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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 톰의 집에 어서 오세요 ㅣ 판타스틱 픽션 그레이 Gray 5
벤 엘튼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고전 미스터리 장르중에서 후더닛 소설이란것이 있다. 이른바 '범인찾기'를 위주로 한 미스터리물인데 오래된 소설 기법중에 하나다. 이 기법은 흔한것같지만 사실 꽤 어려운 방법이다. 내용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야하고 주어진 단서들의 유효성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도록 적절히 배치해야한다. 그래야 읽는 독자가 손에 땀을 쥐고 자신도 추리에 뛰어들게 하게 때문이다. 밤면 단서가 너무 일찍 풀린다던가 한쪽에 몰린다면 범인이 일찍 추리됨으로 책의 재미가 반감된다. 그래서 널리 알려진 방법이지만 그만큼 정교하게 설계해야하는 미스터리기이도 하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잘 만들어진 후더닛 소설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내용면에서 좀더 장치를 했는데 그것은 '엿보기'라는 것이다. 엿본다는건 인간에게 주어진 호기심을 극대화시킨것 아닌가. 그런 밑바닥에 깔린 인간 심리를 이용해서 책의 내용이 이어진다.
배경은 리얼리티 TV프로그램 '하우스 어레스트'. 10명의 남녀가 감금당해서 생활하면서 인기투표를 통해서 최후에 살아남는자가 우승상금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출연자들은 전부 젊고 싱싱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시청자들은 그렇게 잘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기' 하면서 대리 흥분을 느끼는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지배자는 제작진이다. 어차피 하루 24시간 모두의 방송 분량을 내보낼수는 없는것이고 편집을 하게 마련인데 이 편집이 그야말로 '악마의 편집'이다. 이 편집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천사로, 혹은 나쁜놈으로 만들수도 있는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수 많은 사람들은 열광하게 되고.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승을 위해서 그야말로 물불 가리지 않는다. 엿보기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서 성적인 행동과 말도 서슴치 않는다. 물론 그 결과로 시청률은 치솟게 되고 결국에 시청자들은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잘 나아가던 와중에 살인이 일어난다. 진짜 살인! 출연자중에 한명이 죽었는데 범인은 나머지 출연자들중에서 한명인건 불보듯 뻔한 사실. 그런데 누가 살인을 저질렀을까. 살인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계속되고 이제는 범인이 누구인가 범인을 잡는 내용으로 가속도가 붙는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사람에 대한 예의나 인격도 없이 오로지 자극적인 내용과 흥미 위주로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경찰이 투입되는데 방송되지 않는 미방송된 테이프를 꼼꼼히 살피면서 각 출연자들에 대해서 알아나가는데 방송에서는 알수 없었던 개개인의 성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과연 살인자는 누구일까.
책을 보면 한참 붐을 일으켰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요즘엔 안 그렇지만 한때는 우후죽순처럼 많았다. 물론 공중파보단 케이블쪽이었지만.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 시시콜콜 알고 싶어하는 대중이 많은 이 시대에 직접 영상으로 사생활을 볼수있다는건 얼마나 큰가. 실제로 그런건지 대본에 의한 충실한 재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한때 나름 재미나게 봤었었다. 남의 사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던 나도 재미나게 봤을 정도면 호기심 많은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그런 관심을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이용해서 수익을 얻으려고 만든게 그런 프로그램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밑바닥 욕망을 잘 이용한거라고나 할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범인찾기 미스터리물이지만 엿보기라는 장치를 통해서 좀더 자극적이고 호기심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시간적인 구성이나 각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것등에서 보이는 전체적인 짜임새가 괜찮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봤었다면 책의 내용이 눈에 그려지는 면도 있을것이다. 책이 2000년도 초반에 쓰여져서 그때 출간되었더라면 좀더 사실적이었겠지만 이미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더 사실적으로 느껴질수도 있겠다. 반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밀실 사건 같이 좀더 고전적으로 추리에만 집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엿보기라는 장치가 오히려 걸리적거린다 느낄수도 있겠고.
어찌보면 미디어가 보여주는것이 다 진실은 아니고 오히려 진실을 조작할수도 있다는걸 깨닫게 하는 면도 있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론 재미나게 잘 쓰여진 범인찾기 스릴러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