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알고있던 상식들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있다.

임지현이라는 역사학자인데 그 주장의 과격성은 논리를 따지게 하기 이전에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그가 다시 책을 냈는데 그동안의 주장들에 대한 묶음 형식의 책이다.

이름하여 적대적 공범자들.

적대적 공범자라? 공범이라고 하면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데 함께 참여한다는

뜻인데 적대적이라면 서로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방법은 같이 한다는뜻인가?

이 이율배반적인 말은 이 책을 읽어보면서 그 뜻을 알게된다.

여기서는 부시와 빈라덴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부시와 빈라덴은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결국 그들 서로서로가 그들의 존재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는 것이다.

부시는 빈라덴의 테러에 대항하기위해 존재하고 빈라덴은 부시의 압박에 저항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적대적이지만 서로 공존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적대적인 공범자들이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펄쩍 뛸 일이지만 그 발상이 참 신선하다.

그 주장이 크게 나쁘게 안 들릴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부시와 빈라덴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구도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는 측면이 있다는

건 충분히 납득할만한 주장이다.

이런 구도를 우리나라에서도 찾을수있는것이 바로 박정희와 김일성이다.

그들의 정권 자체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잡아먹을듯하지만 결국

그 대결 구도 자체가 정권의 존재이유가 된것이다.

비록 박정희가 그 내부의 모순으로 먼저 무너지긴 했지만 냉전의 사고속에서

그 틀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웠을것이다.

그의 또다른 도발적인 주장인 민족주의는 반역이라는 주장도 여기서 볼수있다.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민족주의 자체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있는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나 중국의 패권주의에 비하면 우리는 그리 나쁘지 않은 민족주의

를 가지고 있다는것이 말도 안된다는 주장인것이다.

개방적인 민족주의던 공화주의적인 민족주의던 결국 국민을 억압하고 국민의 자유

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사실 민족주의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지는데 예컨데 일본처럼 국가주의적인

민족주의가 되면 다른나라를 침략하는 침략주의가 되는것이고 중국처럼 중화사상이

바탕이된 민족주의가되면 패권주의가 되는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식민지시절 저항의 의미로 사용되는 민족주의도 있을수 있다.

근데 그 저항적인 민족주의가 나중에 침략주의나 패권주의적인 민족주의가 될수가

있다는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요컨데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된 이념으로 민족주의는 안된다는것이다.

그의 주장을 다 지지하는건 아니지만 우리의 민족주의라고 해서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 그리 선한 민족주의는 아니란것에 대해선 동감이다.

우리 내면에 민족주의적인 편견이 얼마나 많은가.

동남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도 결국 민족주의적인 면에서 생길수있는것

이다.

우리 한민족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나갈것이란 그런 주장

도 결국 팽창주의적인 민족주의의 한 발로일것이다.

민족주의 그 자체의 가치중립성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민족주의란 어쩌면 존재하

지 않는것일지도 모른다.


지은이의 주장중에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받은것은 바로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지난 고구려 역사논쟁에서 왜 고구려가 우리역사라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그것은 변경사로 봐야하지 국가적인 면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옛날 고구려는 그냥 고구려였지 지금의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그 주장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사실 옛날 고구려,백제, 신라가 쟁패할때 그들에게 민족의식이 있었을까?

그들에게 서로는 그저 섬멸해야할 적국일뿐이었다.

신라가 대동강이남만 통일해서 아쉬워하고 분개하는건 오늘날의 시각일뿐이다.

그때는 그저 살아남기위해서 죽고 죽일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가 어떻게 우리의 역사가 될수있느냐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중국이 바보라고 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딴은 맞다. 그런데 그럼 어쩌라고? 딴놈들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만 그냥 변경사

라고 하면서 방치하자고?

흘러간 역사는 당대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역사 그 자체가 현실에서 하나의 판정요소가 되는것이다.

찬란한 역사를 가졌다는것은 어느 국가의 위상과 관련되고 그 국가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경제적인 면과도 연결될수있는것이다.

바로 어제까지의 역사를 내꺼가 아닌 남꺼라고 해도 별일없이 지낼 그런 문제가

아닌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그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지은이의 주장은 이상주의적

인 비현실적 논리인거같다.

유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런 논리도 동아시아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거 같다.

그러나 변경사로서의 고구려사나 발해사를 본다는 논리는 역사의 그 실체를 보는

한 방법으로서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된다.

다른 곁가지를 제외하고 그 역사의 본체를 바로 본다는 의미에서 이런 방법이 효용

성이 있을꺼 같다.


지은이의 주장들은 대부분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화를 내고 외면할것이 아니라 그 논리적인 면을 한번 인내심을 갖고 생각

해본다면 아주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란것을 알게될것이다.

세상에 100%의 진실이란것은 없다.

역사를 보는 눈도 다양하게 마련이다. 지은이의 주장도 그런 다양한 눈중에 하나

인데 그동안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참신한 발상이 담겨있다.

자본주의는 초기와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단에 반발해

서 나타난것이 공산주의다.

공산주의에 자극받아서 결국 자본주의는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것이다.

그와같이 임지현의 이 도발적 문제제기는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단순한

단색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색을 볼수있게 하는 하나의 계기로 삼을수 있을것이다.

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른면으로 생각해보는거 자체가 더 나은 발견의

밑거름이 될수 있음이다.


지은이의 주장에 대해서 때론 불쾌하고 화나기도 했으나 그 시도 자체가 가치있는

것이라서 그런 감정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나 이 지은이의 글쓰기는 첫 페이지

부터 끝 페이지까지 무척 화가나고 불쾌하고 분노가 치민다.

어떻게 우리나라 인문학자들은 하나같이 글을 이렇게 못쓰는가?

대체 쉬운 글쓰기란것이 그렇게 어려운것인가 말이다.

사실 이책은 보통 인문서적처럼 그리 쉽게 쓰여진것이 아니다.

솔직히 읽으면서 대충 넘어간 부분도 많았다.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다른사람들

한테 펼치려고 하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지 정말 욕이 나올 지경이다.

비록 이 책이 한 주제에 대해서 글을 따로 쓴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 기고한 글

들을 모아서 여러 주제별로 새롭게 묶은것이라고해도 독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결여된 글같다.

어렵게 쓰는 글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발심이 있는 나로선 지은이의 일부 주장에

대한 불쾌감보다도 어려운 글쓰기에 대한 분노심이 더했던것이 사실이다.

'적대적 공범자들'에 대한 연구보다 '쉬운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더 했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한것인가?


책은 출판사의 이미지대로 잘 만들어진거 같다.

제본도 튼실하게 잘되어있고 글자도 큼직한게 보기가 좋다.

오자나 탈자도 거의 없는거 같다. 단지 이런종류의 책이 대부분 그러하듯

비싼 책값이 유감스럽긴 하다.

그리고 책뒤에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의 말들이 잠깐씩 나오는데 그 말을 한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괄호안에 적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름만 적어놓으면 그 사람이 학자인지 일반시민인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썩 유쾌하지는 않았던 책읽기였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기회가 되어서 유익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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