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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 제국 - 헤로도토스,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0년 2월
평점 :
역사라는 학문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 다닐때도 국사 과목은 거의 100점을 받았었고 지금까지도 역사관련글이나 기사, 방송은 먼저 눈길이 가는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전문적인 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대략적인 역사는 아는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역사에 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어서 역사적인 단절이 있는것도 있지만 과거에 수많은 전란때문에 편찬된 수많은 사서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역사상에 물음표가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역사의 왜곡과 함께 역사학 자체의 퇴보가 이루어져서 아직까지도 그 영향하에 있다는 점이 때론 답답하기도 하다. 그런 답답함을 풀어주곤 했던것이 이른바 강단학자가 아닌 재야학자들의 저술들이었다. 무엇인가 틀에박힌 소리만 하는 강단쪽 학자들에 비해서 재야사학자들은 새롭고도 신선한, 틀에박히지 않고 넓게 보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귀가 솔깃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역사라는 학문에 좀더 가까이다가가니까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많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역사관련 글에서는 좀 비판적으로 보는편이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새로 나온 이 책, 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샤머니즘의 맥락에서 바라본 고대사 뭐 이런 내용인줄 알았다.하지만 그보다 더 '쇼킹'한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책이었다. 책 띠지에 있는 내용처럼 기존에 배웠던 우리나라 역사는 그야말로 허구고 새로운 역사가 있다는것이었다. 그것도 세계사 전체가.
일단 처음에는 재미있게 읽힌다. 지은이가 처음에 말했듯이 역사란것은 승자의 기록이지 않는가. 처음에 승리한 사람보다 나중에 승리한 사람의 역사가 기록되어지는건 당연한 일이고 어찌보면 우리는 그 앞에 삭제된 역사를 복원하는것에 흥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사에는 일정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역사학이 '과학소설'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결국 허구적인 이야기인 소설이 아니란 말이다.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것도 물론 아니고.
그런데 이책은 새로운 것을 '창작'한듯이 생각될 정도다. 물론 이런저런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것이라서 완전 창작은 아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것이 역사학인데 이 책은 상상력이 너무나 많이 개입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처음에 중요한 증거로 나오는 '환단고기'에서 바로 막힌다. 한때 광풍이 불었다고까지 할수있는 환단고기라는 역사책은 대체적으로 '위서' 즉, 거짓역사책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거기에 나오는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교차해서 증언해줄 다른 역사책도 우리나라던 외국이던 없고 관련 유물도 없으며 그런책이 조선시대가 아닌 일제시대에 간행이 되었다는 점등 때문이다. 어릴때 이책을 접했을때는 일제의 학맥을 이은 기존 역사학계에 대한 반발로 크게 반겼지만 그렇다고 위서로 평가받는 책을 단지 반발심에서 받들순 없단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책을 중요한 자료로 사용해서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놀랍게도 고대 유럽의 역사를 잇고 있다. 그래서 부제가 각기 서양과 중국,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와 사마천, 김부식이 숨긴 역사라고 한다. 도발적인 주장이긴 하나 그 연결고리가 글쎄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역사와는 너무나 다른 주장을 해서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들을 전문사학자가 아니라서 일일이 뭐가 옳고 그른지 반박하긴 어렵지만 알렉산더 대왕과 진시황제가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하는것에는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우리 역사인 고조선의 판도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요동과 한국 북부가 아니라 현재의 터키쪽이란 주장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
지은이는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사서의 글과 문장을 자료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런 자료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자료들의 해석이 문제인것이다. 어떤 글자에서 그것이 발음되는것과 함축된 뜻이 환단고기의 어떤 글과 딱 들어맞는다는 식이다. 그리고 어떤 문장에서 '행간'을 밝혀내서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일단 그렇게 맞춰가는것 자체가 참으로 대단한 글재주다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실제 100%인 역사도 아니고 우리가 모르고 묻힌 역사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물인것이라 왜곡되고 비틀어진 자료도 많다는것도 잘 안다. 그래서 역사글에대한 태도는 비교적 자유스럽기도 비판스럽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것은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를 정도였다.
참 열심히 책을 썼다는것은 인정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을 왔다갔다하면서 비교하고 분석한 그 열정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그 열정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주장이 최소한 '그럴싸하게' 느껴지게하는데는 실패했다. 실제 있는 자료를 토대로 주장하고 있으나 그 해석이 너무 모호하고 자의적인데다가 상상력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무언가 얻었다거나 새로운 것을 알게되었다는 느낌이나 지은이의 주장에 공감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집중해서 읽었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설렁설렁 읽을 정도였으니.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어서 이 책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논하기는 어려울수도 있다. 물론 진짜로 이 책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일수도 있고. 어쩌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상상력이 너무나 빈곤하고 눈앞의 사실에만 급급하며 안주하는 기성사학에 대한 자극일지도 모른다. 기성사학의 입장에서 이런 주장의 책이 큰 호응을 끈다면 그들의 입지 자체가 흔들릴수 있기에 그들에 대한 반성과 자극의 의미가 된다면 그 자체로도 성과가 있다고 할수있지 않을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