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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1 - 봄.여름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참 오랫만에 연락이 된 고등학교 동기랑 전화통화를 했다. 졸업후 10년이 넘었지만 이미 우리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티격태격 아이처럼 농담하면서 이야기 했었다. 둘다 밖에서는 사회적 지위도 있어서 어떨땐 근엄하게 보이기도 하는 신분이지만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한테는 그런 격식따윈 필요없었는 것이다. 하긴 자주 보는 초등학교 동창은 볼때마다 초딩처럼 장난도 치고 그런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친구와는 결코 느낄수 없는 감정의 사이니 그럴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경험이 있을듯.
그런 어린시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일깨워주는 책이 바로 '소년시대'이다. 책의 장르 구분이 미스터리, 환상소설쪽으로 되어있길래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야말로 마법같은 시절이라서 그것도 맞다는 생각도 들긴 든다. 책의 주인공인 '코리'의 어린 소년시절을 배경으로 삼은 내용인데 참으로 상상력이 풍부했던 시절이 아니겠는가. 공포 영화를 보고나서는 그것이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동네의 호수에는 괴물이 산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순수의 시절...그 아름답고 아련한 시절이 배경이다.
1960년대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 '제버'. 아버지의 우유배달일을 종종 돕는 주인공 코리는 천상 아이다.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이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일에 호기심을 갖는 호기심쟁이이기도 하고 가끔 말썽도 피우는 전형적인 아이이다. 어느날 아버지와 우유배달을 하다가 동네 호수로 돌진한 차와 마주치게 된다. 차속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든 아버지.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처참하게 살인당해서 수갑까지 채워진 상태였고 결국 시신을 구하지 못한다. 그 이후 아버지는 끔찍한 시신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코리는 사건 현장에서 주운 녹색 깃털의 존재로 살인자가 가까운곳에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그것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가 아닐까 했지만 초반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면서 수면아래로 숨어버리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인물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전히 남아있던 흑인백인차별의 잔재들...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좀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등의 모습도 보인다.
소년 코리에게는 살고 있는 마을이 작다곤 해도 바라보는 전체의 세상이다. 이 마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을에는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다 살고 있다. 다행히 지혜로운 부모덕분에 코리는 세상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연습을 할수 있다. 그리고 의리있고 착한 친구들의 존재 덕분에 밝은 마음을 가질수 있다.
1인칭 소설이라서 좀 단조로운 면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흡입력을 돋보이게 하는것은 그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코리다. 부모의 유산과 그 스스로의 노력이 있겠지만 참으로 영혼이 맑은 아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밝게 보고 사람은 누구나 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상상력이 더 발달한거 같기도 하다. 이 소년의 매력덕분에 이야기가 더 사랑스러워지는거 같다.
이야기는 4계절을 기준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거치면서 점점 성장하는 소년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점점 자라나는 성장소설이라고 할수 있겠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사실은 그것이 따로 떨어진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초반에 나왔던 살인사건도 결국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모티브로 작용하면서 결말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외에도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에 나온 내용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코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은 2권짜리로 분량이 만만치 않다. 자극적이지도 시각적인 그런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빨리 읽힌다. 뭐지? 뭐지? 하면서 술술 읽게 된다. 때로는 긴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흐뭇하게 웃으면서 기분좋게 읽을수 있는 책이랄까. 최근에 읽은 책중에서 가장 편안하게 읽었을 정도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
여름이라서 책읽기가 어려운가? 그럼 이 책을 읽어보시라. 호수속 괴물, 별똥별, 백년을 넘게 사는 살아있는 마귀가 그 더위를 잠시 잊게 할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아름답고 소중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에 아련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