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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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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후기는 간략하게 끝내겠음.

훨씬 길게 정리를 했었는데- 요즘 너무 길게만 올렸으니 지겨울 듯. :)

 

음악을 좋아하는 글쓴이 김중혁은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추억을 기록한 에세이를 모으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말이다. 그의 에세이집으로 느낀 바로는 그는 철저한 인디 팬이자 서브로 팝스러움이 섞인 장르를 자유롭게 좋아하는 힙스터스러운 바이브의 뮤직러버다. 한때 메탈헤드로 젊음을 만끽하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 조금은 차분하고 멜로디의 밍밍함이 매력인 국산 인디와 연애 중이다. 노래 평론가라는 직업 때문인지 (153쪽 참고) 철저한 가요쟁이인 그가 가장 훌륭한 오디오를 이어폰이라 생각하며 주된 음악청취를 그것으로 하는 대범함을 밝히며 (137쪽 참고) 자신의 음악 추억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꺼내 보여준다. 에세이 중 가장 마음에 든 '이런 삐삐삐삐한 삐삐삐삐삐삐 같은 삐삐삐들아'는 멋진 제목만큼 지하철에서 읽던 Char를 빵 터지게 해 순간 얼굴 빨개지기도 했다. 힙합 아티스트에 관한 에세이인데 스포일러는 남기지 않겠다. 그의 적절한 유머 감각 때문인지 전혀 다른 음악코드를 가진 이야기인데, 전혀 낯설지 않았고 음악에 대한 추억의 아나로그함의 중요성을 느껴 차세대가 안쓰럽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교실 뒷마당에 푸른잔디로 나가 붐박스 형성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어깨에 이고 가서 친구들과 모여 듣던 것은 그 음악 보다 위대한 추억을 남겼다. 패스트푸드만큼 영양가 떨어지고 비슷한 인조성형인 같은 요즘 음악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예전처럼 곡으로 내 인생 사운드트렉 만들기란 갈수록 어려워 보인다. 2013년 현재 테일러 스위프트 (Taylor Swift)의 곡으로 첫 사랑의 아픔을 달랜 그들과 90년대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Christina Aguilera)를 듣던 우리, 80년대에 팻 베네타나 (Pat Benatar) 그리고 70년대에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으로 달랬을 그들 모두 사랑은 같은데 플레이리스트란 다르다. 확실한 건 세대가 흐를 수록 음악과 예술은 가치를 잃어가는 느낌이고 이는 대중음악이 가장 잘 반영한다. 더군다나 아이팟조차 낯선 이세대에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로 듣는 그 추억과 유튜브의 지나친 음악의 비주얼화는 어떠한 향수를 남길까? 레전드의 사운드를 들으며, 볼 수 없었던 라이브 스테이지를 인위적으로 누군가의 뇌에서 꺼내든 메모리 칩처럼 확인하는 거- 그것조차 귀하다지만...그래도 자신의 음악추억은 사람의 냄새와 풀 내음이 가득 해야 할 터-기기의 위이이이이잉 이어지는 소리가 더 시끄러운 잔음이 될까 2013년에 10대인 자들의 뮤직 라이프가 안타깝긴 하다. 애플스토어에서 간단한 전송이면 플레이리스트가 완성되고, 돈 주고 사서 듣기 보다 무료청취가 익숙해진 세대에게 작가 김중혁이 기억하는 레코드 가게 탐방과 친구들에게 카세트 녹음해주는 등, 신상 앨범과 희귀 음반 쟁탈전은 사라진 풍습이다. 그립구나 그때가. 하지만 ‘모든 게 노래’는 특별히 어떤 음악적 견해나 의견 보다 이런저런 추억의 나열이다. “난 음악을 이렇게 듣는다- 당신은?”  하고 묻는 거 같다.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고, 음악을 좋아한다면 나이불문 한 번쯤은 쓱 읽어보기 소소한 이야기다. 지겹지 않아서 읽기 쉽고, 추천 곡들은 주옥 같다.

 

 

 

우리 옆에는 우리와 함께 무자비한 시간을 견뎌낸, 그래서 함께 살아남은 동지들이 있다.

책과 디브이디와 시디와 그림들의 형상을 한, 무생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할 때 우리는 좀 더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다.

 

230쪽, '무자비한 시간을 견디는 법' 中

 

 

 이 후기의 원문 위치: http://blog.cyworld.com/char-babe/3966669

 

 

 

 

 

 

 

 

책의 일러스트를 직접 작가님이 했다는 것에 더 의미있었던 거 같다.

에세이 다운 느낌. 예체능에 능한 흔하디흔한 music whore시다.

 

- 잠시 영어 이야기.. 울렁증 걸리지맛!!

예전에 만났던 사람 중에 Char가 쥬스정키랑 뮤직호어라는 표현 쓰는 걸 싫어하는 작자도 있었으니

적절치 않아 작가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영어로는 흔한 표현으로

쥬스 중독자 (juice junkie)와 음악 걸레 (music whore)라 말한다. 과감하고 약간 난처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열정을 귀엽게 포장해 말한 것이다. 특히 쥬스정키라는 표현은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도 어른들이 쓰는 단어로

쥬스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가들을 말하는 게 주 사용법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 음악을 사계로 나눈 책이다.

그렇다고 봄에는 사랑노래, 여름에는 해변노래, 가을에는 이별노래,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있다는 건 아니구! ㅋㅋ

챕터마다 앞에 김중혁 작가의 일러스트가 깨알같다. 변함없이 헤드폰으로 음악듣고 계시며

1년 동안 같은 헤드폰 쓰시는데 편해보임 +_+d

 

근데 왜 요즘은 왜 헤드폰 쓴 이들이 잘 안 보일까?....

Char에겐 워낙 음악이 중요해서 그런지 10대 여고시절에는 헤드폰을 목에 걸고있는 남자만 봐도 심장이 엄청 달렸다.

겉모습은 둘째치고 음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다.

음악을 잘 아는 남자 중 나쁜 남자를 본 적이 없다 말할 정도이니... 음악애정이 남다르지.

 

 

 

 

 

 

 

 

 

 

 

 

 

MD 플레이어와 CDP부터 애플 시리즈까지 쭉 그림으로 귀엽게 일러스트된 소소한 추억.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끝에 정리된 작가의 추천 플레이리스트!

 

 

 

 

 

 

 

 

 

 

        

알라딘 신간평가단 13기 (Essay)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후기의 원문 위치: http://blog.cyworld.com/char-babe/3966669

 

 

All Rights Reserved. 이 포스트의 출처는 CharUrbane Glitz입니다

(차의 어베인글릿츠)! blog.cyworld.com/char-b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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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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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인생수업’ 226쪽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떨어지면 아무도 주워 가지 않지만, 가을에 잘 물든 단풍은 책 속에 고이 꽂아서 오래 보관도 합니다.

 

사계와 닮은 삶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후해져 죽음까지 이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꽃처럼 지는 것이 아닌 인간의 삶은 단풍처럼 아름답게 물들고 떨어졌을 때 누군가 그것을 주어 추억으로 간직하는 그런 무한함이 있다. 단풍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법륜 스님의 이야기는 이 책의 소제목대로 봄 꽃 보다 아름다운 삶을 찾기 위한 ‘인생수업’이다.

총 6장까지 나뉜 ‘인생수업’은 1장은 행복, 2장은 생로병사, 3장은 사랑하는 이와의 죽음과 이별에 대해서, 4장에는 연애와 결혼, 5장에는 노후와 퇴직에 대해 그리고 6장에는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여러 지혜가 담겨있다. 법륜 스님으로부터 조언을 찾는 많은 이들의 고민과 바람을 상담하며 모인 목록처럼 느껴졌고 특정한 독자층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이야기가 도움되든지 참고된다기 보다 자신에게 특별히 와 닿는 이야기를 무엇이라도 분명히 찾을 수 있는 책이라 느낀다.

 

 

 

 

 

 

 

 

가끔 마음이 불안하면 불교나 선 (禪zen) 서적을 꺼내 읽는다.  철학적이고 수학적인 불교는 종교보다 과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 이야기가 막연하지 않고 절대적인 게 마음에 든다. 모두를 무조건 존중하고 자기 잘못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어딘가에 의지하게 만드는 타 종교와 달리 불교는 개인의 수행을 통해 스스로를 알아 강해지도록 만든다. 가장 큰 악 역시 만들어진 악마나 눈에 안 보이는 어두움 속 괴물이 아닌 나 자신이다. 종교임을 알고도 계속 불교는 철학처럼 받아 들여지는 데는 그만한 배움의 가치가 있어서고 다른 죽음이나 삶에 대한 책에서 기독교 등의 종교성을 강조했을 때와 달리 거부감이나 낯섦이 없어서 좋아한다. 불교는 인생 그 자체니까. 그것이 마음에 든다. ‘인생수업’도 그래서 읽기 쉬웠다. 다만 젊은 20대 보다 부모님 세대가 더 즐겁게 읽지 않을까 싶은 진행된 삶에 대한 이야기 (퇴직, 나이, 질병, 상실, 기대 등…)가 많았다.

세상은 그렇다. 좋게 보이려면 한 없이 좋아 보이고, 나빠 보이려면 현실의 벽이 다 녹아내려 지옥의 문턱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에게 자연을 거슬러 하늘도 날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는지 아니면 자아도취의 나르시즘 (narcissism)만을 키우는지 인간의 가치를 이중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준점이기도 하다.  ‘인생 수업’에서는 모든 인간을 위한 조언을 찾을 수 있다. 연애, 사람관계, 결혼, 나이 드는 것, 죽음에 대한 공포, 자녀에 대한 기대, 새로운 것을 접근하는 자세, 젊음의 정의, 큰 고민거리의 해결법이나 심지어 시어머니나 며느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보통의 사람의 보통의 고민들을 너무 자주 상담해주다 보니 다음에는 “그럼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라며 건네주고 싶어서 길잡이처럼 하나로 엮은 것이 아닐까 독자로써 상상하게 된다. 

 

 

 

 

 

 

 

 

 

‘인생수업’의 법륜스님 글체는 Char의 블로그 말투처럼 어떠한 의사를 흔들림 없이 전달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소개하는 면이 강하다. 그래서 Char의 포스트도 잘못 읽으면 무언가 설교나 강압성이 느껴지는 문장이 있어서 오해를 자주 사곤 하는데, ‘인생수업’ 역시 혼잣말 같은 강의 식의 대화법이 자연스럽게 와 닿았고, 누구에게 일러주는 것이 아닌 어떠한 사실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니 지루하지 않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간, ‘요시모토 바나나의 인생을 만들다’를 읽으려고 알라딘에서 도서평을 찾아 읽다 이러한 글을 적은 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이(작가들, 저자가 둘 명) 하는 말은 모두 옳다는 걸 아는데, 좀처럼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래서 읽으면서 갑갑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가끔 '인생수업' 같은 책을 접하면 첫 문장부터 무언가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글이기 때문에 덜컥 학창시절 혼나는 느낌처럼- 그 강압이 싫어진다. 갑갑하게 묶이는 거 같다. 하지만 누군가가 무언가가 이러하고 저러하다 이야기 할 때면 몸을 느슨하게 풀어놓으려고 요즘 노력한다. 조금 적나라한 예를 들자면,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때처럼 난 몇 번이고 섹스를 해본 사람이니 배울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자신만만한 생각으로 같은 모습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건 교감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일 것이다. 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언제나 새로운 것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여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듯 인생 조언도 그렇게 들으려 노력한다. 도무지 더 새로운 게 무엇이 있겠는가 다 비슷하지 않은가 말하지만- 자신 보다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조차 그 사람의 세상을 관찰할 기회가 열리는 거다. 그 세상은 자신의 것과 다를 수도 비슷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소통이기에 한없이 호기심 어린 나를 되찾을 기회다. 사람은 그래도 계속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그러한 새로운 인연을 가장 자유롭게 만들 기회는 사실 독서를 통해서다. 가슴을 펴고 친구 만나는 느낌으로 읽는 ‘인생수업’의 이야기. 모두 흡수할 수는 없어도, 다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읽으면서는 위안을 많이 받는다. 위로해주는 삼촌 같은 느낌이 든다. 앞서 말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의 또 다른 후기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그들이 너무 앞서가 있는 것 같았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렇지 못한 자신이라 읽으며 이를 다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그렇다. 보통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도 작가는 자유롭게 글로 써내리니 가끔은 몸에 힘을 다 풀고 이런 글을 있는 대로 읽고 섹스도 더 이상은 없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모험성을 갖기란 대부분 사람에게는 어렵고 무섭기도 한 일이다. 글을 쓴 사람이 생각하고 적는 이상이나 관점은 그 작가가 수도 없이 깊게 밤잠 이루지 못하며 생각을 했던 것들이다. 그러니 처음 읽고 받아들이는 우리는 낯설기도 하다. 이럴 때는 한 발자국 뒤에서 본다. 다행히 '인생수업'은 쉽게 읽히는 만큼 무거운 인생 이야기를 대화 투로 가볍게 풀어 어깨에 쌓인 짐을 가볍게 툭툭 털어주는 법륜 스님이다. 젊은 층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가족 누군가가 공감할 이야기라 더 유심히 읽게 된다. 오히려 독서 중 마음이 놓여서 꼭 공감이나 별다른 감정을 느낄 필요 없는 평온한 독서였다. 현대 한국인이 이해하고 알고 필요로 하는 이야기만 정리된 책이다. Char는 자기 관점과 반대의 기준을 가진 주제를 만나도, "그렇구나. 좋다."하고 이해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얻어 넘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평온하고 어렵지 않고 다리면 계속 움직이면 되는-눈이 계속 읽기만 하면 되는 차분한 산행이었다.

 

 

 

 

 

 

 


제가 고문을 당했는데, 그 일을 나쁘게만 생각했으면 저에게 큰 상처가 되고 한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생의 경험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몇 년 수행하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험한 것을 주로 상처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이 고달픈 거예요. 어떤 경험을 했든 그것을 항상 교훈으로 삼아서 자산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능력도 커집니다.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가 많음에도 완전히 공감 못하는 데는 분명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지.. 하는 생각 보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로 대답할 수 있고 싶다.

 

- 114쪽, ‘아들이 주고 간 큰 선물’ 中

 


 

Char는 보헤미언(bohemian)이다. 스님과의 반대가 아닐까 가끔 막연한 상상을 한다. 사실 보헤미안의 정의는 네 멋대로 가 아닐 뿐이지 내 멋대로인 건 또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마음을 편히 먹으려 노력하고 보통사람이 하는 돈 걱정, 미래 걱정, 현재 걱정, 자기발전조차 큰 우려 없다. 원하는 걸 하고 원하지 않는 걸 스스로 가려 판단 후 아니다 싶은 것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스님과 달리 수련을 위한 것도 어떠한 경지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성격이 언제나 그랬고 엄연히 영국인이니 그조차 무시할 수 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려서부터 불필요한 고생을 겪고 그것엔 분명 무언가를 배운다는 법륜 스님과 같은 의미부여를 과도하게 하다 깊은 마음의 해를 입은 탓이다. 스스로 걸어 온 삶을 견디지 못해 결국 지금의 이러한 모습이고 친구와 가족 모두 이 부분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어느 정도 인정 또는 포기를 했다. 온몸과 마음에 힘을 풀어 주는데 집중되어 예술인의 삶이 대부분인 보헤미언은 흔히 그 삶이 아니고서야 살아있기 힘든 상태인 거뿐이지 깨달음을 얻어 자유롭든지 당당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Char가 오랫동안 해온 클린이팅도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듯 신내림 받는 여자 마냥 그것을 직접 선택한 계기는 자신의 온전함을 위한 행동이지 딱히 원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스님처럼 클렌징을 하는 개념이 아니니 정말 정반대 같다 느낄 때가 많다. 불교에서는 힘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 하니 그것이 마음에 들어 좋아한다 앞서 말했지만 불행에 대한 치유법은 각기 다르고, 흔히 치유가 안 되기도 한다. 이를 가장 좌우하는 게 개개인의 성향과 성격에 달렸다 생각하겠지만 흔히 주변 환경에 1차적으로 달렸다. 전쟁을 겪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 어린 나이에 눈 앞에서 부모가 죽은 사람, 사업이 망해 빚 때문에 양손이 잘린 사람, 강간을 당한 사람, 사기를 당한 사람, 정신병에 걸린 사람- 세상에 아픈 모든 사람에게 더 단단해진다는 말은 때로는 굳은 채 말라비틀어져 스치기만 해도 부서지는 존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법륜 스님의 말이고, 최선을 다해봐야 “아.. 그럴 수도 있겠군..”하는 이해 정도다. 우리 같은 (좀 과도하게 부서진) 사람들도 타인이 보면 무언가 깨달음이 많아 보이지만 사실 자신의 상처를 감당하지 못해 땅을 기어가는 상이다. ‘큰 선물’ 같은 말로 힘듦 속에서도 좋은 것들을 골라내 그것의 배움과 고마움을 느끼는 건 가능이야 하더라도, 현실의 그 공백을 채우지도 채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정신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그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무 커지지 않는데 “관리”하기 때문에 다소 이상적인 스님의 에세이가 위로가 되면서도 Char는 말이 괜히 2% 아쉬웠다. 그렇다고 최근 읽기 시작한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론 에세이처럼,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고만 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도 스님이 ;).

 

 

 

 

 

 

제목으로 추측되듯 위 에세이는 자녀의 죽음에 대한 에세이였다. 위에 적은 단락 후 이러한 글로 에세이가 마무리된다:

 

 

자녀의 죽음은 비할 바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통해서 인생을 깨달으면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대범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식 잃고도 사는데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한다 한들 못 살 일이 뭐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에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도, 딴 사람은 죽네 사네 해도 나는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겁니다.


 

 

20대 후반이 된 Char는 가족도 친구도 죽음으로 많이 잃은 시점이라 그런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3장이었다 (많이 배운 건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6장일 것 같지만!).

 

 

 

 

 ▲ '인생수업'은 책을 아름답게 살리는 유근택 화가의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우리는 신앙을 하면서도 늘 자기 수준으로 믿고, 자기 수준으로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끌어내립니다.

 

- 74쪽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 떨치는 법 中

 

 

 

 


올 초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죽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쉽게 오곤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마음이 생기는 순간은 극심한 우울증과 삶에 대한 의욕이 없을 때이다. 즐겁게 살고 활력 있는 순간에는 오히려 인생의 끝에 대한 불안이 없다. 법륜 스님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아쉬움 때문이라 그런 것일 거다. 아쉬운 게 많은 삶을 살지 말자는, 오늘은 잡으라는 카르페 디엠이 등장하는데도 그런 이유가 있겠다. 이 에세이뿐 아닌 2장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즉 불교에서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고통을 말한다. 그리고 그 중 늙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한 속 시원한 이야기가 있어 위안을 많이 받았다. 몇 달이고 전에 이 글을 읽었으면 어땠을지 모르나 분명 실제로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힘든 것을 이렇게 상담이라도 한 듯 법륜 스님께서 말을 먼저 걸어주는 느낌이 드는 책이라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그의 또 다른 에세이집,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남녀에게 쏟아지는 축복 같은 조언’도 읽고 싶어졌다. 위에 이야기는 믿는다면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 없이 다 위에서 알아서 할 일인데 괜한 걱정이란 이야기였다.

 

 

이렇게 무언가를 잃고, 상처를 입고, 죽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멋지게 잘 설명한 부분이 ‘인생수업’에 또 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결론으로 이 후기 끝에 적은 문구 보다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이다:

 

 

 

그릇에 얼음구술을 담아놓았는데, 네다섯 살짜리 아이가 바깥에 가서 한두 시간 놀다 들어오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지고 물만 담겨 있습니다. 아이가 그걸 보고 뭐라고 할까요? “엄마, 내 구슬이 없어졌어. 그리고 물이 생겼어”라고 하겠죠. 이때 엄마는 그 과정을 아니까, 얼음구슬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다만 얼음이 물로 변한 거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생멸의 관점을 갖고 세상을 보기 때문에 생겼다고 기뻐하고 사라졌다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전체로 보면 변화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생불멸’이라고 합니다.


76-78쪽, '삶과 죽음은 하나의 변화일 뿐' 중

 

 

 

그래서 다음에 죽음이 무서워지는 밤이오면 주문처럼 외우리라, 불생불멸.



 

 

 

 

 

 

 

가족을 잃었을 때의 자세에 대한 조언

내가 웃으면서 지내야 자식이 잘 큽니다. 그러지 않고 슬픔에 빠져 있으면 아이들의 정신에 아주 나쁜 영향을 줍니다.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에 대한 미련을 끊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홀어머니가 늘 울고 지내면 자식이 스무 살이 넘어도 집을 못 떠납니다. 어디를 가고 싶어도 ‘엄마 혼자 놔두고 어떻게 가나.’ 해서 제 갈 길을 가지 못합니다. 또 여자를 사귈 때도 그냥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지 못하고 ‘이 여자는 엄마한테 잘 맞출까?’ ‘이 여자가 우리 엄마를 잘 보살펴줄까?’ 이런 것을 생각해서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 남편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복하게 웃으면서 지내야 합니다. 자식이 엄마를 걱정하더라도 “내 걱정할 것 없어. 나는 괜찮으니 네 걱정이나 해라.”할 정도로 당당하게 살아야 자식이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슬픔을 놓아버려야 더 이상 그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게 됩니다. 또 떠난 사람을 위해서도 훌훌 털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은 할 수 있지만 집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리워서 우는데 영혼은 허공을 떠돌게 됩니다. 그를 위해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줘야 하고, 나를 위해서도 가볍게 떠나 보내줘야 하고, 남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도 더 이상 붙잡지 않아야 합니다.


108-109쪽, ‘딱 3일만 슬퍼하고 정을 끊어라’ 中

 

가족을 잃었을 때의 자세. 과연 이것이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외국뉴스를 보면 딸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용서한다며 미소를 지으며 기자회견을 갖는 등 그러한 놀라운 평온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것이 현명하고 떠난 사람에 대해서도 최선이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은 더 이상 무엇도 없고- 살이 있는 것은 자신과 자기 가족이기에 자신을 위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랑하는 그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잘했다며 기뻐해줄 그런 유일한 행동이다. 위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은 이유는 특히나 자신의 불행에 대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남은 가족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직접 겪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인생수업’은 삶에 대해 또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이 또는 가족을 잃는 등 큰 상실을 겪은 등 종교가 없는 사람조차도 신에게 답을 찾고 싶게 만드는 그런 힘든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또는 경험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기 인생 찾아 떠나는 자식들의 등을 보며 홀로 있는 것 같아 느껴지는 외로움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가슴에 구멍이 뚫린 거 같은 사람까지 조금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조언의 에세이집이다.

 

 

 

 

 

 

 

인생의 어두운 면만 조언하는 책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인생에서 찾아오는 모든 순간 중 흔히 사람들이 적응하기에 시간이 필요한 것 또는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 중 일부를 아래에 정리하겠다.

 

 

 

 

돈을 얼마 더 받고 안 받고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 쓰임새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평가를 해야 합니다.

또한 일과 재미가 함께할 수 있다면 일이 곧 놀이이기 때문에 일 끝난 후에 다른 곳에 가서 삶의 활력을 찾으려고 굳이 애쓸 필요도 없어집니다.

 

219쪽, ‘일에서 내 삶의 활력소를 만드는 법’ 中

 

 

 



일과 놀이가 따로 있지 않은 법륜 스님은 강연을 즐겁게 하는데, Char 역시 느끼기로- 스스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만큼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 보다 해야만 하는 것을 하고 있어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행복하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거 같다.
 

 

 

 

 

 

 

지도자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개인은 자꾸 제도에 책임을 물으면 끝이 안 납니다. 어차피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는데, 제도 개혁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물론 끊임없이 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평불만 속에서 괴롭게 산다면 내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그래서 개개인도 조금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211쪽, ‘목사님은 정규직, 스님은 비정규직’ 中

 

 

 

겉모습만 보면 20대 중반 갓 넘은 것 같다만 서른이 넘어버린 모재형을 만난 날은 하필 서로 눈치 못 채 만나게 된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고속도로가 엄청 막히는 바람에 거의 온종일을 차에서 대화를 나누며 보냈었다. 가을 꽃 축제로 한국 특유의 비상식 주차대란이 고속도로에까지 이어지는 혼란 속에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 중 법륜 스님의 위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모재형은 친구들이 모두 장가를 갔는데 대부분이 연애결혼이든 아니든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 왜 연애를 하고는 결혼이 원하지 않는 것이었나 물어보니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었고 경제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부담이 되는데, 나이도 차고 주변에서 눈치를 주니까 할 수 없이 했다는 거다. 그래서 결혼을 한 친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졌다는 거다. 이쯤에서 “아니- 남의 눈치를 왜봐!!”라며 그런 묵언의 20-30대 서울라이트 타임라인을 걸어가는 것에 놀랐다. 넌 외국인이니까 그렇지- 라고 모재형이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생각을 바꾸는 게 어려워질 뿐이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해서 모두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행동하고, 자신이 가진 신념도 바람도 모두 누가 대신 해주든지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포기하고 말지는 않는다.  뭐 그 얘기 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후 이야기다. 불행한 결혼생활 중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전혀 혜택도 지원도 없는 정부 욕이 자연스레 따르는 것이다. “나라가 제대로 하면”을 입버릇처럼 붙이는 30대 젊은이가 그대로 불평만 하며 나이 들면 종로3가 가면 무섭게 널린 욕쟁이 할아버지가 되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고작 한 명인데,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말한다면 간단하다.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법륜 스님 이야기대로 나는 당장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잘못된 것이 잘못됐다 말하는 건 시작일뿐이지 그 이후에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매일 열심히 생활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 굴레에서 벗어나는 한국을 꿈꿔도 되고, 주변에게 항상 자신의 좋은 의견과 열린 생각을 이야기해 조금씩 변화를 꿈꿔도 된다. 크든 작든 자기 인생을 불평만 하고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솔직히 말해 그런 것들 불평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더 많고 아픈 시련이 많이 기다릴 테니 기운 뺄 필요 없다.

 

위 내용은 직장생활, 비정규직 제도에 대한 에세이에서 등장했기에 이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이야기지만 정규직은 편히 보장된 직장이기 때문에 월급을 줄이고 그것을 오히려 비정규직의 것으로 해 비정규직이 훨씬 많은 월급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상하게 지금 한국은 비정규직이 돈도 혜택도 못 받기에 사람들은 이에 대한 가치를 전혀 좋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귀한 건 비정규직이지 정규직이 아니고 비정규직은 전문가이지 청소년 알바의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면서 돈은 쥐꼬리만큼도 안 주는 이상한 굴레를 벗어나 비정규직을 써서라도 해야 할 전문성 있는 일을 제공하고 이에 걸 맞는 높은 보수를 제공하여- 보장되는 장기 일자리가 아님에도 전혀 상관없게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특히나, 자식에게 집착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명언처럼 자주 나오기 때문에....

(분명 자식이 백 번 말해봐야 스님의 말 한 마디만 하지 못하니 이 책을 너무나도 맘스에게 선물하고 싶었음.

막말이지만 여전히 10대였다면 기운이 남아돌아 어쩌면 얼굴에 던지고 싶었을지도...)

 

 

 

 

어떤 것을 유지하고 싶고, 갖고 싶고, 제 뜻대로 꼭 하려 하는 것을 집착이라 합니다.

 

164쪽, ‘집착과 외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中

 

 

 

많은 부모가 자식에 대한 집착과 외면을 되풀이합니다. 자식에 대해서 잔소리하는 것은 집착이고,

성질대로 안 되니까 “에라, 공부를 하든 말든 너 알아서 해라.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하는 것은 외면입니다.

그런데 집착과 외면을 늘 반복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통이 계속됩니다.

 

165쪽 中

 

 

 

 

부모가 스무 살 넘은 자식에게 신경 쓰는 것은 자식에게도 나쁘고 부모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가족이라고 내 마음대로 구속할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살도록 놓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자식도 제 갈 길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205-206쪽, ‘은퇴 뒤에 자유롭게 살 권리’ 中

 

 

 

 

재미있었던 것은 흔히 여성들, “아주머니”들의 문제인 걸 책에서 인지할 수 있다는 거다. 나의 부모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법륜 스님의 입에서 나오면 좀 더 귀 담아 들어주실 것 같구나.

 

 


‘인생수업’의 결론


내가 남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이해하면, 내 가슴이 후련하고 내가 행복한 거예요. 내가 남을 보살피고 도와주면, 내가 어른이 되고 주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예쁜 옷을 입는 것보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보다 가장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는 법입니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도 당당하고, 평화롭고 곱게 물들어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274쪽,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 中

 

 

다른 이야기 다 읽지 않고 딱 이 부분만 읽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책을 잘 정리한 문구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에필로그의 끝자락에 나오는 이야기라 이것으로 후기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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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만큼이나 현대에 책벌레에게 영감을 주고 애정을 받는 곳은 서점이다. E북이 대중성에 이어 점차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듯싶었지만 의외로 서점은 더욱 문화복합적인 공간으로 재탄생 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꿈이 있을 같다. 자신이 평생 읽고도 남는 자기만의 도서관을 갖는 . 그것을 이루기란 어렵지만 책을 읽으면서 꿈이라도 이어갈 있단 생각이 든다. 세계 관광 명소를 곳씩 떠나는 바람마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찾아 책을 책답게 진열한 곳에 서서 환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책에 처음 관심 가지게 계기는 순전히 표지 때문이다. 단독주택에서 자라지 않은 이상 대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느껴지려나 모르겠다. 어렸을 우리의 대문은 새빨간 나무 대문에 배의 높이에 윈도우 페인이 예쁘게 장식된 대문을 가졌었다. 수많은 추억과 이야기가 대문을 떠올리면 생각이 난다. 친구 대문, 선생님 대문, 옆집 대문, 매일 지나치는 타인의 대문 모두 유심히 보게 되는 이유다.  집과 공간의 중요성을 대문 하나로도 충분히 나타낼 있다. 그래서 책의 내용으로 다가서는 대문 같은 표지란 느낌이 들어 매력적이었다. 삶의 가장 많은 시간과 기억을 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건축가의 에세이로 만날 있다면 직접 만나고 가보지 않았어도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느낌으로 무언가 배울 있다는 기대감이 부푼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찾고,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음악을 듣고, 알랭 보통의 책을 읽는다. 그렇게 항상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연애다. 위대한 과학자나 대기업을 이끄는 CEO 또는 세상이 바라보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도 의미가 없다. 그것이 인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의미를 주고, 아름답게 해준다. 인류의 어떤 발전과 발견과 개척도 , 위대한 사람의 탄생조차 또는 많은 이들의 사랑이 아니라면 이루어질 없는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번이라도 떠올리는 것은 사랑일 것이다.  여러 사랑 이야기를 읽기 좋아해 야심한 새벽 누군가의 연애일기를 훔쳐볼 있는 블로그라도 찾아보는 사람으로써 있지 말아요 읽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글에는 거의 공감하지 않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다. 개인주의가 아닌 진정성이라 생각해서 그렇다. 이것을 이해하는 독자 보다는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는 독자만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낯선 만큼 솔직하다. 그의 이야기가 하염없이 좋아서, 단지 이유로 위시리스트에 있는 것이다. 분명 1등으로 적고 싶은데, 비밀인 거처럼 품에 안고 있다. 타율적인 삶에서 벗어나 빛을 얻는다는 망상을 하게해준다. 편안한 같아도 부자율 속에서 안정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깊은 공감에 그의 글은 괴팍하지만 옳은 말이라 있는 대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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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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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위치: http://blog.cyworld.com/char-babe/3964998

 

 

 

 

 

 

 

 

문학평론가로 뛰어나 비할 데 없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지난 9월 18일 생을 마감하며 '문학의 교황'이라는 타이틀을 쓸쓸하게 남긴 폴란드계 유대인 비평가다. 1920년 폴란드 브워츠와베크에서 태어난 그가 9년 후 가족과 베를린으로 이주했는데 이 시절 그는 독일 문학과 문화에 빠졌다. 하지만 1938년 10월 제3제국의 유대인 탄압으로 12,000명 넘는 폴란드계 유대인들 속에 강제 추방 당하고 바르샤바 게토에 수용된다. 1943년에는 자신의 아내 테오필라와 극적인 탈출에 성공하여 열17개월을 한 농가에서 숨어 지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폴라드군에 입대하고 런던 주재 폴란드 총영사관에서 영사로 일하기도 한다. 1949년부터는 독일문학 편집자이자 비평가로 일하는데, 이렇게 지겹게 사실을 나열한들 그의 인생은 힘겨워 더욱 빛났다. 전쟁을 뚫고 생존한 그는 평론을 통해 얼마나 혹독하고도 위대한 삶을 살았는지 간파할 수 있다. 그는 1988-2001년까지 독일 공영방송 ZDF에서 '문학 4중주 (Literarisches Quartett)'라는 서평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여기서 직설적이고 명쾌한 평론을 하여 많은 명성 높은 작가들의 미움을 받게 됐다. 종교가 쓸모 없다 생각하고, 신은 상상도 않겠다는 그의 무기는 드라큘라처럼 무섭게 드러낸 송곳니와 위험하게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정도일까? 사람도 박쥐도 아닌 그는 “나는 반편의 폴란드인, 반편의 독일인, 그리고 온전한 유대인입니다.”라고 이야기 했고 세 가지 모두인 그의 삶은 착잡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그의 모습이 가장 공감되어 아마 전쟁 이야기가 많은 그의 자서전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개개인마다 누구나 힘든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일상에서 속 편하게 그렇게 이야기할지 몰라도 예술에서의 현실은 극히 층하한 구조다. 예술인의 가치는 고통으로 평가된다. 팔이 잘렸느냐 귀가 잘렸느냐 가슴은 남아있지 않고 지금도 피를 토하는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그것으로 얼마나 부서졌고 복구가 안됐는지에 따라 위대한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 재산 1150원 밖에 없는 이가 버스에 올라타는 것과 비슷하다. 대가는 전재산이고 올라타면 돌아올 수 없다. 종점으로라도 계속 이동하기 위해 뒤 칸에 몰래 숨어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존경은 분명 그런 그의 힘든 과거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그는 칭찬을 심하게 아꼈고, 이러한 타이거 맘 (Tiger Mom) 평론 성향은 애정에 메말라 더 위대한 대다수의 훌륭한 작가들을 애타게 하고 잠 못 들게 만들었다.  Char는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와 다른 세대인 것이 기쁨과 동시에 약간 슬프기도 한 것이 분명 한평생 겪어야 할 부모라는 작자의 무게에 짓눌린 아이들이 예술인이 된 후에도 그 나르시스트 적인 역할의 바톤을 넘겨받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같은 무서운 평론가를 놓쳤다는 이유 때문일 거다. 분명 피학대 성애자 (masochist)의 아쉬움이다.

 

 

 

 

 

 

이 에세이집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긴 세월 수집한 여러 작가의 초상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주는 그림이고 덤으로 작가의 이야기도 양념으로 추가된다. 본인이 말하기로도 초상화 컬렉션이 문학평론가인 자신의 이력에 한몫 담당했다는 것이다.  상을 받으며 선물로 받은 그림부터 선물로 받았는데 정말 못 그려서 버리고 싶었던 그림까지 많은 초상화를 모아 집에 하나씩 걸며 어느새 자리가 없어 이사해서 걸기까지 그 열정이 느껴지는 그의 예술 사랑이다.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쓸지 몰라서 하루나 늦게 리뷰를 올리게 됐다. 재미없게 읽지는 않았으나 주로 마지막까지 어떻게 쓸지 몰라도 어떻게든 틀이 정리되는 편인데 ‘작가의 얼굴’은 차라리 정말 초상화로 다시금 확인 가능한 작가의 얼굴 (관상)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좋았을 걸- 여러 작가의 초상화를 접한 계기와 평론가만의 관련된 추억 정도로는 도무지 뭐라 적을지 모르겠다.  평론가와 작가의 차이는 크지 않다. 글도 잘 쓰고 문장력도 좋다. 곁눈질로 보면 평론가에 더 걸 맞는 이들은 글을 잘 쓴다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확연한 차이란 남의 명확한 평가에 있는 평론가란 글과 무관한 일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고로 가끔 이 사람이 에디터, 평론가 또는 작가가 직업인지 고민될 때면 이렇게 생각한다. 에디터는 글의 오락성이 다분하지만 속이 없고, 평론가는 잘 썼지만 읽는 재미가 없고, 작가는 발로 써도 글이 재미있고- 발의 밑 단까지도 완벽하게 바지길이를 맞춰 낸다. 그래서 팔만한 글은 작가의 글뿐이고 엉망인 상태에서도 에디터가 관객을 끌어 모으는 대중성을 담당하고 평론가가 채찍과 당근을 들고 등장해야만 서커스 쇼가 완성된다. 코끼리 없이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무대에 선 그의 에세이를 보통 사람에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그의 평론을 좋아하는 독자 또는  ‘작가의 얼굴’에 등장하는 41명의 영향력 있는 또는 잊혀진 작가에 관심이 있다면 백 번이고 즐거운 독서다. 

 

 

 

 

 

이건 아마도 에디터와 출판사 측의 노고이겠으나 특징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림의 소개와 해당 그림이 항상 정확한 자기 위치를 하고 있다는 거다.

너무 빨리 등장하지도 늦게 등장하지도 않는 그림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이

적절한 순간으로 친절하게 배열된 게 독서에 도움이 많이 됐다.

 

 

 

 

 

‘옮긴이(김지선)의 말’이 가장 잘 정리했다.

독일문학에 대한 특출 난 사랑을 이야기하며 초상화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한다.

 

 


가만 보면, 우리는 모두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학과 예술, 정치나 사회, 그 무엇에 대해 말하건, 실은 자신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것들, 소망하고 지향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모둔 이야기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아, 하나의 거울이 되고 그림자가 된다.

 

- 349쪽, 살고 사랑하고, 이야기하기  中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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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일락 2013-10-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남긴 글을 봤습니다.
char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먼댓글을 다시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다른 블로그에 있는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듯합니다.
아래글은 신간평가단 담당자님께서 신간평가단에게 이런 방법으로 먼댓글을 다시라는 공지의 글인데, 참고하세요.


신간 평가단 분들은 알라딘 서재를 통해 리뷰를 작성해 주세요.
리뷰는 본인의 서재에서 마이리뷰로 작성해 주시고요, (개인 블로그에 작성하시는 분도 알라딘 서재를 만들어 알라딘 리뷰로도 함께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신간 평가단 서재에 개설되는 해당 도서 페이퍼에 먼댓글을 꼭 보내주셔야 합니다.
먼댓글로 연결되지 않은 리뷰는 저희가 확인할 길이 없으므로, 리뷰 체크가 되지 않습니다.
개인 블로그에 리뷰를 이중 등록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먼댓글 연결 방법 안내 >> http://blog.aladin.co.kr/proposeBook/1759359

이 공지 내용대로 하시면 될 것같습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도서에 서평을 남겨 주세요- 에 서평이 노출되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번거로우시더라도 알라딘 서재에 올려주시고, 먼댓글을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알라딘 신간평가단 담당자님께 문의드리시면 자세하게 알려주시리라 생각됩니다.




Char 2013-10-23 18:54   좋아요 0 | URL
글을 작성할 때 아래에 "먼 댓글" 란을 체크한 후 거기에 해당 먼댓글 주소를 기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공지글 아래에 댓글로 저의 글이 먼 댓글로 달리더라고요! 혹시 그 방법으로 문제가 있는건가요?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과는 전혀 무관하게 올리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는 먼 댓글 작성하고 있지 않고 순전히 알라딘 서재를 통해서만 먼댓글 등록하고 있어요. 블로그와 알라딘 서재 블로그와 먼 댓글로 이어놓지 않았습니다. ㅠㅠ 어디서 문제가 일어나는 걸까요? 제게는 그것이 댓글로 알라진 공식 서재에 보이는데....

라일락 2013-10-23 19:31   좋아요 0 | URL
위의 글을 보면 서평 올리시는 방법이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이번 달에는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달에도 서평을 올리신 후에 해당 도서에 char님의 서평이 올라와 있는지를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평 확인 과정에서 확인이 안 되어서 메일을 보내드렸는데, 혹시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Char 2013-10-23 19:30   좋아요 0 | URL
그럼 제 알리딘 서재에 글을 올리면서 그 아래에 먼댓글 입력란을 이용하지 않고
앞으로는 신간평가단 서재에서 말씀하신대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 달엔 정상적으로 확인 가능하셨으면 좋겠네요 ㅠㅠ
제가 확인할 땐 댓글 달리는 거까지 다 보이는데 말이지요.

안내 고맙습니다!

라일락 2013-10-23 19:31   좋아요 0 | URL
네, 좋은 날들 되세요.
 
[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보기 편한 이 글의 원문은

http://blog.cyworld.com/char-babe/3964519

여기입니다.

 

 

 

 

 

 

 

 

 

예쁜 책이 한 권 도착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활동 중 매달 초 그 전달의 신간도서 중 골라 위시리스트를 알라딘 블로그에 기재하게 된다.

그런데 Char가 8월 신간도서 위시리스트 중 꼽았던 이 책이 이달 2권의

평가단 리뷰 신간도서 (에세이)로 선택됐을 때 무언가 당첨된 거처럼 기뻤다.  

 

'책으로 가는 문(本へのとびら 岩波少年文庫を語る, 2013.8.8)'은 두 파트로 나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글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꼽은

자신이 아끼는 50권의 어린이문학을 정리 후 이에 대한 수필식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나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솔깃한 책인데,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 책을 그냥 사랑하는 사람, 일러스트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던지

단지 어렸을 적 가장 좋아하던 동화책이 한 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거운 책이다.

 

예를 들어, Char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이 가고 영국 아동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매우 유익한 책이었는데,

본래 이 책을 위시리스트에 넣었던 이유가 미야자키 하야오 광팬인 소년 때문인데, 소녀은 사실 독서에 큰 관심이 없는지라 아동문학이라지만

엄연히 책에 관한 이야기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닌 그가 영향을 받은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 몇 개 보아 별 집중력을 부르지는 않는다는 개념임.

 

 

※ 그래서 Char는 '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알지 못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난 느낌이었고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치우치는 이야기의 리뷰가 될 듯 하다. 즉, 자주 그런다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이 책은 순서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는 꼭 앞에서 뒤까지 읽는 식의 순서를 좋아하지 않음을 책에서도 말한다.

그래서 이 리뷰도 꽤 뒤죽박죽으로 올리게 됐다.

어느 정도 수정할까 하다 그냥 올리니 아무 곳이나 스크롤하며 읽다 말았다 하면 될 듯.

 

 

 

 

 

 

 

 

눈을 아주 크게 하고 위 사진을 드려다 보면

하얀 표지에 점자처럼 타이포그래피가 움푹 파인 것을 미세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책의 넥/스파인 (목) 부분도 그렇고 책의 뒤까지 이어진다.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대단히 일본 책답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다른 도서 리뷰를 통해 할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했다. 할아버지의 일상 중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다니는 것이 있었는데, 따라가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어로 책을 읽으셨고, Char는 영어로 책을 읽었으니, 같은 원서 코너를 찾아가 한참 책을 골랐다. 할아버지께서 고르신 책은 언제나 똑같았다. 한 손에 쏙 들어와 소설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하얗고 깔끔한 책이었다. 디자인도 없이 모두 동일했다. 하루는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왜 책이 다 그렇게 작아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일본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을 자주 읽는데, 옆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작게 만들어 어디서든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든 거라 하셨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한 손에는 손녀의 손을, 나머지 한 손에는 자그마한 하얀 색 일본 원서- 그때 그 원서가 생각나는 표지다 ('책으로 가는 문' 113쪽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러스트와 표지의 중요성에 대한 에세이가 나온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잘한다.

자신이 들은 이야기, 읽은 책에 대한 열정이 순수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다리가 180도 펴지는 유연한 발레리나 같은 바인딩

 

바인딩 전문가가 아니니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일본 책다운 바인딩이 정말 매력적이다. 대학시절 일본노트가 유행했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펴지지 않아서 손으로 꾹꾹 눌러서 펴야 하는 노트뿐이었고 그게 귀찮으면 스프링노트를 코스트코에서 대량 구매해 사용하곤 했었다. 꼭 무슨 80년대 이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낡아빠진 시절의 얘기 같지만 2005년엔 그랬다. 그러고 보니 2005년에 태어난 아이가 듣는다면 정말 낡아빠진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겠다. 아무튼 공책을 180도 펼치기 위해서는 바인딩부터 달라야 했는데, 이를 일본에서 대단히 잘하는 거. 그래서 당시 대학교내 문방구에는 일본노트가 인기였다.


이 책 역시 바인딩이 매력적인 책이다. 쉽게 펴지기에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양손으로 잡고 겉으로 당겨야 하는 책이 아닌 게 편했다. 글을 많이 쓰던 Char에겐 마치 한 종류의 꽉 막힌 여자만 만나다 상상도 안 했지만 알게 된 이상 나와 너무 잘 맞아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상형을 만난 느낌과 비슷했다. 아마도 스미스 서운 (Smyth Sewn) 방식일 거다. 각각 책 전체가 분할되어 작은 책자가 만들어지고 그 책자를 하나로 이어주는데 이을 때 일일이 실로 묶인다는 거다. 그래서 어렸을 적 도서관에 가면 앞장이 너무 너덜너덜해진 탓에 떨어져 분실되는 그런 일이 요즘은 발생할 수 없다.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바인딩 법이고, 풀로 종이 하나하나를 스파인(spine, 책의 목부분)을 붙이는 옛날 방식인 퍼펙트 바인딩 (Perfect binding)도 흔히 이야기되지만 이는 책이 180도 펴지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을 하루 정도 읽는데, 금세 표지와 책이 분리됐다. 그냥 부실한 상태로 표지가 온 것일 뿐이라 직접 문방구 “딱풀”로 붙였고 다시 떨어지는 일이 이후 없었다. 단지 표지의 문제였음. 책 자체는 절대 분리될 수 없는 형태로 묶인 거. 이 책의 바인딩 방식 덕에 펼쳐서 보다 보면 10개의 구멍이 계속 보일 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바인딩 방식이라 읽는 수월했고 다른 책도 다 그랬으면 좋겠다. 확 펼쳐지는 큰 동화책의 느낌도 사뭇 느껴졌다. 


 

 

 

 

                                           "책으로 가는 문" Book Review                                          

 

※ 사진과 아래 설명은 리뷰내용과 전혀 이어지지 않으니 따로 읽길 바람.

 

 

 △ 팬이라면 더욱 정감가는 그의 시그니처 일러스트로 시작되는 '책으로 가는 문'은 팔을 넓게 벌려 따뜻한 풍경으로 독자를 반긴다. 여느 창조 작업도 그렇겠지만 "추억"이 담겨있는 모든 것들에는 의미가 담기고 공감을 부른다.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의 대단히 섬세하고 훌륭한 그림솜씨 외에도 그의 진실됨이 묻어나는 직접 느끼고 듣고 기억하는 것들이 그림 속에 바로 티가 나서일 거다.

 

 

 

지겹게 싫어하던 그의 작품세계, 그 이유를 알고 해소하기까지


윌리엄 골딩 (William Golding, 1911-1993)의 소설 ‘파리대왕 (The Lord of the Flies, 1954)’에 등장하는 소년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나인 것 같다. 삭막함 속에서 아이의 몸으로 어른이 된 아이들이 섬 속에 갇혀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날라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2004)’?!! 화들짝 놀란다.  얼마 전 모재형과 이야기 나누다 나왔던 미야자키 하야오 (宮崎駿, 1941-) 바로 그의 움직이는 성 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원작은 영국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 (Diana Wynne Jones, 1934-2011) 의 것이다. 아, 감이 잘 안 잡혔을 테니 미리 의견을 부각시키자면 향수가 짙은 추억 속 갑자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창조에 한 여름 밤의 꿈에 빠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이다. 즉, 난 이미 꿈꾸고 있는데 거기에 무언가 엉뚱한 세상에 빠지게 만든다. 트레이싱 페이퍼 위에 또 다른 투명한 종이를 겹친 묘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는 긍정 보다 부정적이게 다가와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애니메이터로 대단하다 생각하지만 Char는 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 가지런히 놓인 '이와나미 소년문고'와 미야자키 하야오. 그가 읽은 400여권 소년문고 중 50권을 추천한 것.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 하나 이는 현대에 들어 너무 번번히 핑계처럼 쓰여진다. 개인적으로 카피나 너무 잦은 “남의 작품 재사용/재활용”은 용납되지 않는다. 영향을 받더라도, 자신의 것을 만들지 남의 정원의 꽃을 여럿 모아 자기 정원에 심으면 그만큼 흉측한 경관도 없다 느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정말 재미있게 보았어도 두 번 본 그의 애니메이션은 없었다. 그를 좋아하고 싶은데, 마치 디즈니 (Walt Disney)의 일본 판처럼 너무 많은 작품이 그의 것이 아니란 이질감이 글이라는 예술을 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불편했다. 형제 같은 그들의 그러한 “외모” 덕에 디즈니가 지브리 스튜디오 (株式会社スタジオジブリ)의 해외 수출을 담당인 것 정도는 놀라운 사실도 아니었다. 그나마 미야자키 감독이 1985년에 공동창립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고양이의 보은 (猫の恩返し, 2002)’을 무척 좋아해서 유일하게 지브라 애니메이션 중 3-4번 보았는데, 이조차 모리타 히로유키(森田宏幸)  감독의  작품에 원작은 만화가, 히이라기 아오이(柊あおい)의 바론 고양이 남작 (バロン 猫の男爵)이다.

 

 

 

 

 

 

 

전혀 다른 세상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단지 호기심을 부르기 이상으로 관심도가 “싫다”의 게이지로 넘어간 계기는 아마 이 책에도 소개되는 그의 영국의 어린이 문학 사랑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책으로 가는 문’을 읽기 전까지 이것이 단지 자신의 젊은 시절 읽은 독서목록과 어린이 문학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몰랐으니 계기를 제대로 못 적은 걸지 모르겠다. 두 살부터 보고 읽고 느끼고 지냈던 것들이 그의 손으로 관객이 그의 것이라 오해하며 보는 그것이 성인이 된 나이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 느낌이 무엇인지는 그도 책을 통해 이야기 한다.

 


마루 밑 바로우어즈’는 무대가 영국,

그것도 오래전 시대였기에 그대로는 도저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 거라면 영국인이 해야지 일본인의 몫은 아니겠지요.

107쪽 “영화화하는 타이밍” 中

 

 

 

 

 

 

 

그가 아마 더 많은 영국 어린이 동화로 작품을 만들었다면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이 소년이란 별명을 가지게 된 간접적인 계기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광팬이라 그러한 것인데, 분명 같이 극장 나들이를 가야 했을 터이니 ‘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2010)’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 터다. 메리 노턴 (Mary Norton, 1903-1992)의 ‘난쟁이가족 (The Borrowers, 1952)’은 수작인 만큼 여러 번 영화와 TV를 통해 사랑을 받았으니 당황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그것도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그림 체로 볼 때면 항상 괜한 찝찝함이 느껴졌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취향이라 당시에 생각했지만 그의 에세이집‘책으로 가는 문’을 읽은 후, 그것은 나의 작은 오해에서 온 것이라 느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평소에 ‘집이 참 좁구나’ 생각하며 생활하는 아주 평범한 공간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영상에 담아낼까’하고 궁리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107쪽 “영화화하는 타이밍” 中

 

 

 

 

아니나다를까 그가 보로워즈를 만들게 된 뒷이야기를 읽고 정말 그 공간을 그대로 베끼듯 그렸음에도 전혀 표현이 안된 건 많은 경험과 고난을 공유한다 한들 영국 집에서, 그 역사 속에서 자라지도 살아보지도 않은 데서 온 한계가 아닐까? 작가 본인도 어느 정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해서 의외였다. 그가 표면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더라도, 소인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이해한들 109쪽에 등장하듯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갑니다”의 순간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그의 작품을 보고는 오락성 말고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아쉬웠다. 그의 작품을 먼저 보고, 원작이나 영국의 여러 리메이크를 몰랐다면 달랐을까? 하고… 뭐 그렇다고 원작 보다 먼저 보는 거로 마음이 편치는 않았겠지만…

 

 

 

 

 

 

일러스트와 글의 트렌드 

 

 

 

그렇게 일러스트의 시대를 지나자 영화의 시대가 되고 텔레비전의 시대가 되고 또 다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전송할 수 있듯, 영상은 개인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 접근하는 방식은 점점 취약 해져갑니다. 진짜라고 할까, 날것 그대로를 포착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생략)


그렇기 때문에 랭의 동화집 랭의 동화집 일러스트를 읽어내려면 이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멈춰 서서 그림 구석구석까지 읽어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 130쪽, 세계로의 접근 中


 

 


예전과 달리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게 된 이 시대 속, 책이란 그것에 걸맞게 조금씩 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으고 싶은 책에 대해서는 이전에 포스트/링크 한 적 있는데 이 책도 그렇다. 보면서 더럽히면 큰일 날 거란 생각이 드는 소장용 책이라 포셀린 인형을 받은 느낌이다. 재미있게 볼 때 조차 조심조심 책답데 다룬다. 책이란 바닥에 둬서는 안 될 고귀함이 묻어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요즘 e북과 개나 소나 내는 책에 쉽게 잊은 걸 이런 예쁜 아이가 다시 알려준다. 그런 시각적인 매력을 다시 찾아갈 수록 책도 차세대에게 사랑을 받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e북으로 전략하면 큰일날 거 같다.

 

 

 

 

 

 

 

바람, 불지 않는다

 

끝에는 조금 더 소소하고 작가의 개인성향을 상상할 수 있는 수필이 가득해 읽기 편했는데, 특히 ‘바람’과 ‘아버지 (147쪽)’ 등 자신 그리고 최근 들어 팬에게도 중요해진 부분도 이야기 한다. 최근 알 수 없게 논란이 붉어졌던 '바람이 분다'를 예상할 수 있는 챕터가 144쪽 ‘불기 시작한 바람 속에서’로 등장한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바람이란 상쾌한 바람이 아닙니다.

무섭고 요란하게 지나가는 바람입니다. 죽음을 안고 독을 품은 바람입니다.

죽음을 안고 독을 품은 바람입니다. 인생을 뿌리째 뽑으려는 바랍입니다.

146쪽,‘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 中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싫어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The Wind Rises, 2013)’ 이후인 거 같다.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이 애니메이션이 최근 국내개봉을 무사히 해내며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불렀다. 결론적인 문제점은 일본과 전쟁의 입장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너무 미화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론가와 팬들의 따갑고 도를 지나치는 악성 리뷰를 보고도 큰 마음 먹고 소년과 찾은 극장의 공기는 의외로 가벼웠고, ‘바람이 분다’를 관람 후 왜 사람들이 이를 그토록 힘들어하며 봤는지 모르겠다 싶었다. 애니메이션 끝에 ‘바람이 분다’는 거였는지 아니면 소년의 지적대로 원제에 맞게 ‘바람이 안 분다’를 이야기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으나 확실한 건 “비행”, “바람”, “시대의 변화” 그리고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전쟁반대”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의 은퇴작인 ‘바람이 분다’는 하염없이 애니메이터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가진 욕심을 마음껏 풀어 작품성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팬질 (고로 오히려 골수 팬들에 대한 오마주가 된 샘)로 끝났다. 비난 포스트가 넘치고, 선플식 포스트를 올리는 블로그를 테러를 당하기 일쑤였는데, ‘책으로 가는 문’을 읽으면 후반에 이에 대한 의문이 많이 풀린다. 그가 바람이 불고 불지 않는 것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현재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수필로 적어놓았다. 

 

 

 

 

일러스트의 인상깊음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일러스트가 필요하지 않지만 있어서 '어린 왕자'처럼 새로운 생명력을 지니는 작품이다.

 

수 많은 일러스트레이터와 화가의 손을 거쳐 재탄생된 작품의 장면들 덕에 이상한 나라 앨리스 일러스트를 모으는 이가 곰돌이 푸우만큼 많지 않을까 예상한다. Char 역시 가장 사랑하는 책이 바로 영국작가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 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이다. 상상력을 자극해 그림 그리는 이들의 펜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명작이며, 인생의 모든 철학을 담은 것이다. 답을 찾지 못할 때 성경책을 찾는 이가 있지만 어려서부터 Char는 답을 모를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찾았다. 그 중 '책으로 가는 문'에 소개된 체셔캣 (The Cheshire Cat)이 갈림길에 등장하는 장면은 아이코닉하다. 천천히 사라질 때 이빨만 괴기스럽게 남기다 가는 것 역시 지금 읽어도 소름이 끼친다. 그러니 일러스트 역시 사랑 받을 수 밖에. 이 외에 동물들의 경주 장면과 화이트 래빗과 시계나... 아 너무 많구남... 넘어가자.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야기 하는 이 책의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1871)' 역시 추천도서다.

 

 

 

 

 

 

 

   트렌드 블로그를 운영하니 팝 컬처 (pop culture)로 번외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으니까 -  

팝 컬처를 만드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가 트렌드이자 아이콘인 이유

 

트렌드 블로그를 운영하며 오해를 자주 받는 부분이 "유행"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이나 알맹이뿐의 스피디한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트렌드는 시대나 순간마다의 성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꼭 대중에만 한정된 것도 아닌 인류 전체의 것이고 영원히 빛난다. 이 중 팝 컬처는 순간적일지 몰라도- 벼락스타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듯, 모든 트렌드의 뒤에는 여러 인생을 투자해 걸작을 탄생시킨 명인의 손길이 남아있다. 그것이 주목되는 순간"트렌드"를 바라보면 시대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음과 동시에 "위대한 예술"과 가장 "고귀한 스타일"을 포착할 수 있다.

 

 
오타쿠가 아니다 NERD다! 현대 핫피플은 너드, 그들의 세계정복
여기서 또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니버설한 대단함이다. 하지만 그 전에 빙~ 돌아가며 여러 다른 이야기부터 할 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계의 윌아이앰(Will.i.am)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뮤직 프로듀서 하면 윌아이앰 정도 밖에 모르겠다 하는 거처럼 애니메이터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정도 밖에 대중이 모르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건 윌아이앰은 대단한 너드다. 가장 핫한 뮤직 트렌드를 파악하는 그가 어떻게 너드인지 이해 못할 테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폐증인가 싶을 정도로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고 (ADHD 있음) 천재임과 동시에 남들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이 그와 대화를 하는 것은 보기 갑갑한 수준이니 가장 인기 많은 세계적인 가수이자 뮤직 프로듀서인 그의 약간 민망하고 어색한 사회능력은 놀랍게 사교적일 수준으로 잦게 미디어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너드 특유의 “전문성 쩌는 열정” 때문에 음악에 대해 365일 24시간 멈추지 않으니 그렇게 대중음악의 방향을 이끄는 영향력을 갖춘 것이다. 패션으로치면 안나 델로 루소 (Anna Dello Russo) 같은 것이다. 안나 델로 루소도 철저한 패션 너드다. 그녀의 괴짜스러움을 지극히 사랑하는 데는 그녀의 패션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끊임없는 사랑 때문이다. 누가 너드를 말리라, 누가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 왼쪽, 안나 델로 루소 (annadellorusso.com) / 오른쪽, 윌아이앰

 

 


결국 이들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도 별다른 언론플레이를 알지 못하고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확장기를 몸에 달고 등장한 레이디 가가나 저스틴 비버 같은 사람들과의 “개고생”과는 전혀 퀄리티가 다른 수준의 “개고생” 통한 세계정복이다. 자기가 열정을 가진 것에 대해 파고 파고 파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자아도취에서 발견되고 키워지는 취미생활과 프로패셔널한 라이프에까지 스며드는 그것.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충 짐작하기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러스트/애니메이션/비행기 너드다. 너드의 특징이란 똑똑하다 못해 천재이고, 관심사에 대한 열정이 하도 대단해 보통사람과는 도무지 어울리기 어려운 특이함이다. 우리가 미국 코미디 시리즈, ‘빅뱅이론 (The Big Bang Theory, 2007-)’으로 만난 그들 통해 대중성을 유지한 너드다.


20년전만 해도 이는 단지 특이함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 특이함이 특별함이고 특별함이 대세이기 때문에 nerd가 현재 세상에서 가장 핫한 피플이다. 오타쿠처럼 사회능력이 급격히 저하된 수준은 아니지만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자기의 취미생활을 프로패셔널한 수준으로 즐기는 (introvert) 너드. 거의 99% 동일한 성격과 성향의 오랜 반쪽 지인 모재형과 요즘 자주 이야기 나누길- 그것은 상당한 매력이라는 것. 특히 트렌드가 너드의 방향으로 틀어버린 상황에서, 변하기만 하는 패스트 트렌드에 일시적인 열광만 하는 “평민”과 달리 너드는 정해진 범위의 엄청난 지식과 시간을 얻고 투자한 신비한 외계존재 같아서 그 이색적인 매력에 현재 세대가 끌리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에 끌리면 그것에 정복되기도 쉬운지라 90년대에 우리는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트라이앵글 속에 갇혀 “오 아름다운 자여~”하고 숭배했다면 20년 지난 지금 2013에는 니콜라스 케이지, 조니뎁과 로버트 다우니 Jr. 같은 진정 어색하게 너디한데 간지 넘치는 그들의 대열에 집착증이 생겼다 (여기에 키아누 리브스가 들어간다면 좋으련만 그는 너무 A급 너드인 듯).

 

한국에서 안티가 조금 늘어났을지 몰라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엄청난 것을 해낸 작가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이 가장 걸맞는 애니메이터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나는 애니메이터가 몇 명인가? 애니메이터? 그게 뭔데? 그쪽 종사자나 오타쿠가 아닌 이상 당신은 월트 디즈니 (Walt Disney, 1901-1966)와 팀 버튼 (Tim Burton, 1958-) 정도를 알겠다. 어? 팀 버튼이 애니메이터야? 하는 사람도 있겠다. 또 만화에 관심 있다면 아마 심슨 (The Simpsons, 1989-)과 퓨처라마 (Futurama, 1999-2013)의 맷 그레이닝 (Matt Groening)은 기본으로 알 테고, 주로 ‘아메리칸 대드! (American Dad!, 2005-)’와 ‘패밀리 가이 (Family Guy, 1999-)’의 세스 맥팔레인 (Seth MacFarlane, 1973-) 그리고 스누피가 등장하는 ‘피너츠 (Peanuts, 1950-2000)’ 시리즈의 찰스 슐츠 (Charles Schulz, 1922-2000), ‘가필드 (Garfield, 1978-)’의 짐 데이비스 (Jim Davis, 1945-) 등 유명한 신문 코믹스트립 만화가 몇 명 정도는 낯익다며 손꼽아 말할 수야 있겠다. 하지만 그들을 다 합하더라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오지 않는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뭐랄까.. “브랜드”로 전략해버린 월트 디즈니를 넘어선지 오래다.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월트 디즈니는 단지 영어권이라 그런 거고, 미국인도 영국인도 세계 누구도 무식하지 않고서야 그를 모르는 사람이 적다. 외우기도 어려운 그의 이름을 상당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그 알리게 된 방식은 오르지 그의 작품뿐. 야한 비디오를 찍던지, 사회적인 이슈를 알몸에 걸치지도 않았다. 사치스럽게 돈을 뿌려 유명하지도 않고, 누구와 연애해서 알려질 필요도 없었다. 그는 단지 세계적으로 가장 이야기를 멋스럽게 해낼 수 있는 우리의 스토리텔러 할아버지다. 얼마 전 Char도 그의 은퇴작 ‘바람이 분다’를 보고 얼마나 섬세하고 훌륭한 아티스트인지 이전 작품의 화려함에 눈치 못 챘던 부분을 뒤늦게 보면서 놀랐다.

 

 

 

 

 대부분의 사진에 안 보이지만, 도서목록은 위 사진과 같이 노란 빛의 페이지다. 따뜻한 느낌이 나고 책다운 느낌이 난다.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서는 언급없는 조금은 어두운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는 ‘책으로 가는 문’을 통해 에세이에서 꽤 암울한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중 Char도 믿는 니힐리즘 (Nihilism)을 이야기 한다. 이는 사실 믿는다 하려면 테러리스트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만 단순하게 말해 그 어떤 것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꽤 괴팍한 사상으로 그가 149쪽에 언급하듯 “니힐리즘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깊은 니힐리즘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물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만, 값싼 니힐리즘은 게으름의 변명이기 일수입니다.” 이어서 그는 지금은 판타지를 만들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 (과거든 현재든)에 행복한 애니메이션은 어울리지 않음을 표현한다. 이쯤 되면 사실 도대체 왜 그의 은퇴 작 원제가 ‘바람이 불지 않는다’의 부정형인지 전혀 감이 안 잡혀 궁금하지만 어쨌든 현대의 애니메이션의 변화에 그가 전혀 언급하지 않는 데는 애니광으로 조금 슬펐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이 문학이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라 생각한다. 그리고 삶을 살 가치를 부여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동화를 쓰고 싶어하는 Char는 이를 완전히 반대한다. 어린이에게는 무엇을 보여줘도, 무엇을 읽어줘도 순수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른과 다른 시야로 관찰한다. 몸이 유연해 우리가 하지 못하는 동작을 곧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문학과 이야기 속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눈밭이 보이지만 그들은 백곰의 등이 보이고, 우리는 사랑 이야기가 보이지만 그들은 모험을 본다. 절망을 감출 필요 없이 펼치는 것이 훌륭한 동화이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 아닌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의 한계가 그곳에서 오지 않나 상상해본다. 그는 세계를 대표하는 이 시대 애니메이터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상실을 많이 담아 아이들에게 차별 없이 여러 감정을 선물한 감독치고는 “태어나길 잘했구나”라는 의미를 전해준다는 이상은 오히려 애 보다 어른에게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막말로 Char는 영국아이라 자라며 그가 이 책에 소개하는 작품을 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으며, 바로 그때 때로는 밤 늦게 거실로 내려가 음소거로 성인방송을 보곤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그랬는데, 영국은 조금만 성인소재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해도 11시 넘어서 방송해서 (한국과는 수위가 전혀 다른…;;;;) 지금 생각하면 아주 무서운 공포영화, 정말 야한 성인 드라마 그리고 심지어 섹스 다큐멘터리까지도 눈 크게 뜨고 음소거로 조용한 새벽에 보았으니 경악스럽다. 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한 자신을 붙잡고 어린 자신을 떠올리면- 전혀 후회가 없다. 기이한 새로운 세계였고, 아이의 상상력은 그것을 대단히 멋진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희망을 꺾지도 마음을 탁하게 하지도 않았다. 오르지 창의력의 순간, 확장의 기회 그리고 모험의 나날이었으니까. 

 

 

 

 

△ 어렸을 적 사랑하던 작가들의 작품을 참 많이 겹쳐 소개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목록 덕에 추억에 빠져버리지만

이야기뿐 아니라 일러스트에도 큰 영향을 받았음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The Wind in the Willows 역시 일러스트를 포함해 명작 중 명작이다.

 

 

 

‘책으로 가는 문’ 속 에세이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야기 속 그림과 일러스트의 영향력과 풍부한 상상력에 반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이미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토록 위대하고 순수한 열정을 느끼는데, 짧지만 소중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필 통해 그것을 나눠 받는 느낌이다. Char의 것보다 조금 더 빛나고, 조금 더 환상적인 그의 아름다운 추억과 비행에 동참하려 손을 뻗게 된다.

 

Char는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글쓰기 클럽을 만들었다. 일부러 만든 건 아닌데, 선생님께서 주신 “동화책 만들기” 숙제 덕에 어느새 우리는 교내 새로 만들어진 도서관을 위해 우리만의 책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책 내용을 준비하고, 파트를 나눠서 글을 완성하고, 크기 맞춰 종이를 정성스럽게 기요틴/길로틴 (guillotine)으로 자른 후 페이지마다 넣을 연관성 있고 멋진 그림을 정해 그려서 붙인 후 그 밑에 이야기를 손으로 예쁘게 적어 그림동화책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뛰어 놀고, 먹기 싫은 점심시간 샌드위치 몰래 버리는 것 밖에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 느낀 건 가족끼리 단골 타이 레스토랑에 앉아 그날 한국학교를 위해 썼던 단편 이야기를 아빠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었을 때다. 그 순간을 왜 꼭 기억하느냐 하면 한국어를 거의 몰랐던 시절이라 말이 지금보다도 훨씬 짧았는데 (상상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무척 엄하고 완고한 아빠의 진지한 “어른의 인정”을 받은 몇 안 되는 경우라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날은 그림을 그렸었다. 구름에 있는 나라에 대한 글이었는데, 구름의 나라로 가는 다리는 사람들의 꿈으로 만들어진 그런 이야기였다. 글과 함께 구름의 나라, 구름의 다리의 일러스트를 정성껏 그려 그 아래에 이야기를 적었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니 그리 놀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평소에도 무척 현실주의적인 아빠는 글 솜씨에 꽤 놀랐던 거 같다. 그제서야 이 아이는 글을 참 잘 쓴다. 짧은 한국어로도 이렇게 할 수 있음에 놀랐던 거 같다. 물론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1961)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1952)'만 보아도 문장력은 단어와 무관할 수 있음을 볼 수 있지만 여태껏 딸의 특기를 이어 생각하지 못하다 완성된 계기가 그림 때문이란 생각도 해본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망상 같은 무시무시한 상상의 나날과 존재가 독자에게 일러스트를 통해 더 가까이 다가선다.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주 눈 앞에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가끔 이 사람들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무언가에 빠져있다. 대다수는 꽤 자기중심적인데, 나쁜 느낌 보다는 그냥 아이같이 유치한 자기중심의 모습이다. 이들은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아름다운 무언가를 자기 손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 애니, '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 (犬とハサミは使いよう, 2013)' 1화 캡처

 

 

꿈꾸는 사람의 세상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세이집 ‘책으로 가는 문’을 읽으면 어린 모습의 그가 상상이 된다. 여기저기 상처 투성으로 탐험을 다녀 온 어린 그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다. 물론 그의 탐험은 평범한 소년같이 들판을 뛰어 노는 것이 아닌 애니,‘개와 가위는 쓰기 나름’의 남주 하루미 카즈히토의 대사를 생각나게 한다. 대략… “2D 아니면 안 된다”는 입체거부의 자세. 글로 적힌 것 아니면 어떠한 자극도 열정도 느껴지지 않는 주인공은 엄청난 책벌레인 것. 상상력이란 그렇게 묘하다. 그 어떠한 손에 잡히는 것보다 위대해서 요즘은 비주얼에 치우치는 시대가 된 탓에 눈에 보여야 하고 그 이상은 기운을 투자하기 귀찮다는 게 참 괴로운 현실이다.

 

 

 

                                                             ▲ 천계영, 'DVD (2003)' 1권 中

 


한국 만화가 천계영의 ‘DVD (부제: 땀과 비누와 디디의 이야기)(2003)’라는 작품을 보았다면 여주인공 심땀이 남들에게는 안 보이는 망상 같은 것이 보이는 캐릭터임을 기억할 테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남자친구 머리 위로 포도넝쿨이 자라 포도가 열리고, 지하철은 정거장이 아닌 인도로 향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멋지고 사랑스러워서 몇 번이고 다시 읽고 그림을 관찰하며 구하기도 어려운 책 소년에게 완결까지 구해달라 하여 소장 중이다 (참고로 ‘DVD’ 정도면 꽤 이상적인 모방 아닌 영감 아닌가?). 꿈꾸는 사람들의 세상은 꼭 땀의 것처럼 환상적이다.

 

 

 

 

 

 

 

물론 이상하게 그리면 시시 해져버리는 면도 있습니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한눈에 들어오므로, 그림 작가의 역량에 따라 상상의 폭이 제한되니까요.

이야기만 있을 때 오히려 이미지가 뭉게뭉게 부풀어 오르기도 합니다.

 

123쪽, 그려야 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것

 

 

 


그는 일러스트의 한정적인 면도 일러스트에 대한 극찬 중에 해낸다. 지금에 와서는 일러스트도 상상도 날개를 펼치기만 할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중 Char도 좋아하는 작가 어슐러 K. 르 귄 (Ursula K. Le Guin, 1929-)의 '어스시의 마법사 (A Wizard of Earthsea, 1968)'를 예로 든다.

그렇다. 그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ゲド戰記: Tales From Earthsea, 2006)'. 무슨 난리.

이 경우 책에서 이야기 하는 용과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용의 느낌이 많이 다름을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124쪽에 이야기 하듯이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의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 1943)'에 일러스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conculsion 

 

 ‘책으로 가는 문’을 읽기 전에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왜 뛰어난 스토리텔러임에도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욕심보다 남의 이야기만 빌려 작품을 만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의 상상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원작자의 바람을 빌려 돌리는 바람개비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이것이 왜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이와나미 소년문고 50권과 그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입사 후 소년문고 빼곡히 찬 책장을 만난 일화까지... 그의 열정과 영감은 이 글에서 왔고 비행을 꿈꾸는 그의 독서목록만큼 자신의 세상 보다 멋진 작가들의 옆집 나라로 몰래 타임리프 하길 즐기는 소년 같은 그라는 것을 배웠다. 비록 상당수를 어린 시절 보다 성인이 된 후 만났지만 그의 순수함은 어린아이 못지 않고 어쩌면 열정은 지금도 스무 살 청년 보다 훨씬 큰 것 같다. 에세이를 통해 수시로 언급된다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감독으로, 애니메이터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건 분명 자신의 작품을 만들 때 보다 자신이 동경하고 사랑하는 작품을 재탄생 시키는데 있다. 훌륭한 문학을 알아보고 그것을 꽃피우는 출판사 에디터처럼, 본래의 글쟁이임에도 그 이전 남의 글을 찾아나서 갈고 닦는 것은 진정한 예술인이자 창조의 자세인 것이다. 고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를 단단히 오해했었구나 스스로 알고 나름대로 큰 위안을 받았다. 이 꽃이 마음에 들어! 하고 디즈니에서 하듯 애니메이터와 작가의 창의력 낭비하며 꺾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위대한 작품들에 오마주 (hommage)를 그린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의 에세이집을 통해 느껴진 것은 작품에서 미처 놓쳤던 아동문학에 대한 막대한 사랑이었다.

 

 

△ '마녀 배달부 키키 (魔女の宅急便: Kiki's Delivery Service, 1989)' 일러스트

 

 

 이 글의 원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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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간평가단 13기 (Essay)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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