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 - 역사를 뒤집은 게임 체인저
폴 록하트 지음, 이수영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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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우리가 전쟁 초반에 크게 밀리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겪어보지 못한 무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조총, 그리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의 탱크가 전쟁 분위기를 압도했다. 조선은 총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긴 했으나 그렇게 위력이 클 줄 몰라서 엄청난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조총에 대한 연구를 하고 관련한 포수들을 양성한 결과 나선 정벌에서 나름 효과를 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서 탱크의 위력에 놀란 우리 나라는 그 후로 꾸준히 포와 관련한 능력을 키워서 자주포나 탱크는 북한을 넘어서는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전쟁에 이기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일단 강력한 전투력으로 상대방을 괴멸시켜야 한다. 그렇게 굴복시켜야 전쟁 자체를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력한 전투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이 강해야 하나. 바로 화력이다. 여기에는 잘 단련된 군인이나 정신력 등도 포함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무기의 힘이다.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 때 적과 비슷한 무기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면 초반에 그렇게 허무하게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구한말 일제의 침략 때도 근본적인 국방력의 한계가 있었지만 당시 일제의 무기에 조선의 무기가 형편 없이 초라했기에 결국 국권을 잃게 되었다.


이 책은 그만큼 중요한 무기의 힘, 화력에 대한 역사다. 주로 서양의 무기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서양 화력의 역사라고 하겠다. 책은 화력이 전투나 전쟁의 향방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시기부터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군사의 숫자가 많은 편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적은 군사라도 우월한 무기로 상대를 이기는 것이 진정한 화력이라는 점에서 책은 1300년대부터 시작한다. 전체를 네개의 시기로 나누어서 각 시기별로 어떤 화력이 발전하고 그것이 역사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에서 발명한 화약이 유럽에 전해졌지만 화약을 이용한 무기가 전투의 향방을 바꿀 만한 시기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 화약 무기가 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봄바드' 라고 알려진 거대한 공성포의 등장이었다. 1377년 프랑스의 필리프 2세가 오드루이크의 잉글랜드령 성을 공략하면서 이 대포를 사용했는데 그전까지 미미했던 공성포의 효용이 이 승리에서 전쟁의향방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해졌다. 우수한 공성포를 사용했느냐에 따라서 지상전의 승자가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강력한 대포를 제작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고 이것은 결국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국가만이 만들 수 있었기에 점점 중앙 집권적 통일 국가가 등장했고 이후 근대 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1부에서는 이렇듯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화약 무기의 위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각종 무기들이 발달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1부에서 300년 간의 상대적으로 느린 화력의 발달을 다루었는데 2부 1800년대부터 4부 1945년까지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었던 각 지역이 통일 국가가 되고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화력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화력 자체가 강력한 경제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관련한 산업이 발달하고 부강한 국가는 더욱 강해졌다. 게다가 민족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화력과 더불어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팽창 정책으로 이어지고 대외 침략과 더불어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1870년부터 1980년까지 유럽의 대규모 군비 경쟁은 서구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더 치열했고 더 위험했다. 더 치명적이고 더 살상적인 무기가 개발되고 있었고 포퓰리즘적 열정인 민족주의와 결부가 되어서 두려움은 더욱 늘어났다. 변화하는 전쟁의 성격에서 이미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육해군의 역할이 변하고 있었고 일반 군인들의 모습도 달라졌다. 산업화 시대는 더 많은 장비와 보급품을 공급하면서 전 시대의 군인과 달라진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은 그전에 일어난 모든 전쟁과 다른 새로운 차원의 전쟁이었다. 동원된 인원의 숫자도 수 만이나 수 십만이 아니라 수 백만에 달했고 그만큼 사상자도 컸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제2차 세계 대전을 낳았고 이 대전은 인류 전쟁사의 총합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대재앙이었고 궁극의 무기인 핵폭탄의 등장은 인류 멸망의 공포로 이어졌다.


책은 서구 화력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 전쟁이 어떤 무기와 화력으로 전개가 되는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포가 중요성을 이야기 했지만 개인 소화기도 자세히 이야기 하고 있다. 머스킷, 총검, 야포로 시작해서 고체탄과 폭발탄으로 이어지는 여러 무기도 소개하고 있고 전차, 전함, 항공기 등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여러 화력들을 시대별로 잘 소개하고 그 의미도 잘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욕심의 동물이고 그것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전쟁의 승리 요인인 화력의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고급스런 저작물이다. 많지는 않지만 적절하게 자료도 제시되고 있고 이 정도 내용이면 서양 화력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잘 쓰여 졌다. 전쟁사는 물론 무기사에 관심 있는 사람,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만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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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걸 배드 걸 스토리콜렉터 106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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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텀은 최근 추리 스릴러 장르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가이다. 내용이 재미있는 것은 당연한데 글의 짜임새가 좋다. 사실 재미있게 쓰는 작가는 많지만 글의 완성도도 같이 좋은 작가는 많지 않다. 어떤 사건에 우연이 자주 일어나던지 이야기 완급 조절이 이상하던지 심리 묘사가 세련되지 못하던가 등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마이클 로버텀은 재미와 작품성을 함께 갖춘 작품을 펴내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다.


이 작가의 대표작은 '조 올로클린' 시리즈다. 심리학자가 사건의 해결에 중심되는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특이하게 느껴진 이야기다. 외국에서는 경찰의 한 일원으로 참여하는데 우리로 치면 프로파일러 비슷할 것 같다. 아무튼 색다른 직업에서 나오는 호기심이 이내 흡입력 강한 내용으로 빠져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심리학자다. 작가가 새롭게 시작하는 시리즈인데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다. 


주인공의 직업이나 역할이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 조 올로클린은 그 자신이 건강상의 큰 문제를 안고 있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주요한 이야기로 작용하는데 사이러스 헤이븐은 어린 시절 집안의 큰 비극을 겪은 인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 육체와 정신이라는 대비를 이루면서 두 시리즈 모두 같으면서도 다른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데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하나는 유망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 조디 시핸의 살인 사건이고 또 하나는 베일에 쌓인 이비 코맥이라는 소녀에 대한 상담이다.


먼저 조디 시핸은 빼어난 외모와 실력으로 이미 지역에서는 유명 인사다. 그런 아이가 죽은 채로 발견되다니. 여러 정황으로 봐서 살인 당한 것이 틀림없는데 경찰의 조사를 통해서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된다. 경찰은 그냥 그를 살인자로 규정 짓고 사건을 끝내려 하지만 사이러스는 다른 진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건이 결말되어지는 것을 막고 조금씩 진실을 밝혀내지만 용의자는 더 늘어날 뿐이다. 누가 범인인가.


한편 이비 코맥은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받다가 죽은 남자의 집에서 나중에야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에게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르고 기록조차 없다. 다만 진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말썽을 부려서 소년원에 장기 구금 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사이러스가 이비의 후견인으로 보호하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이비는 진정 사회에 적응을 하게 될 것인가.


두 개의 축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사이러스가 모두 개입하면서 서로 묘하게 맛물려서 돌아간다. 거기에 이비가 본의 아니게 힘을 보태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이비가 공동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조디 시핸 사건은 해결하면 끝나지만 이비 코맥은 이어질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이비는 서서히 사이러스와 가까와지고 어쩌면 공동 운명체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신비에 쌓인 이비의 이야기가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나면 또 다른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조금씩 마음을 안정시키는 단계이고 시간이 지나면 사이러스 이비 콤비를 볼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작가 특유의 강력한 흡입력이 이번 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단순한 사건 같았던 조디 시핸 사건이 사실은 복잡한 인간 관계가 얽혀서 여러 상황으로 전개가 되는데 그것을 짜임새 있고 세밀하게 잘 그려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올 이비라는 캐릭터가 거칠면서도 순수한 마음이 잘 표현되면서 서서히 마음이 문을 여는 과정을 역시 자연스럽게 잘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나온 사이러스 헤이븐 시리즈는 기존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가 잘 구축이 되었다. 주인공의 캐릭터도 잘 묘사가 되고 있고 사건 이야기도 색다르지만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비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잘 표현해서 다음 편이 궁금해지게 만든 것도 좋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책이라서 추천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책이 다 그렇듯이 이 책도 읽다가 중간에 못 끊는다. 늦은 밤에 읽으면 안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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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24 - 병자호란의 최후 편 : 항전이냐 항복이냐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24
설민석.스토리박스 지음, 정현희 그림, 강석화 감수 / 단꿈아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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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방대한 양으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데 설민석작가의 한국사 시리즈는 쉽고도 풍부한 설명과 흥미로운 그림으로 역사를 더 쉽고도 재미있게 하는 책입니다. 이번에는 병자호란인데 어떻게 일어나고 흘러갔는지 객관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좋게 쓰여져 있어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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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사람들 (증보판) - 101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지음, 이진모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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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의 개념 중에서 '성선설'과 '성악설' 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착하게 태어난다는 것이 성선설이고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난다는 것이 성악설이다. 천사 같은 아기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 성악설을 주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성선설을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촉법 소년 사건에서 보듯이 어리다고 마냥 착한 것이 아니라 어른 못지 않게 사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


사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처신을 잘 한다기 보다는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정도 이상으로 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한없이 착하고 다정한 사람인데 자기와 덜 친하면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 양심이 있나 없나 할 정도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제법 볼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진짜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악한 사람을 욕하기는 오히려 쉽다. 그러나 평소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특정한 순간에만 악마의 모습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 맞는가 나한테는 그 나쁜 면을 숨겼을까. 문제는 숨긴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일 경우다. 평소 주위에 친절하다고 소문난 사람이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때 두 모습 모두 그 사람의 본 모습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평범한 악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 많은 학살이 있어왔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유대인 대량 집단 학살은 없었다. 사실 유럽에서 크리스트교가 확립이 된 이후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민족이라는 오명을 쓴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 강도가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일 뿐 유대인을 멸시하는 감정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데 홀로코스트도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러나 유대인 혐오 사상이 오랫동안 있어왔다고 해서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에는 의문이 따른다. 분명 유대인 옹호자보다는 혐오자가 많았을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별 다른 감정이 없었을 것이다. 


나치의 히틀러가 홀로코스트의 결정권자이지만 그가 수 백만의 유대인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명확한 그의 의도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더 구체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확실한 정책이 되었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실행한 사람들은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학살에 동참하게 되었을까. 이 책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이 집단 학살에 어떻게 가담하고 그들의 실제 마음은 어떠했는지 실체적으로 규명하는 내용이다.


책은 주로 중년의 노동자 출신인 101예비 경찰 대대 대원 210명에 대한 전후 취조 기록을 발굴하여 심층 분석한 연구물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어쩌면 선량하면서도 성실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때로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고 슬픈 일에 눈물 흘리기도 하고 불의에 항의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민주 시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 학살이라는 그 끔찍한 일에 큰 저항 없이 큰 고민 없이 작전을 수행했다. 


문제는 이들이 나치의 세뇌 작업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고 히틀러에 특별히 열광하지도 않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반나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전을 위해서 특별히 훈련 받고 뽑은 사람들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예비 경찰 대대 인원들을 그대로 동원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작전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는데도 소수의 사람들만 안 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이 임무를 대원들이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니다. 갑자기 임무를 하달 하고 싫으면 앞에 나오라고 하니 어리둥절해서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일 정상적인 양심을 갖고 있었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잔혹한 행위에 거부를 했어야 했다. 뒤에 거부한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수가 이 작업에 충실히 임했다는 사실이다. 책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학살 작전을 수행한 '전문 살인자'가 되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들여다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의외로 보통 사람들은 권위에 복종하거나 체제에 순응하거나 자신의 직무에 충실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도 경찰이라는 직무에 충실한 나머지 자신의 일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설사 잘못 된 것이라고 느껴도 조직에서 분리될까 혹은 겁쟁이로 몰릴까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복되는 행위에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평범한 악은 이 101 대대에서만 보였던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수용된 수용소 근처 평범한 주민들에게도 보였다. 주민들은 수용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이들을 상대로 상업적인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도망친 유대인들을 밀고 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고 결국 유대인들이 죽음을 맞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침묵하고 방관했다.


유대인의 학살에 참여한 독일인들이나 폴란드인들이 특별히 잔혹한 인종인가? 아니다. 특별히 더 잔학한 인종이란 없다. 그들이나 우리나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더 무서운 사실이다. 우리도 저런 상황이 되면 과연 양심을 지킬 수 있을까. 그들의 평범함이나 우리의 평범함이나 비슷한데 우리는 살인을 거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악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어 와서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상 밖으로 더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상상 외의 잔혹성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정말 이 정도 까지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리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 정책을 세웠어도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동조와 침묵이 있었기에 결국 대학살이 실제로 일어 난 것이다.


이런 책 참 소중하다. 이렇게 심층 분석해서 이야기하니 설득력 있다. 그리고 관련되는 반박과 논쟁에 대해서 수정, 보완하고 있어서 더 신뢰가 간다. 초판본에 비해서 주장의 논거를 더 선명하게 해서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한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아직도 규명할 일이 많다. 더 많은 자료가 공개되어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겠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엄청난 일을 히틀러에게만 책임 지우는 것은 너무 속 편한 일이다. 그 일에는 수 많은 사람의 협조와 방관이 있었다. 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일상의 악'은 언제라도 또 일어날 수 있고 어느 나라 어느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깨워야 한다. 성악설은 인간이 본래 악한 존재이기에 끊임 없이 성찰하고 법과 규범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인데 불합리하고 불의한 것에는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양심이고 진짜 민주 시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야 우리 속에 있을 수도 있는 평범한 악을 방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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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가 재미있어지는 39가지 길 이야기 세계사가 재미있어지는 이야기
일본박학클럽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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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길' 위에서 이루어졌다! 뭔가 그럴싸하지만 사실 집 앞을 나서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길이니까 모든 역사가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당연한 뜻으로 사용한 것이기보다는 수 많은 길 중에서 그 길을 지나서 일어난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잘 이야기 해주고 있다.


역사적인 일이 일어난 공간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기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구에 3.1만세 운동길이라고 있는데 당시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모든 만세 행렬의 길 중에서 이 길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도심으로 모이기 위해 지났던 길이라서다.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안고 몰래 지나갔던 길이 하나의 역사적인 공간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역사적인 일이 일어난 공간 중에서 훗날에도 이름이 남겨질 만한 길의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크게 고대, 중세, 근세, 근 현대의 시대 구분을 가지고 각 시대의 사실들 중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던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첫번째로 인류 최초의 위대한 선택의 길인 출아프리카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고 그 호기심은 인간의 뇌 용량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도구를 만들면서 점점 더 더 나은 삶을 위한 욕망의 결과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세계사에 등장한 최초의 길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현대 유럽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로마 문화인데 로마의 번영은 길 자체를 만든 것에 있다. 지중해의 패권을 잡고 있던 페니키아의 카르타고와 치열한 전쟁을 통해서 결국 지중해를 장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까지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는데 그 통치가 공고해진 것은 총 연장 30만킬로미터에 이르는 로마 가도에 있다. 로마와 각 지역을 잇는 거미줄 같은 통로를 만들어서 제국내에서 통행은 물론 상업도 발달하게 되어서 그것이 제국이 탄탄하게 발전하게 되는 길이 되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을 능가하는 국가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은 나라가 나왔다. 바로 몽골 제국이다. 몽골은 인류 최대의 판도를 이룩했고 또 그것이 최후였다. 그 전과 그 이후 몽골에 맞먹는 나라는 없었다. 몽골에 의한 평화를 뜻하는 '팍스 몽골리카'에 의해서 동서 문화가 활발히 교류했고 특히 유라시아의 실크로드는 안정적인 무역로가 되었다. 이 것은 서양에서 동방에 대한 관심을 높이게 했고 훗날 '신항로 개척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밖에 서양에 제지법이 전해지는 계기가 된 탈라스 전투, 동아시아 우위 시대를 과시한 중구 명나라 정화의 대항해, 신항로 개척시대의 선구자가 된 포르투갈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초기의 분열을 딛고 진정한 합중국의 초석이 된 대륙횡단철도는 그 자체가 역사적이 길이 되었다.


책은 총 동서양의 총 39가지 길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역사적 사실들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각 길에 해당하는 지도와 사진, 연표가 적절하게 실려 있어서 본문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세계사는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다.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세계가 형성되었나를 알기 위해서 중요한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은 좋을 것 같은데 거기에 부합하는 책이다. 부담스럽지 않게 굵직 굵직한 큰 역사적 사실을 재미있게 잘 소개하는 책이어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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