진 뿐나는 세존의 신도가 되었지만 개처럼 사는 서계를 가진 세니야는 다시 부처님 문하로 출가를 감행하여 불교교단의 비구가 되어 바르게 도를 실천하여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으로 경은 끝을 맺고 있다.

필자는 이 경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부처님 법을 만나 꽃다운? 젊은 나이에 남들이 하기 어려운 출가를 감행하였지만 혹시 이 개처럼 사는 세니야처럼 잘못된 견해와 잘 못된 수행법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깨달음을 얻으리라, 해탈열반을 실현하리라고 하고 있지나 않은가 나름대로 크게 반성해보았다. 아니 내가 도대체 해탈열반에 대한 바른 이해라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 움켜쥐고 있던 견해와 수행법을 근원적으로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초기경에서 말씀하시는 세존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나의 견해가 잘 못된 것은 과감히 제거하고 부처님이 제시하신 도닦음으로 자신을 바꾸고 개조해나가리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

각설하고, 이경을 통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업설(業說)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소박한 인과론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개처럼 살면 개로 태어나고 신처럼 살면 천상의 신으로 태어난다는 논리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 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정작 자신은 개처럼 사는지 신처럼 사는지 좀처럼 돌이켜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천상에 태어날까? 부처님께서는 『장부』 「수바경」에서 범천의 세상(바라문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천국)에 태어나려면 자애로운 마음[慈], 연민하는 마음[悲], 같이 기뻐하는 마음[喜], 평온한 마음[捨]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無量心]을 닦는 길 외에는 없다고 하셨다. 입으로는 자비와 사랑을 외치면서도 자기와는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이념을 가진 자에 대해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불타거나 혹은 삿된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천상이나 천국에 가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개처럼 살면서 천상에 나려는 세니야보다도 못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불교의 궁극은 천국에 태어나는 것까지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다. 세니야는 부처님의 말씀에서 이것을 알고 개처럼 살기를 그만두고 해탈의 길인 팔정도를 밟아서 아라한이 된 것이다.

나는 개처럼 살고 있는가, 신처럼 살고 있는가. 나는 개처럼 살면서도 천국에 날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개처럼 살면서도 업지음에서 벗어나 해탈하리라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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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1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올려주시는 글에서 많은 감동 받습니다. 퍼갑니다.

바람이되다 2004-10-1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역시 혜덕화님께 많은 도움과 힘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