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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옛날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엔 다르다. 10년이 아니라 1년만 지나도 세상이 확확확 바뀌는게 느껴진다.
이른바 IT산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고 거기에 맞춰 사람들의 삶도 변해가다보니깐 1년이란 세월이 요즘엔 아주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는 시간인것이다.
그전에는 없던 책 출판형태가 나타나는 것도 그런 일환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적은 글들이, 종이에 인쇄되어 책으로 나오는 출판의 형태로 나오는게 그 하나이다.
어떻게보면 남에게 보이는 '일기'를 쓰는 셈인데 블로그라는 글쓰는 공간이 큰 촉매제가 되었다고 볼수있다.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지식을 그냥 풀어놓거나,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소박한 목적에서 시작했을수도 있는 것들이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면서 나름 막중한 임무를 띄게 되는 경우도 많다.
여러 분야의 많은 글잘쓰는 고수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사진을 바탕으로 책을 낸 가운데 여기 또 한명의 글쓰기 스타가 책을 냈으니 이번엔 인문학자다.
'로쟈'라는 필명을 쓰는 러시아문학전공자라고 하는데 지은이 스스로의 말에 의하면 '하는
일에 비해서 좀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인문학쪽의 책을 곧잘 읽기는 해도 블로그를 일일이 찾아갈만큼 열성적이진 않은 나도 언뜻 들어본 닉넴이니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다.
사실 지은이가 주로 서식하면서 글을 풀어놓는다는 인터넷 서점에 나도 블로그를 갖고 있긴 해도 서평을 저장한다는 의미로만 활용할뿐, 소통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기에 다른 블로그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처음 방문을 해봤는데 유명인이 된 이유를 알았다. 보기 좋게 정렬된 여러 분야의 논리정연한 글들을 보니 과연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걸로 끝이었다. 눈 아프게 인터넷으로 긴 글을 보는게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런 책은 참 반갑다. 물론 올린 글을 전부 책으로 낸 것도 아니고 책으로 펴내면서 고친 부분도 있지만 일단 편한 자세로 내가 읽고 싶은 부분을 눈 아픔 없이 읽을수있다는게 좋았던 것이다.
나와는 다른, 전문적인 인문학자의 책읽기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기대를 한건 좋았지만 책을 펴는 순간 살짝 한숨이 나왔다. 그 옛날 책만 봐도 한숨이 나왔던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풀어도 풀어도 다 못풀 수학문제로 가득찼던 그 책을 보고 느꼈던 느낌이 이 책에서도 느낀 이유는 두꺼운 책에 글자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많은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분권을 하지 않고 한권에 넣은 그 뜻은 알겠으나 기본적으로 머리 아팠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책은 크게 5가지 부분으로 나눈다. 지은이가 러시아 문학 전공자답게 러시아 문학과 책읽기, 문체등에 관한 이야기가 한 꼭지를 이루고 두번째로는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그리고 철학, 지젝, 번역에 관한 이야기가 뒤를 잇는 형식으로 책 내용을 이루고 있다.
사실 내용 자체는 크게 기억에 남는것이 없는게 지은이가 언급한 책들중에 읽어본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읽었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읽었다고 할수는 없지 않은가.
지젝같은 경우에는 이름만 들어본 경우라서 잘 읽히지도 않았다. 제일 편하게 읽었던 부분은 영화를 이야기한 예술쪽이다. 거기서 이야기한 영화를 거의 다 본 탓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인문학자가 생각했던 부분을 비교하면서 읽으니 흥미로왔다.
이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번역에 관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번역부분이 문제가 많은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러시아어 전공자로써 이른바 외국어를 다루는 입장에서 번역을 잘해야한다는 그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로만 지식을 축적할수는 없기에 외국인이 쓴 책들이 적극 들어와야하는데 그만큼 번역이 중요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것이 문제일것이다. 지은이같이 번역에 대해서 깐깐한 사람이 많아져야 우리나라의 번역 문학도 좋아지려나.
글은 전체적으로 그리 쉽게도, 그리 어렵게도 쓰여지진 않았다. 인문학에 관한 기본 소양이 없다면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는 내용인데 찬찬히 읽는다면 나름의 재미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많은 내용을 한권에 넣으려고 한건지 아니면 편집상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활자로 가득찬 책을 보는게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글자가 빽빽한 책을 잘 안 읽은 탓이려니 하긴 해도 선뜻 완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다.
어쨌던 이런 책은 많이 나와야한다. 아무리 첨단과학의 기술이긴 해도 그것을 만들고 발현하는것은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의 밑바탕에는 인문지리적인 것이 기본이 되어야 제대로된 것이 나올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멀어진 인문학을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누구나 인문학을 편하게 읊을수 있을때까지는 지은이에게 인문학 전파의 소임을 부탁할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