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텀 스쿨 어페어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2
토머스 H. 쿡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빠른것이 다 좋은건 아니다. 때론 느린것이 더 깊게 울림을 줄때도 많다. 빠르기도하면서 느리기도 한 그 균형을 잘 맞춘다면 참 멋질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빠른 전개와 치밀하고도 사실적인 묘사등으로 흡입력있게 쓴 스릴러가 재미있기는 하다. 하지만 반대로 느린 전개와 뭔가 알듯말듯한 이야기구조가 주는 묘미도 잘만 음미하면 더 큰 재미로 다가갈수 있다.

 

기존에 보던 재미난 미스터리 소설과는 달리 이 책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아주 악랄하거나 괴이한 사건도 있지 않다. 빠른 전개도 아니도 특이한 소재도 아니다. 몇장 읽다보면 그냥 놓아버릴꺼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데 한장 읽다가 두장 읽고 세장 읽다가 그냥 읽게 된다. 뭐지? 하면서 다음장이 궁금해져서 그런것도 아닌 읽어야할 의무감이 있는것도 아닌, 그냥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책.

채텀 스쿨 어페어는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에 미스터리 요소가 가미된듯한 구조랄까.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인 헨리는 아버지가 교장인 채텀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다. 따분하고 뭔가 답답한 삶을 살고 있던 그에게 새로 미술선생님으로 온 채닝선생님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접한거나 마찬가지였다. 세계 여러곳을 여행했던 채닝선생님의 이야기는 그에게 꿈과 자유에 관한 희망을 키워주었고 그녀의 지도로 헨리의 미술 실력도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명의 존재 리드 선생님. 넒은 세상으로 나가가기 위한 보트 제작을 도우면서 그와도 가까와진다. 좋아하는 두 선생님이 사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란걸 알게되면서 그 둘의 사랑이 꽃피우길 빌게 되는 헨리. 하지만 뜻밖의 일이 생겨나고 모두에게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

 

배경인 채텀이란 지역은 밝고 명랑한 곳은 아닌거 같다. 숲도 있고 연못도 많은곳인데 그 중에서 중심이 되는 검은 연못은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라 할수 있다. 뭔가 을씨년스러우면서 어두운듯한 분위기. 군데군데 따뜻한 기운이 있긴 하지만 뭔가 답답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어우러지는 느낌을 들게 한다.

 

1920년대의 미국이 무대인데 그 당시의 사회상을 예견해본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보수적인 분위기였을것이다. 그런 가운데 채닝 선생님과 리드 선생님의 사랑이 과연 좋은 결실을 맺을수 있었을까. 헨리의 시각에서 서술된 이야기지만 결국 그 일에서 중점적인 요소는 헨리 자신이었다. 어린 소년의 치기어린 욕망과 순수가 큰 파멸로 이끌줄은 그 자신도 몰랐을것이다.

 

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헨리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어렸을때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 어떻게 성장해갔는지 그리고 그의 행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의 등장인물인 채텀 스쿨의 교장인 헨리의 아버지, 채닝 선생님, 리드 선생님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평면적인 글 속에서 참으로 입체적으로 총체를 잘 그려내고 있다.

 

끝부분에 가서 반전이 나오긴 한데 아주 강력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일이었는데 그 부분을 통해서 이 책이 미스터리물이었나고 뒤늣게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미스터리물이라기보다는 미스터리라는 수단을 통해서 멜로를 풀어낸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가를 다루는 면에서는 추리극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는 멜로고 헨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다룬면에서는 성장이야기라고 할수도 있겠다.

 

장르의 규정이 어떻든 어렵지 않은 글 속에서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모습을 참 서정적으로 잘 표현한 고품격 소설인건 틀림없는 것 같다. 책의 지은이인 '토머스 H. 쿡'특유의 문체가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났단 생각이 든다. 노년에 접어든 한 남자의 일생중 가장 중요했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게 했던 그 시절을 참 처연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잘 쓴 수작이었다.

 

빠른 전개의 책들에 비해선 느린 이야기였지만 그속에서 격정적이면서도 담담하면서도 긴장감있는 요소가 두루 숨어있는 작품이어서 참 쉽게도 어렵게도 읽었던 책이다. 한번 읽기보다는 두번 세번 보면 그 속에 숨은 또다른 묘미를 느낄수 있을듯한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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