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미로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작품인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에서 그야말로 혜성같이 나타나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아리아나 플랭클린이 이번엔 주인공인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이었던 아델리아를 피비린내 나는 왕가의 살인현장으로 보냈다.
더 날카로와지고 더 치밀해졌으면서도 더 현명해진 강한 여인 아델리아를 말이다.
 
때는 중세 영국. 헨리 2세라는 강력한 왕에 의해 안정되던 시절. 교회의 힘에도 굴하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그 왕에게도 무척이나 사랑하는 여인인 로저먼드 클리퍼드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식 왕비가 아니란게 불행이라면 불행이랄까. 대장부같던 왕비의 강한 질시를 받던 그 어느날 갑작스럽게 죽고 만다.
병이 아닌 독살. 그녀를 질투하던 왕비에게 혐의가 돌아가게 되고 만일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나라는 또다시 내전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분노한 왕이 행동을 취하기전에 진실을 밝혀내야하는 여의사 아델리아.
하지만 이 살인사건은 단순한 치정살인이 아닌 궁정내부의 암투와 왕가의 권력투쟁이 도사리고 있었는데..아델리아의 현명함이 어떻게 발휘될것인지.
 
사실 서양 중세라면 암흑의 시대이다. 기독교가 모든것을 지배하던 시절, 모든것이 거기에 맞춰서 돌아가고 종교의 부패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을 위한 종교가 아닌
종교를 위해서 인간이 살고 있던 시절에 여자의 존재는 그야말로 하찮게 여겨졌었다.
그런 시절에 여자가, 그것도 남자들이나 하는 의술을 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담보로 하는 행동이었다. 그 시절에는 의학적인 지식을 가진 여자는 마녀로 취급되어 죽음을 당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예외가 있었으니 아델리아가 공부했던 살레리노 의과대학이었다. 거기는 여자도 능력이 있다면 남자처럼 공부할수 있게 했던 참으로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 대학은 교회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그 시절 교회에 공공연히 반항을 했다고 볼수도 있었다. 그 대학이 있던 시칠리아와는 달리 교회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영국에서 그녀가 종횡무진 활약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남자도 쉽게 할수 없는 것을 갖가지 제약을 받던 여성이 했다는 것이 더 기분좋게 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면 단순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현대처럼 복잡한 계산에 의한 살인이 일어난것도 아니고 범인이 아주 천재적이어서 도무지 범인의 윤곽을 잡을수도 없는 그런것도 아니다. 수사를 하는데도 그리 복잡한 기구를 쓰지 않는것처럼 살인을 하는데도 어쩌면 단순하다고 할수가 있을것이다. 하지만 단순하고 평범한 것이 때로는 더욱더 복잡할수가 있다. 단순한 매듭이 제대로만 묶으면 풀기 어려운것처럼 말이다.
지은이는 수백년전 중세때의 이 살인사건을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내용을 이어가면서 치밀하고 세밀한 구성으로 마치 현재에 벌어진 일들인것처럼 시대를 인식하지 못할정도로 재미나게 이야기를 쓰고 있다.
 
12세기라는 까마득한 시대지만 지은이의 철저한 자료 조사로 그 시절이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에 와 닿는 묘사와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그 시절 왕과 왕궁의 생활,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삶들이 쉽게 이해되게 사건의 추적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기분좋게 읽을수 있게 하는것은 잘 구축된 각 캐릭터들이다.
주인공인 여검시관 아델리아는 가녀린 여자같이 보이지만 유능하고 민첩하며 끈기있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냉정하게 보이는거 같으면서도 따뜻하면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어서 참 가깝게 느껴졌다.
아델리아 대신에 명목상 의사로 나오는 만수르 같은 경우도 어떤 형상이 그려질정도로 용기있으면서도 정감있는 인물로 잘 그려졌다.
그밖에 늙은 아낙이지만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질사, 전작에서는 왕의 세금징수관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주교로 나와서 아델리아를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로울리의 모습도 눈에 그리듯 잘 묘사되었다. 여러 인물들의 이런 캐릭터 묘사가 잘 형상화되었기에 이 책의 내용이 더욱더 빛이 나는게 아닌가싶다.
 
전작에 비해서 더 강렬한 모습으로 나타난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인 여검시관 아델리아. 500여쪽에 달하는 긴 분량이지만 그녀의 활약이 종횡무진 펼쳐지는 내용에 읽는내내 행복했다. 지은이가 지금 한창 아델리아 씨리즈의 3부를 집필중이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그 내용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12세기 영국 왕가와 결합된 역사추리스릴러 소설인 이 책, 멋지고 강하며 매력적인 이 여인을 접하는 행운을 빨리 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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