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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컨피덴셜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1
제임스 엘로이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장르소설은 흔히 재미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정통소설의 입장에서 푸대접을 받곤한다. 사실 아무리 고전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그 가치도 떨어질텐데 단지 재미있는 분야의 소설이라고 해서 그 가치를 폄하당한다는것은 너무 불합리한게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그 푸대접의 정도가 강한데 다양한 장르소설이 나오는 미국에서조차 그 작품성을 인정받는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조차도 인정할수밖에 없는 수작중의 하나이다. 가히 클래식한 작품이라고나 할까.
책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배경은 1950년대의 미국 LA. 폭력과 살인이 만연한 이 도시에서 시민의 안녕을 수호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3명의 경찰이 나온다. 아주 선명하고 각기 개성이 넘치는, 섞이지 않을듯한 이 사나이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내용이다.
에드먼드 엑슬리. 경찰출신의 자주성가한 도시의 성공한 사업가를 아버지를 둔 사람. 머리가 영리하고 상황판단도 뛰어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약삭빠른 모습도 보이는 인물. 성탄절 폭행사건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을때 동료를 밀고한 댓가로 승진하지만 동료들의 질시를 받게 된다. 편안한 삶이 보장되었지만 거친 형사과에서의 삶을 희망하는거보면 뭔가 정의심도 있다고 해야하나.
웬들 화이트. 머리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인물. 엑슬리와는 전혀 반대의 스타일인데 과거 유년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이라는 끔찍한 기억때문에 경찰이 되서도 가정폭력에 집착하게 된다. 성탄절 폭행사건에 가담했다는것이 엑슬리에 의해 상부에 보고되어서 좌천된거때문에 엑슬리에 대해서 원한을 품게 된다. 나름의 원칙이 있는 면도 보인다.
잭 빈센즈. 마약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형사. 사건 해결 능력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면서 자신의 해결 능력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도 아는 경찰국의 스타 형사다. 능구렁이 같은면도 있고 적당한 처세술도 있지만 형사로서의 강인함도 보이는 그는 어쩌면 엑슬리와 화이트의 중간정도같은 느낌도 든다.
별로 어울리지 않을듯한 이 세명의 형사가 어떤 사건의 중심에 휘말리게 되면서 사건의 진실에 함께 나아가게 되는것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이성이 감성으로, 감성이 이성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한 미움과 믿음이 교차하는 과정속에서 사건을 해결해야하는 어려움에 쳐하게 된다. 책에서는 그들의 정의가 위태위태하면서도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리 특이한 줄거리는 아니다. 50년대라면 있을법한 경찰내의 비리와 부패 등을 배경삼아 일어나는 경찰들의 사건해결이란게 전부다. 하지만 막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전후 미국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어쩌면 좀 건조하고 딱딱하게 느낄수도 있는 단백하고 절제된 문체로 당시의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색깔로 치면 회색빛이라고 해야할까. 뭔가 심심하게 그려낸듯하지만 읽다보면 감칠맛이 나게 자꾸 다음장을 넘기게 하는것이 이 책의 매력포인트다. 인물들과 일어난 사건들을 객관적이면서 실제로 본듯하게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고 700쪽에 가까운 긴 내용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균형도 훌륭하다.
사실 이 작품을 접한것은 오래전 영화로 나왔을때 였다. 그 당시엔 그냥 근사한 경찰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그 원작 소설을 읽으니 그때의 기분이 새롭게 살아하는거 같다. 영화도 잘 만들어진거 같긴 하지만 역시 원작을 읽어야 그 속에 품은 작가의 역량을 더 잘 느낄수 있는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끔 영화에서 느꼈던 뭔가 음울하고 끈적하면서 재즈적인 기분이 느껴졌었는데 다시 영화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범죄소설이라는 장르적인 특성의 책이긴 하지만 충분히 새로운 고전에 들만하다고 여겨진다. 내용의 서사성이나 긴호흡속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완성도는 정통 문학의 견지에서 봐도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이 든다. 긴 내용에 좀 복잡한 플롯이긴 하지만 내용 자체를 쉽게 잘 쓰여졌고 은근한 몰입도가 있는 책이라서 주말에 편하게 쭈욱 읽으면 좋을 대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