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위대하지 않을뿐.

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제목에서부터 상당히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느낌이 났었는데 실제 내용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충격적이라고 할수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성한 종교의 온갖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애써 믿으려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비종교인은 역시 종교를 믿지 않는걸 잘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의 지은이는 무신론자이다. 무신론의 입장에서 종교를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위대한 신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가? 아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겉으로보기에는 기독교,카톨릭,이슬람교에 대한 강력한 공격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하느님,하나님,알라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임을 알수 있다.
요컨데 이 책은 신을 못믿겠다가 아니라 인간을 못믿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사실 성경이란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긴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전해진것이 아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남긴 글 중에서 이른바 신성이 뚜렷하다고 할수 있는 글들을 엮어서 만든것이 성경이다. 이른바 정경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에 끼지 못한것을 외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경이라고 해서 전부 배척하는것은 아니다. 아깝게 정경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무시할수 없는 내용의 글도 있기 때문이다.이럴때 이 성경이란것을 하나님이 직접 정하셨는가? 아니다. 바로 인간이 정한것이다. 그 인간이 바로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사실 성경이나 코란의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인가. 이웃을 사랑하고 올바르게 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멋대로 해석하고 경전으로 인간을 통제할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몇년전에 동남아에 쓰나미가 닥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적이 있다. 그때 국내의 영향력있는 어떤 목사는 그 지역이 이슬람교가 살기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어찌 그런 사람이 목사라고 할수 있을까? 하나님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기독교인들을 없앤다고 한다면 다른 지역은 왜 가만히 놔둘까? 바로 옆에 수십억이 사는 중국이나 인도는 왜 별 탈이 없을까? 아니 무엇보다, 비록 믿는 방식은 달라도 이슬람교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신인데 한쪽은 죽이고 한쪽은 살리신단 말인가?
목회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사랑과 긍휼이라는 측면에서도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소리들이다. 그가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는가?
이런것만 봐도 종교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는 사람의 문제인것을 알수있다.

서양 중세는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그때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삼아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억압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었는가? 그때는 종교라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타락한 카톨릭에 대항해서 나타난게 개신교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개신교도 어떻게 변했갔는지 생각해보면 종교의 참뜻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는것을 알수있다.

종교인들, 특히 카톨릭이나 개신교쪽의 교인들이 보면 참으로 불편하고 불쾌해할 책일것이다.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괴로울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이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은 위대한 신에 비해서 절대로 위대하지 않은, 결함 많은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그 불완전한 존재가 만든 것이기에 책의 내용에서와같은 무수한 결함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으로 믿음을 져버리고 무신론자로 돌아선다고? 그건 아니올씨오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분명 결함이 많긴 하지만 반대로 좋은점도 많은 것을 이 책은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주제 자체가 종교를 비난하는 것이기에 당연하게 안 좋은 소리만 적어놨지만 종교의 순기능도 아주 많은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종교가 사람을 생명을 죽이고 건강을 헤치고 착하지 않게 한다고 하지만 그 반대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고 건강하게 하며 착하게 살수 있도록 인도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의 주장만 수용할수는 없는 것이다.
결함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로 믿음을 져버리기에는 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실수도 많이하고 탐욕스럽다고 해도 보통 동물과 다른것은, 그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더 나은 생각과 삶의 태도를 보일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고 종교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상식이 늘면 될것이고 해당되는 종교인에게는 신이 뜻한바와 다르게 행동하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는 기회로 삼는것이 좋을듯하다.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무신론의 유력한 근거로 삼기에는 글쎄? 라는 생각이 든다.

책 자체는 재미나게 읽었다. 책이 두꺼워서 좀 지루하지 않을까했는데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는 재미도 있었다. 지은이는 신에게 도전하는것이 아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광기를 부리는 인간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기에 즐겁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군데 군데 좀 억지스럽고 독선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 불편하긴 했지만 어떡하겠는가. 지은이도 결국 불완전한 한 인간일 뿐이니. 인간과 종교에 대한 좀더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던 책이었다.
물론, 믿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