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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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아름답고 망가진 걸 좋아해요. 당신처럼. 나도 조금 망가졌고.'

-'칼' 674쪽-

책이 끝날 무렵에 나온 저 대사는 정말이지 이 책을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우면서도 망가졌지만 정말 깊이 있는 이야기.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 정말 더 이상 나올 이야기가 없을 듯 한데도 또 나온다. 새로운 이야기도 있지만 그 속에서 기존의 이야기가 함께 스며있다. 그래도 중간에서 읽는다고 해도 읽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작품 하나 하나가 독립적인 완성도를 보인다. 작가 '요 네스뵈' 는 이제는 거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주인공인 해리 홀레는 노르웨이 오슬로의 강력반 형사다. 최악의 연쇄 살인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유능한 인물.아 그런데 이 남자 참 인생 파란만장하다. 팔자가 기구하다고나 할까. 살인 사건을 많이 겪는 형사들에게 가정 생활이 어려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긴 하지만 해리만한 삶을 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경찰에 비해서 사건을 보는 뛰어난 눈을 가지긴 했지만 유독 생각치도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전작들에서 그는 끔찍하지만 단서 하나 없는 힘든 사건들을 해결한다. 그러나 그 과정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기도 하고 몸이 다치기도 한다. 이 정도면 뭐 우리식으로 굿이라도 한 판 해야할 정도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도 세상을 외면하고 도피하고 술에 빠지고 그렇게 살다가도 끝내 또 돌아온다. 사건에는 냉철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랑이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이다보니 그를 사랑하는 여인들도 많다. 그러니 그 점은 그에게 힘이자 약점이다. 그래서 해리는 술을 끼고 사는데 이 때문에 그의 사건 해결 능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사건은 해리가 해결한다. 그러나 그의 상처입은 삶은 간신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배경을 가진 해리가 참 오랫만에 행복을 만끽한 것이 전작인 '목마름'에서 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한 하루 하루를 지내는 해리는 아마 속으로 불안했을 수도 있다. 나같은 놈이 이런 삶을 살아도 될까 하고. 그 물음에 작가는 해리에게 그런 삶을 오래 살면 안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이번 작품에서 어김없이 뭔가가 어긋나게 된다. 어쩌면 해리 시리즈를 읽어 온 독자들은 이런 사태가 올 줄 미리 예측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해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로 쫓겨나서 또 술로 인생을 탕진한다. 그 일이 집에서 쫓겨날 일인가 생각도 들고 좀 더 지혜롭게 대처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암튼 사랑에는 잼병인 해리는 어떻게 손을 써 볼려는 노력도 안하고 그냥 그렇게 산다. 그나마 다시 경찰에 복귀해서 사건을 마주하고 있으니 신경이 덜 쓰인달까. 그런데 이번에 그가 마주할 악당은 그가 오래전에 잡은 인물이다.

스베인 핀네. 이른바 '약혼자'라고 불렸던 성범죄자인데 최근에 출소했다. 그리고 그는 공공연하게 해리를 위협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해리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사실 해리가 잡은 범인은 한 두명도 아니고 수 없이 많고 그 중에 약혼자보다 더 험악한 사람들도 많다. 그 사람들이 다 복수를 하려고 했다면 해리는 진작에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을터. 핀네처럼 해리에게 어떤 해꼬지를 하려고 하는 범죄자는 잘 없다. 그 속에 어떤 곡절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핀네가 어떻게 나오던 우리의 해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냐 잘 걸렸다 식이다. 언제든지 박살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해리에게는 겁나지 않을 일이 주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어나면 달라진다. 해리에게는 그것이 가장 두려운데 결국 일이 일어난다. 그가 사랑한 사람이 살해당한 것이다. 뭐 이 정도면 해리가 인생 포기해도 뭐라고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팔자가 사나워도 유분수지 대체 가까운 사람을 얼마나 잃어야 이 지옥에서 벗어날까. 보통 사람 같으면 일상 생활을 못할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해리는 해리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사건 해결을 위해서 전력을 쏟는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약혼자 핀네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공범일까. 아니 그보다 사건 해결 하고 나면 해리는 또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까. 정녕 이 경찰일을 끝내게 될까.

해리 홀레 시리즈는 결국 범죄 소설인만큼 사건 해결을 위한 해리의 집요한 추적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사건은 드러나 있지만 단서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누구도 생각치도 않았던 작은 조각들에서 해리는 단서를 찾고 그것을 하나 하나 이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점에서 그는 정말 탁월한 형사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런 과정을 치밀하게 전개시키는데 여기서 이 책의 묘미가 드러난다. 주인공만 오롯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인물들의 캐릭터도 섬세하게 구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 인물들에게 하나씩 서사를 만들어줌으로써 이들도 그럴듯한 용의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한다. 한명씩 한명씩 씌여진 혐의가 드러나면서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그리고 최후에 남은 용의자는 생각도 못한 인물이다.

작가 '요 네스뵈'는 해리 홀리 시리즈를 비롯해서 여러 범죄 스릴러를 쓴 북유럽 최고의 작가인데 그 이름이 헛되지 않음을 늘 확인시켜준다. 이 작가의 특징은 책 분량이 방대하지만 어디 한 곳 허술한 부분이 없다는 점이다. 분량이 많다보면 중간에 이야기가 늘어진다던지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이 없다.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한 장면 한 장면이 의미있게 그려지고 있기에 이 두꺼운 내용 중에 하나 버릴 곳이 없다. 그만큼 작가의 글쓰기 능력이 대단하다고 볼 수가 있다.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이번 책이 12번째 책인데 주인공인 해리도 성장하고 읽는 독자도 성장하는 것 같다.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진짜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다. 주인공의 쉽지 않은 인생을 보고 있자니 그만 해리를 행복하게 놔 줬으면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는데 작가도 독자도 아직은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이 정도면 노동착취급.

이어지는 시리즈긴 하지만 시리즈의 어느 편을 봐도 독립적인 완결성을 가지기에 읽는데 무리가 없다. 대충 주인공이 능력있는 형사고 인생이 고달프다 정도만 알아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아무 권이나 편하게 읽어도 될 만큼 작가가 완벽하게 구성을 잘 해서 흡입력있게 쓴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진짜 가치를 느끼려면 1편부터 봐야 한다. 젊은 해리 홀레의 모습부터 본다면 이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고 그 때문에 여성들이 빠지게 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뭐 남자라도 해리 정도면 친구로 두고 싶을 정도. 책을 덮으면서 슬그머니 앞의 시리즈를 내어 놓았다. 이번 작품을 포함해서 12편밖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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