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영혼의 자유
언젠가 바르르뒤크에서 몽테뉴는 시칠리아의왕 르네가 손수 그린 자화상을 보고는 "그가 크레용으로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펜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는게 타당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누군가 무심코 그건 타당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교묘히 피할 수도 있지만 우리자신의 특성들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기 때문이다. 시작해 보자. 그런데 우리가 그 작업을 시도하자 펜이 우리 손가락에서 떨어져 버린다. 그 작업은 심오하고 신비하며 압도적인 어려움을 지닌 일이다. 어쨌든, 문학 전반을 통틀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 - P324
들이 펜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는 데 성공했을까? 아마도 몽테뉴와 피프스, 그리고 루소뿐일 것이다. 토머스 브라운의 《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는 채색된 유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질주하는 별들과 기이하고 요동치는 영혼을 어렴풋이 보게 된다. 그 유명한 전기에서는 환하게 닦인 거울이 다른 사람들의 어깨들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제임스 보스웰의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 자기 기분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 혼란스럽고 다채롭고 불완전한 영혼의 전체적인 지도와 무게, 색깔, 그리고 주변을 제시하는 것, 이런 기술은 오직단한 사람에게만 있었다. 바로 몽테뉴였다. 수세기가 흐르는 동안, 그 그림 앞에는 언제나 그 깊이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비치는 그들 자신의 얼굴을 보는 군중이 있다. 그들이 더 오래 바라볼수록 더 많은걸 볼 수 있지만, 자신이 보는 게 무엇인지는 결코 말하지 못한다. 새로운 판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 - P325
속되는 매력을 증언한다. 영국의 나바르 협회에서코튼이 번역한 몽테뉴의 《수상록>을 다섯 권 전집으로 재인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코나르 출판사가 몽테뉴의 전집을 아르맹고 박사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다양한 읽을거리들과 함께 묶은 판본으로출간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것, 바로 가까이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 P326
(몽테뉴가 말했다.) 이 길을 닦아 놓은 고대인 두서너 명에 관해 듣는다. 그 이후론 아무도 그 경로를 따라가지 않았다; 마치 영혼의 걸음걸이가 그렇듯 그토록 구불구불하고 불확실한 걸음을 따라가는 것, 그 뒤얽힌 내면적 굽이침의 어두운 심연에 침투하는것, 그토록 많고 작은 민첩한 움직임을 선택하고 붙잡는 것은 보기보다 훨씬 더 울퉁불퉁한 길이다. 이것은 새롭고 특별한 과업이며 세상의 평범하고 가장권장되는 일들로부터 우리를 물러나게 한다.
우선, 표현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모두 생각이라고 불리는 이상하고 즐거운 과정을 탐닉한다. 하 - P326
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걸 말하려고 하면 심지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우리가 전달할 수있는게 얼마나 적은가! 그 유령은 우리가 그 꼬리에소금을 뿌릴 수 있기도 전에 우리 정신을 통과해 지나가서는 창문을 통해 나가 버리거나 그게 어슬렁거리는 불빛으로 잠시 밝혀 줬던 깊은 어둠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으며 되돌아간다.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억양은 우리의 말을 보충해 주고 말투에 담긴 개성으로 언어의 미약함을 좋은 인상으로 바꾼다. 하지만 펜은 경직된 도구다. 말할 수 있는 게 아주 적다. - P327
펜은 자기만이 가진 모든 종류의 습관과 예법이 있다. 그것은 독재적이기도 하다. 언제나 평범한 사람을 예언자로 만들고 인간 말하기의 자연스러운 비틀대는 실수를 펜들의 엄숙하고 위엄 있는 행진으로 변화시키곤 한다. 수많은 죽은 사람 중에 몽테뉴가 그토록 억누를 수 없는 쾌활함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책이 바로 그 자신이란 사실을 결코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그는 가르치길 거부했다. 그는 설교하길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걸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의 모든 노력은 자기 자신을 기록하고 소통 - P327
하고 진실을 말하려는 것이었으며 그 일은 ‘보기보다 더 울퉁불퉁한 길‘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전달하기‘의 어려움을 넘어서 ‘자기 자신이 되기‘라는 최고의 어려움이 있기때문이다. 이 영혼 또는 우리 내부의 삶은 우리 바깥의 삶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용기 내 영혼에게 무엇을 생각하는지 물으면 영혼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의 정반대로 말한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은 늙고 허약한 신사들은 집에 머물면서부부의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를 교화해야만 한다고 오래전에 결론지어 버렸다. - P328
반대로, 몽테뉴의 영혼은 나이가 들면 우리는 여행해야만 하며 정확히, 사랑에 기초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결혼 생활은 인생의 종말로 가면서 끊어지는 게 더 나은 형식적인 구속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에 관해서도 정치인들은 항상 제국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미개인들을 문명화하는 도덕적 의무를 설파한다. 하지만 몽테뉴는 분노를 터뜨리며 멕시코 속 스페인 사람들을 보라고 외쳤다. "너무 많은 도시가 파괴됐고 너무 많은 민족이 몰살됐으며...... 세계의 가장 풍요롭고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 진주와 후추 - P328
를 운송하기 위해 다 뒤집어 엎어졌다! 무정한 승리들!" 그러고는 농부들이 찾아와 상처로 죽어 가는 한사람을 발견했는데 재판관이 그들에게 죄를 묻는 건 아닐까 두려워서 그를 버려 두었다고 말했을 때, 몽테뉴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인류애적인 임무는 그들을 곤란에 빠뜨렸을게 분명하다... 법률처럼 그토록 많이, 그토록 심하게, 그토록 일상적으로 결함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P329
여기서 몽테뉴의 영혼은 침착성을 잃고 그에게 더욱 감각할 수 있는 형태의 큰 걱정거리들, 즉 인습과 예법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주된 건물로부터 떨어져 있지만 사유지 전체가 보이는 넓은 전망을 지닌 탑의 안쪽 방에서 영혼이 불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 영혼을 주의해서 보라. 실제로 영혼은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생명체다. 그것은 영웅적이기는커녕 풍향계처럼 변덕스럽고 "수줍어하면서 무례하고, 정숙하면서 욕정이 가득하고, 재잘재잘 지껄이면서 말이 없고, 근면하면서 섬세하 - P329
고, 기발하면서 진지하고, 우울하면서 유쾌하고, 거짓말하면서 진실하고, 아는 게 많으면서 무지하고, 자유로우면서 탐욕스럽고, 방탕하다." 한마디로, 너무 복잡하고 너무 불명확하며 사람들 있는 데서 그녀를 대신해 의무를 다하는 버전과 거의 일치하지않으므로 어떤 사람은 그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데만 그의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그 추적이 주는 즐거움은 세속적인 전망에 끼칠 수 있는 어떤 피해보다 더 많이 보상해 준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이후로는 독립적이다. 그래서 그는 결코 지루할 틈 없이 삶이 그저 너무 짧을 뿐이며 깊지만 온화한 행복에 푹 젖어 있다. - P330
다른 사람들은 예법의 노예로서 일종의 꿈속에서 삶이 그들을 슬쩍 빠져나가 버리도록놔두는 동안에 그는 혼자 살아 있다. 일단 순응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하는 걸하면 혼수상태가 영혼의 모든 예민한 신경과 기능에 몰래 스며든다. 영혼은 순전히 외면적인 쇼가 되고내부는 텅 비어 있게 된다. 둔하고 무감각하며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이 삶의 예술에 있어서 위대한 장인에게 그의 비밀을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 P330
그는 우리에게 우리 탑의 안쪽 방으로 물러나서 거기서 책들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공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굴뚝 위로 올라가듯이 공상들을 계속 좇으며 세상의 통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라고 조언할게 분명하다. 물러나기와 명상하기, 이런 게 그의 처방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인게 틀림없다. 하지만 아니다. 몽테뉴는 결코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무거운 눈꺼풀이 덮인 두 눈에 꿈꾸는 듯 야릇한 표정을 한 그 미묘하며 반쯤 웃고 반쯤 우울한 남자로부터 명백한 대답을 끄집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 P331
책과 채소와 꽃과 함께하는 전원에서의 삶은 지극히 따분한 게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녹색 완두콩이 다른 사람들의 완두콩보다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알수 없었다. 파리는 그가 온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장소였다. "그 결점과 흠까지도." 독서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어떤 책도 한 번에 한 시간 이상 읽을수 있는 경우가 드물었고 기억력이 너무 나빠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책으로 학습하는 일은 전혀 자랑할 만한 게 아니다. 학문적 성취의 경우, 어느정도에 달할까? 그는 항상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렸 - P331
고 그의 아버지는 그들에게 긍정적인 존경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는 비록 그들에게 그들의 뛰어난 순간들과 열정적인 표현, 그리고 그들의 비전이 있을지라도 가장 똑똑한 사람들도 어리석음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린다는 사실을 관찰해 왔다. 당신 자신을 관찰해 보라. 한순간 당신은 높이 상승한다. 다음 순간 깨진 유리가 당신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극단적인 건 모두 위험하다. 아무리 진흙투성이더라도 바퀴 자국이 흔한, 길의 가운데에 있는 게 최상이다. 글을 쓸 때 평범한 단어들을 선택하고 열광적 문장과 웅변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시는 감미로우며 최고의 산문은 주로 시로 가득찬 게 사실이다. - P332
따라서 우리는 민주적인 단순성을 목표로 하려는듯 보인다. 우리는 채색된 벽과 널찍한 책장이 있는, 탑 안의 우리 방을 즐길 수 있지만 아래 정원에서는 오늘 아침 자기 아버지를 묻은 한 남자가 땅을 파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삶을 살고 진정한 언어를 말하는 이는 바로 그 남자나 그와 동류인 사람들이다. 확실히, 그 안에는 진실의 요소가 있다. 테이블 아래쪽에서는 사건들이 아주 세세하게 말해진다. 어쩌면 많이 배운 사람들보다 무지한 사람들 사이에 중 - P332
요한 자질들이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또, 하층민은 얼마나 비열한가! "무지와 부정, 그리고 변덕의어머니. 현명한 사람의 삶이 바보들의 판단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게 타당한가?" 그들의 정신은 약하고안이하며 저항의 능력이 없다. 그들이 무엇을 알아야 편리한지 말해 줘야만 한다. 그들은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진리는 오직 "고귀하게태어난 영혼"만 알 수 있다. 그런데 몽테뉴가 좀 더 정확하게 우릴 깨우치려고 한다면 우리가 본받아야하는, 이 고귀하게 태어난 영혼들은 누구인가? - P333
하지만 아니다. 그는 "나는 가르치지는 않고 이야기할 뿐이다."라고 한다. 사실, 그가 자기 영혼에 대해 "혼동도 혼합도 없이 완전히 단순하고 확실하게한마디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때, 실제로 자기영혼이 자신에게 매일 점점 더 어둠 속에 있게 될 때그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한 가지 특성 또는 원칙은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규칙을 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16세기 프랑스 수필가 에티엔드라보에티처럼, 우리가 닮고 싶어 하는 영혼들은 언제나 가장 유연한 영혼들이다. "단 하나의 방식에 구속되고 필요 - P333
로 인해 강요받는 건 존재하는 것이지 살아 있는 건아니다." 법률은 인습일 뿐이지 인간 충동의 광범위한 다양성과 혼란을 따라갈 능력은 전혀 없다. 습관과 관습도 자기 영혼에게 자유로운 놀이를 허락해줄 용기가 없는 소심한 기질의 사람들을 지지해 주기 위해 고안된 편의일 뿐이다. 하지만 사적인 삶을 살면서 그런 삶을 우리 소유물 중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한없이 여기는 우리에게는 점잔 빼는 태도만큼 의심스러운 게 없다. 우리가 확언하고 점잔 빼고 법률을 정하자마자 우리는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남들을 위해 살고 있지 우리 자신을 위해 살고 있지 않다. - P334
우리는 공적인 업무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명예롭게 여기고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타협을 허용한 걸 가엾게 여겨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경우엔, 명성과 명예, 남들에 대한 의무 아래 놓인 모든 임무를 날려 버리자.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가마솥 위에 우리의 매혹적인 혼란, 충동의 잡동사니, 끊임없는 기적을 부글부글 끓이자, 영혼은 매초 경이로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움직임과 변화는 우리 존재의 핵심이다. 경직성은 죽음이다. 순응성은 죽음이다. 우리 머릿속에 떠 - P334
오르는 것을 말해 보자, 우리 자신을 그대로 말해보자, 우리 자신을 반박해 보자, 가장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뱉어 보자, 그리고 세상이 행동하거나생각하거나 말하는 걸 신경 쓰지 말고 가장 환상적인공상들을 쫓아가 보자. 삶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물론 질서가 있다. 이 자유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지만 통제돼야만한다. 그런데 우리를 돕도록 어떤 권위에 호소해야할지는 알기 어렵다. 개인적 의견이나 공적 법률의모든 규제가 조롱받아 왔고 몽테뉴는 인간 본성의비참함과 나약함, 그리고 그 허영심에 대해 경멸을퍼붓길 그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면우리를 안내하도록 종교에 의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은 몽테뉴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다. ‘어쩌면‘과 ‘내 생각에는‘, 그리고 인간적 무지의경솔한 가정들을 제한하는 그 모든 단어가 그런 표현들이다. 그런 단어들은 대놓고 말하기에는 매우무분별할 수 있는 의견을 감추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든 걸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암시만 하는게 적당한 일들이 있다. 우리는 이해할수 있는 아주 소수의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분명히,
오르는 것을 말해 보자, 우리 자신을 그대로 말해보자, 우리 자신을 반박해 보자, 가장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뱉어 보자, 그리고 세상이 행동하거나 생각하거나 말하는 걸 신경 쓰지 말고 가장 환상적인 공상들을 쫓아가 보자. 삶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질서가 있다. 이 자유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지만 통제돼야만한다. 그런데 우리를 돕도록 어떤 권위에 호소해야 할지는 알기 어렵다. 개인적 의견이나 공적 법률의 모든 규제가 조롱받아 왔고 몽테뉴는 인간 본성의 비참함과 나약함, 그리고 그 허영심에 대해 경멸을 퍼붓길 그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를 안내하도록 종교에 의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은 몽테뉴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중 하나다. ‘어쩌면‘과 ‘내 생각에는‘, 그리고 인간적 무지의 경솔한 가정들을 제한하는 그 모든 단어가 그런 표현들이다. 그런 단어들은 대놓고 말하기에는 매우 무분별할 수 있는 의견을 감추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든 걸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암시만 하는게 적당한 일들이 있다. 우리는 이해할수 있는 아주 소수의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분명히, - P335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적인 인도를 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감시자, 내면의 보이지 않는 검열관, 즉 ‘마음속의 주인‘이 있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으므로 그의 비난은 다른 어떤 비난보다 훨씬 더 두렵다. 그가 인정해주는 소리는 그 무엇보다 더 감미롭다. 이게 우리가 복종해야만 하는 재판관이다. 이게 우리가 고귀하게 태어난 영혼의 은총인 그 질서를 달성하도록도울 검열관이다. "이게 절묘한 삶, 개인적인 생활속에서도 질서가 유지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이 마음속 검열관은 자기만의 빛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어떤 내적 균형에 의해 위태롭고 변화무쌍한 평형을 달성할 것이다. 이 평형 상태는 통제하는 반면 영혼이 탐색하고 실험하는 자유는 전혀 방해하지않는다. 다른 안내도 없고 선례도 없어 확실히 공적인 삶보다 사적인 삶을 사는게 훨씬 더 어렵다. 그것은 각 사람이 따로따로 배워야만 하는 예술이다. 어쩌면 고대인 중에 호머와 알렉산더 대왕, 에파미논다스, 그리고 근대인 중에 보에티 같은 두세 사람의 사례가 우릴 도울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이 - P336
다. 그리고 그 예술이 효과를 발휘하는 재료 자체가변화무쌍하고 복잡하며 한없이 신비롭다. 바로 인간본성이다. 우리는 인간 본성과 가깝게 지내야만한다. "......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만 한다." 우리를 동료 인간들과 끊어 놓는 어떤 기이한 행동이나 고상한 태도를 두려워해야만 한다. 이웃 사람들과 자신의 운동이나 건물, 또는 다툼에 관해 편하게 담소를 나누고 목수와 정원사의 이야기를 정말로 즐기는 사람은 축복받았다.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주된 본분이다. 교제와 우정이 우리의 주된 기쁨이다. 독서는 지식을 획득하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대와 지역 너머까지 우리의 교제를 확장하려는 것이다. 그런 기적들이 세상에 있다. 어쩌면 평화를 불러오는 신화속 새들과 미지의 땅들, 가슴에 개의 머리와 눈을 가진 남자들, 그리고 법률과 관습이 우리 자신보다 훨씬 우월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결핍된 어떤 감각을 지닌 존재들에게는 명백하게 보이는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모든 모순과 모든 제한에도 불구 - P337
하고 확실한 무언가가 있다. 이런 산문들은 한 영혼을 소통하려고 시도한다. 최소한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분명히 말한다. 그가 원하는 건 명성이 아니다.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그를 인용하게 되는것 역시 아니다. 그는 시장 한가운데 동상을 세우고있는 게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영혼을 소통하길 바랄 뿐이다. 소통은 건강이고 소통은 진리며 소통은 행복이다. 나누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다. 가장 병들어 있는 감춰진 생각들로 대담하게 내려가거기에 불을 밝히는 것,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것, 아무것도 가장하지 않는 게 우리 의무다. 만약 우리가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무지하다면, 만약 우리의 친구들에게 그걸 알게 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 왜냐하면 내가 아주 확실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듯이, 우리의 친구들을 잃었을 때 가장 다정한 위안이 되는 건 우리가 그들에게 해야 할 어떤 말도 잊지 않았고 그들과 완벽하고 완전하게 소통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338
여행할 때 "알지 못하는 공기의 전염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면서" 침묵과 의심으로 자신을 감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저녁 식사할 때 집에서 먹는것과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모든 풍경과 관습도 자기 마을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다면 나쁘다. 그들은 오직 되돌아오기 위해 여행한다. 그것은 여행을 출발하는 완전히 잘못된 방식이다. 우리는 밤을 어디에서 보낼 건지, 또는 언제 돌아오자고 제안할지 아무런 고정된 생각 없이 출발해야만 한다. 그 여행만이 전부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드문 행운으로서, 출발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와 함께 가고 우리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대로 말할 수있는 우리와 같은 종류인 어떤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즐거움은, 우리가 그것을 나누지 않는다면, 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리거나 두통이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있긴 하지만 즐거움을 위해서 약간의 질병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는건 언제나 가치 있다. "즐거움은 수익의 주요 종류중 하나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한다면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좋은 걸 하는 것이다. 의사들과 현명한 사람들이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 P339
음울한 철학에 내버려두자. 평범한 남자와 여자인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감각 중 하나를 사용해서 자연에게 그 너그러움에 대해 감사를 되돌려주자. 가능한 한 많이 우리의 상태를 바꿔주고 지금은 이쪽을, 지금은 저쪽을 번갈아 따뜻하게 해주며 해가 지기 전에 젊은이의 키스와 로마 서정시인 카탈루스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메아리를 충분히 만끽하자. 모든 계절이 좋아할 만하다. 비가 오든 맑든, 적포도주 든 백포도주 든, 함께든 혼자든 삶의 기쁨을 한탄스럽게 단축하는 잠조차도 꿈들로 가득차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산책, 담소, 자기 과수원에서의 고독처럼 가장 흔한 행동들도 정신과의 결합으로 고양되고 빛나게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으며, 아름다움은 선함에서 고작 손가락 두개 너비만큼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육체적 정신적ㅈ건강의 이름으로 여행을 끝내는 걸 숙고하지 말자. 양배추를 심고 있든 말 잔등에 타고 있든 우리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하자. 또는 어떤 오두막으로 몰래들어가 거기서 낯선 사람들이 우리 눈을 감게 하자. 하인 하나가 흐느끼거나 손길 하나가 닿아서 우리는감정을 주체 못하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 P340
것으로, 우리가 전혀 항의하지 않고 애통해하지도 않는 소녀들이나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고 우리가 평소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죽음이 우리를 발견하게 하자. "게임과 축제, 농담, 흔하고 인기 있는 대화, 음악, 그리고 사랑의 시를 즐기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하자. 하지만 죽음 얘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건 삶이다. 이 산문들이 그 끝에 도달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중단되면서 점점 더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삶이다. 죽음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자아, 우리의 영혼, 존재의 모든 사실을 점점 더 열중시키는 게 삶이다. 여름과 겨울에 실크 스타킹을 신는 것, 포도주에 물을 타는 것, 저녁 식사 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정해 놓은 유리잔으로 마셔야 하는 것, 안경을 써 본적 없는 것, 목소리가 큰 것, 한 손에 잘 휘는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것, 혀를 깨무는 것, 발을 안절부절못하는 것, 귀를 긁는 습관이 있는 것, 맛이 변하기 시작한 고기를 좋아하는 것, 냅킨으로 치아를 문지르는것(감사하게도 치아들에는 좋다!), 침대에 커튼을 달아야만 하는 것, 그리고 좀 별나게도 처음엔 무를 좋아했다가 싫어하게 됐고 이제 다시 좋아하는 것 등 모 - P341
든 사실을. 어떤 사실도 손가락들 사이로 빠져나가게 할 만큼 지나치게 작지 않으며, 사실 자체의 흥미 외에도 우리는 상상력의 힘으로 사실을 바꿀 수 있는 이상한 권능이 있다. 어떻게 영혼이 항상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실체적인 것을 텅 비게 만들고 약한 것을 견실하게 만드는지, 드넓은 대낮을 꿈들로 채우는지, 현실만큼 환영들로도 잔뜩 흥분하는지,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사소한 것으로 장난치는지 관찰해 보라. 영혼의 이중성과 복잡성도 관찰해 보라. 영혼은 어떤 친구의 상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동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슬픔 속에서 달콤씁쓸하고 심술궂은 즐거움도 느낀다. 영혼은 믿음을지니면서 동시에 믿지 않는다. 특히 젊은 시절에 영혼은 기분에 대단히 영향을 받기 쉽다는 걸 관찰하라. 부유한 사람도 소년일 때 그의 아버지가 돈을 부족하게 주었기 때문에 도둑질한다. 이 벽은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건축하길 좋아했기 때문에 세운다. 한마디로 영혼은 자신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과 동정심으로 온통 꾸며져 있다. 하지만 1580년 당시에도 영혼이 어떻게 작 - P342
동하는지 또는 영혼이 무엇인지에 관해 어떤 분명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무엇보다 영혼이 가장 신비롭고 우리의 자아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괴물이며 기적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그렇게 겁쟁이고 평탄하고 인습적 방식들을 좋아한다. "나 자신을 더 추적하고 알수록 내 결함이나를 더욱 놀라게 하고 나 자신을 더 이해하지 못하게된다." 관찰하라, 끊임없이 관찰해 보라, 그러면 잉크와 종이가 존재하는 한 몽테뉴는 "그침 없이 애쓰지도 않고"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이 삶의 예술에 대한 위대한 장인에게 우리가 던지고 싶은 마지막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짧고 끊어진, 길고 박식한, 논리적이고 모순된 진술들로 된 이 빼어난 전집 안에서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투명해지는 베일을 통해, 매일 매년 계속 울리는 영혼의 맥박과 리듬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 삶이라는 모험적인 일에 성공했던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자기 조국에 봉사한 뒤 은퇴해 살았으며 지주이자 남편, 그리고 아버지였다. 왕들을 즐겁게 했고 여성들을 사랑했으며 옛 책들을 읽으며 홀로 몇 시간동안 명상에 잠겼다. 가장 미묘한 것들에 대한 끊 - P343
임없는 실험과 관찰로써 그는 마침내 인간 영혼을 구성하는 이 모든 변덕스러운 부분들에 대한 기적적인 조정을 해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손가락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붙잡았다. 그는 행복을 성취했다. 그가 말하길, 만약 자신이 다시 살아야만 했다면, 또 똑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의 두 눈 아래 공공연히 살아 있는 영혼의 매혹적인 장관을 지켜보면서 질문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즐거움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인가? 영혼의 본성에 대한 이 압도적인 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남들과 소통하고 싶은 이 지배적인 욕구는 왜 생기는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저기 다른 어딘가에 이 신비에 대한 어떤 설명이 있는가?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없다. 오로지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이 하나 더 있을 뿐이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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