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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라 ㅣ 기담문학 고딕총서 8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모파상은 단편소설로 유명하다. 세계문학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에서 모파상의 작품은 빠지지 않아서 그의 작품을 한편이라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것이다. 단편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모파상의 작품이 그리 유명하게 된것은 작품성때문일것이다. 당시 살던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등을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면서 인간의 내면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고 아직까지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파상의 작품들중에서 공포스럽고 괴기스런 이야기들을 한곳에 모아서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으니 바로 고딕총서시리즈의 '오를라'이다.
사실 모파상은 단편소설을 300여편이나 썼는데 그 전체가 다 우리나라에 소개된건 아니고 유명작품 위주로 알려져서 중복출간된것이 많았다.그래서 그의 소설 성향이 대부분 비슷할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이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바로 공포스러우면서도 기괴한 기담소설들도 많이 썼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신경질환이 있어서 그런 병때문에 보통 사람보다 좀더 독특한 성품을 갖게 되었을것이고 그런 바탕에서 인간의 내면에 있는 공포와 두려움을 소설로 표현해냈을것이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의 사실주의 기풍의 유산도 충실히 반영해서 모파상 특유의 프랑스식 공포소설을 창조해냈다. 이 책은 그런 소설들중에 특히 빼어난 소설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책 제목인 오를라를 비롯해서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는데 괴물이나 귀신이 나오거나 피가 낭자한 그런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것은 오히려 덜 무서울것이다. 가장 무서운것이 사람이라는 말도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모파상의 소설에는 인간 내면의 공포와 기괴스러움, 두려움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내용에 빠지다보면 소설속의 사람이 진짜 미친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런 기괴스러운 일들이 일어난것인지 스스로 의문이 생기고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첫번째 작품인 '박제된 손'은 비교적 짧은편인데 강렬한 인상은 다른 작품에 못지 않다. 시체의 일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다가 미쳐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나쁜 사람의 육체라고 해도 그것을 좋지 않은 의도로 대하게 된다면 즉 망자의 시신을 훼손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된것이 아닌가 한다.
표제작인 '오를라'는 단편치고는 꽤 긴 작품인데 이 작품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미친것인지 진실인지 아리송하게 만들 정도로 구조가 탄탄하고 짜임새가 있다. 인간의 환각에 대해서 그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누구나 그런 환각속에서 자신만이 믿고 싶은것을 믿고 보고싶은 것을 보려고 하는 인간 심리를 잘 포착한 이야기 같았다. 읽다가 보면 인기 미국 드라마였던 엑스파일의 외계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인간이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본다는것일까에 대한 모파상의 생각이 담긴 작품같았다.맨 뒤에는 이 단편을 일기형식으로 개작한 '오를라 2판'도 수록되었는데 점점 현실에서 벗어나는 주인공의 심리를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서 엿보는것도 흥미로왔다.
'마드무아젤 코코트'는 그리 복잡한 구조는 아니지만 은근하게 소름이 끼치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코코트라는 암컷개를 기르다가 그개를 죽이고 나서 겪게되는 일을 그린 작품인데 누구를 끔찍히, 죽도록 좋아하는 스토커같은 모습이 코코트에서 느꼈다면 너무 확장된 느낌인가. 정이란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에서 주인공과 코코트가 만나게 되는 장면은 정말이지 소름이 쫙 돋아날 정도로 은근한 공포심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산장'은 깊은 산속에 고립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같았다. 말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런 사람도 없이 혼자만 있다면 어떤일이 일어날껀가에 대한 좋은 예가 될수 있을것이다. 역시 사람은 사람속에서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어쩌면 스스로의 공포심과 두려움에 의해서 미칠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자살'은 어떤 특별한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것이 없어도 자살을 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추억의 동물이기도 해서 과거의 추억들이 현재에 이루어지지 않을때 우울증에 이르게 되고 그 우울증이 크게 되면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인데 실제로 현대사회에서의 자살중에서도 그런 원인이 많다고 한다. 우울증이란것이 인간 누구에게나 내면 깊숙한 어느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한순간 방심했다가는 금방이라도 뛰쳐나와서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할꺼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무덤'은 인간의 소유욕과 광기가 어디까지 나타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 작품이었다. 한 유명한 변호사가 무덤을 파헤친 죄로 기소가 되었는데 그 무덤의 주인은 변호사가 아주 깊이 사랑한 여자였던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사랑한 그가 그녀의 체취라도 느끼기 위해서 무덤을 파헤쳐서 썩은 내가 나는 그 시체를 안았다는 것인데 뭐 두고볼꺼도 없이 '미쳤다'고 볼수 있을것이다. 이성으로는 생각할수 없는 행동인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보고싶고 얼마나 사랑했으면 저럴까하는 생각에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스스로를 변호하는 변호사의 모습에서 인간이 가진 광기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에라클리위스 글로스 박사'는 다른 작품들과는 좀 분위기가 다른 작품이었다. 어떻게보면 담백하면서 냉정한 기조를 유지하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이 이야기는 유머스럽기도 하고 풍자적이기도 하면서 판타지 적인 면도 보였다. 윤회설이 주된 모티브로 작용하는데 인간의 절대적인 진리라는것이 과연 존재하는것인가에 대한 모파상의 의문이 반영된 작품이 아닌가 싶다.소설 후반부에 정신 병원에 갖힌 주인공이 다른 정신병환자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포섭해서 새로운 종교의 지도자처럼 되는 장면에선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신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속여서 금품을 갈취하는 사이비종교가 언뜻 생각날 정도였다.
마지막인 '어린아이'는 어떻게보면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한 여인이 타고난 성욕으로 인해서 순간의 실수로 아기를 가지게 되어 그 아기를 죽이게 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당시의 사회상으로 봤을때는 그 여인이 그렇게 아기를 가지게 되는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을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껀데 그런 시대적인 배경아래 어쩌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낳은 친자식을 죽이는 비정을 보이고 있다. 요즘같으면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당시의 그런 불합리한 사회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억누르는 분위기를 비판했다고 볼수 있을것이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엄마의 모습과 달리 자신이 살기 위해 아이를 죽이는 모습에서 인간이 가진 잔인함도 묘사하고 있다고 볼수도 있는 작품이다.
모파상이 쓴 많은 단편 소설중에서 일부분만 본거지만 그의 작품성을 엿볼수있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선악의 본성과 두려움, 공포심, 절망감 등을 깔끔하고도 인상깊게 잘 묘사를 했다. 이 소설들에서 보인 여러가지 인간의 마음들이 어쩌면 조금씩 우리들 마음속에도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책은 참 인상깊게 잘 만들어졌다.시리즈인만큼 전체적인 장정의 통일성도 잘 유지하고 있고 번역이나 제본 상태도 좋다. 특히 옮긴이가 모파상과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뒷부분에 수록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계의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을 모아 펴내는 고딕총서의 한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 초기의 시리즈에 비해서 한결 총서 성격에 맞는 작품 선정이 되고 있는거 같다. 초기작은 좀 심심하고 무난한 감이 있었는데 최근작들은 좀더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은거 같다. 앞으로 나올 시리즈는 또 어떤 기괴함을 들고 올것인지 자못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