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의 이틀 밤
문지혁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읽는 한국작가의 단편집이다. 그동안 장편 소설만 읽다가 보니 조금 지루함도 있었는데 색다른 단편집을 읽다보니 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별과, 추억과, 사랑에 관한 여러가지 일들을 담은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각 이야기들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것은 역시 추억과 사랑이다. 그것도 좀 애틋함이 녹아있는.  특이하게도 결말부분이 묘하게 끝나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배경은 주로 미국과 한국인데 미국의 지명은 뭐 안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익숙한 지명이 나와서 더 편하게 읽은거 같다. 주로 서울이지만 알만한 지명도 나오고 특정 기업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나와서 색다른 맛이 난다. 

첫번째 작품인 '사자와의 이틀밤'을 읽고나서 든 첫번째 생각은, '와 나도 저런 편한 여자친구있었으면 좋겠다'. 책 내용에선 눈물많은 면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이 많으면서도 쿨한 면이 있는 성격이다. 주인공과 그녀가 뭔가 이루어질듯도 하지만 묘한 느낌을 남기면서 끝난다.  

'안녕, 열일곱'은 도발적인 작품이다. 아직 미성년인 여고생과 어른인 과외선생과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내용인데 보통 연상되는 단아하고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이 나온다. 현실이 적절히 가미된 탓에 결말의 슬픔도 그려려니 하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17살 여고생에게 닥쳤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뻗어나갈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페이스맨'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성이 '우'씨고 이름이 '주인'인 한 청년이 한국 최초의 우주인 선발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뭔가 우울한듯한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설정 자체의 발랄함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SF단편을 썼던 지은이의 이력이 나타난 작품. 

'마이 퍼니 밸런타인'도 웃으면서 읽은 이야기다. 읽으면서 남자 주인공에게 든 생각은 '이 등신아!' 였다. 어리석은 여자의 모습도 보이지만 역시 멍청한 남자의 모습도 보인다. 요즘 남자들은 책 내용보다는 더 교활하게 일처리할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서울의 익숙한 지명이 나와서 현실감이 있었던 이야기. 

'온 더 댄스 플로어'는 세월이 빠름을 느끼게 했다. 요즘의 1년은 옛날의 10년과 맞먹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거 같다. 아주 오래된 세월도 아닌데 정말 오래된것같은 DDR에 관한 추억을 끄집어낸 이야기. ddr에 관한 자세한 용어설명은 좀 사족같기도 하고. 아무리 군대에 있었다고 해도 세상이 바뀐걸 그렇게 모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욕 좀 먹어도 싸다 싸. 

'흔적의 도시'는 책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애매한 이야기였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국내에서도 심심치않게 볼수있는 일...개인적으로 성과 관련없이 다른 사람을 억지로 해하려는 그 행위 자체를 아주 증오하기에 그냥 그 부분을 읽는 것 자체로 짜증이 났다. 어떻게 전개가 될지 궁금했는데 극전개가 뭐가 미스터리하게 진행되는듯하더니만 끝이 난다. 밥먹는데 한숫가락만 먹은듯한 느낌? 좀 찜찜했다. 

'그랜드 센트럴의 연인'은 인연이란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이야기다. 극중에 나오는 '공군 소위 존 블래퍼드와 메이넬의 이야기'는 뻔할 뻔자 유치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구나 그런 로망을 갖고 있기에 긴 생명력으로 오랫동안 비슷하게 이야기되는것일터. 이 이야기도 그런 로망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인데 뭐 인연이란게 쉽게 그리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현실적인 면도 느끼게 했다. 

마지막 작품인 '골목길'도 어떻게 보면 나도 모르는 나의 '흠모자'가 어디에 있지 않을까하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모티브로 삼은 글이 아닐까싶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구조가 재미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고백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의 시작이거나 사랑의 종말이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종류의 단편집을 접해본적이 잘 없어서 뭔가 허전한 느낌도 들기도 한 책이다. 주로 장편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결말부분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아마 이 책의 지은이의 글쓰기 방식인거 같다. 뭔가 묘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끝말이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이색적인 서정집이다. 크게 부담되지 않게 편하게 읽을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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