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래너 미터 지음, 기세찬.권성욱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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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에게 중일 전쟁은 크게 주목 받은 전쟁이 아니다. 우리가 치열한 독립 운동을 하긴 했지만 해방을 맞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로 미일 전쟁에 관심을 많이 쏟았지 그전의 중일 전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했다. 그러나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은 중일 전쟁에 기인한다는 것을 많이 알지 못한다. 


중국에 발목 잡힌 일본이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서 미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것은 패망의 지름길 이었던 것이다. 분명 일본은 미국의 국력이 자기들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원래 계획이 어그러졌고 그 계획을 망가뜨리게 된 것이 바로 중일 전쟁에서의 중국의 격렬한 저항이다. 


우리에게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된 주요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중일 전쟁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의 항일은 우리 독립 운동사에서도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 전쟁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 중일 전쟁의 전쟁사적인 면에서 그 상황을 상세하게 알 수 있게 하는 책이 있어서(중일전쟁,권성욱지음) 묻혀진 전쟁을 일깨워줬다면 이번에 나온 책은 당시 중국의 정치사적인 면에서 중국이 어떻게 일본에 대항했고 무능의 상징이었던 장제스가 어떻게 전쟁을 수행했는지를 흥미롭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전에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편견들을 깨는 내용이 많다.


만일 이 책의 부제를 짖는 다면 '장제스의 항일 일지'라고 할만큼 전체적으로 장제스의 대일전 수행에 관한 내용이 중점적인데 중일 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장제스는 쑨원을 이은 국민당 최고 권력자였지만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지 못해서 결국 중국 공산당에 패퇴, 대만으로 쫓겨간 독재자라고 알고 있다. 게다가 항일보다는 반공에 치중해서 일본에 고전한 지도자라고 한다. 반면에 중국 공산당은 치열하게 반일 투쟁에 나서서 결국 중국을 구해냈고 그것으로 인해 중국의 주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장제스가 반공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항일에 소홀하지 않았음이 밝혀지고 있다. 오히려 소극적인 국공합작이 아니라 적극적인 국공합작을 통해서 반공을 잠시 접어두고 항일에 집중했음을 이 책에서 잘 알려주고 있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서 일제와 싸웠던 것이다. 그가 정책상의 실수도 많았고 황허강 제방 붕괴와 같은 일을 통해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일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가 일제에 협력하고 굴복하였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이야기 한다.


사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면서 대륙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하였고 1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국으로 짭짤한 전리품도 챙기면서 아시아의 신흥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중국은 신해혁명으로 전제 정치가 종식되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으나 거대한 대륙을 정치적으로 통일하지 못하고 전국 각지에 군벌들이 통치를 하는 일종의 전국 시대가 되었다. 장제스의 노력으로 점차 안정적인 국가를 만들고 있었긴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군벌은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을 그냥 힘으로 권위로 억누르고 있는 형국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1931년 만주 사변을 통해서 만주를 통째로 집어 삼켰다. 이때 장제스가 일본과 평화를 선택한 것을 두고 그 뒤 내내 굴복했다고 하는데 그때는 일본의 그 정도에서 저지시킬려는 의도였을 것 같다. 만주를 완벽하게 통제할 힘을 갖고 있지 않았던 장제스 정부로서는 만주을 잃는다고 해도 일본을 거기에 묶어두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만주가 아니라 대륙 전체를 원했고 만주 사변에 이어서 결국 중일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중일 전쟁이 단순히 중국과 일본과의 전쟁이 아닌 것은 몇 년뒤 일어나는 제 2차 세계 대전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동맹이었던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있던 인도차이나까지 지배력을 넓힌다면 독일의 유럽 침략은 더 수월해질 터였다. 거기에 불가침 조약을 맺어놓고 독일에 뒷통수를 맞은 소련이 온 전력을 유럽에 집중하는 사이, 일본이 만주를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던 오래된 숙적 소련의 시베리아를 침공한다면 세계는 독일과 일본이 지배하는 형국이 될 판이었다. 


이런 시나리오를 정면으로 뭉개버린 것이 중국이다. 중국이 초전에 일본군에 밀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망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내륙으로 도망가면서도 전열을 정비하고 일본에 항전할 준비를 했다. 그 결과 일본은 부분적으로 전투에 이기긴 했지만 결코 전쟁에 이기지 못했다. 중국 대륙의 많은 부분을 점령했지만 그것은 불안한 차지였고 언제 중국군의 반격이 있을지 몰랐다. 이렇게 중국군이 수십만의 일본군을 잡아두고 있었기에 유럽의 전선은 회생할 시간을 벌게 되었고 일본은 부족한 군수물자의 확보를 위해서 인도차이나로 진출을 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고 미국의 압박에 진주만 기습을 단행하게 된다.


2차 대전에서 소련은 독일의 침공을 받아서 수백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큰 희생을 했다. 그런데 소련의 희생은 기억하면서 또 다른 전장에서 장제스의 중국이 겪은 큰 고통은 잘 모르는것 같다. 난징에서의 대학살을 포함해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일제의 침략에 희생되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일본은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기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미국에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일을 다 한것은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정부였다. 국공합작의 한 축인 공산당은 항일보다 국민당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 더 우선순위였다. 그들이 항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들은 일제에 대한 항거가 강하지 않았다. 일본과의 전쟁에 많은 힘을 쏟은 국민당 정부는 곧 이어진 내전에서 힘을 비축한 공산당에게 패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일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세계사적인 면에서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이 겹치고 여러가지 의도한 것이 합쳐져서 일어난 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이 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라는 지은이의 주장이 동의가 될 정도로 중요한 전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이 전쟁 이후로 강제징용이나 징집, 위안부 등 큰 시련을 겪게 되는 시초점이 되었고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결국 해방으로 이어지게 되는 역사적 흐름의 큰 분기점이 되는 점에서 더 많이 알아야 할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당시 상황을 잘 분석해서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쟁을 책 한 권으로 정의내리기는 어렵겠지만 전체적으로 어떤 전쟁이었고 어떤 의미를 갖게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 답을 하기에는 충분하게 쓰여졌다. 번역도 어렵지 않게 잘 되어서 이해하기 쉽게 되었고 역주를 통해서 더 상세하게 상황을 알게 되었다. 참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관련된 책이 잘 없었는데 이 책으로 중일 전쟁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위에서 말한 동일한 제목의 책과 함께 읽는다면 상호보완해서 깊이 있게 전쟁을 들여다 볼 수 있을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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