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1860-1904). 러시아의 따간로그에서 태어났다. 모스끄바대학 의학부를 졸업한후 의사로 일하며작품들을 집필했다. 러시아가 낳은 최고의 단편작가이자 극작가로 꼽힌다. 대표작으로「개를 데리고 다니는부인」, 「6호 병동」, 「벚꽃동산」등이 있다.
병원의 마당에 그리 크지 않은 별채가 있다. 우엉과 엉겅퀴와 야생 대마의 무성한 수풀이 별채를 둘러싸고 있다. 별채의 지붕은 녹이 슬어 적갈색이고, 굴뚝은 반쯤 주저앉았고, 입구의 계단은 썩어 잡초로 뒤덮여 있으며, 벽에 바른 석회는 흔적뿐이다. 별채의 앞면은 병원과 마주 보고있고, 뒷면은 벌판을 향해 있다. 별채와 벌판 사이에는 못이 박힌, 병원의 회색 울타리가 쳐 있다. 날카로운 끝이 위를 향하고 있는 못들과 울타리, 그리고 별채 자체의 불길하고 음침한 외관은 이 나라의 병원과 감옥의 건물에서만볼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만일 엉겅퀴에 찔리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면, 함께 좁은 오솔길을 걸어 별채로 가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여다보자. 첫 번째 문을 열면 우리는 현관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의 벽과 뻬치까 옆에는 병원의 허섭스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매트리스, 파란 줄무늬가 그려 - P9
진 낡고 찢어진 환자복의 윗도리와 바지들, 닳아 해진 신발들, 이 모든 누더기들이 구겨지고 엉킨 채 산더미같이쌓이고 썩어서 질식할 듯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이 허섭스레기 위에 언제나 문지기 니끼따가 입에 파이프를 물고 누워 있다. 니끼따는 색 바랜 견장을 달고 있는, 늙은 퇴역 군인이다. 여위고 험상궂은 얼굴, 초원의 양치기 같은 인상을 주는 처진 눈썹, 붉은 코, 그리고 그리 크지않은 키에 마른 데다가 힘줄이 불거져 있으며, 태도는 매우 위압적이고 주먹은 단단했다. 그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질서를 사랑해서 <그들>은 맞아야만 한다고 확신하는, 그런 단순하고 적극적이며 맹종하고 우둔한 부류의 사람에속한다. 그는 얼굴이건 가슴이건 등이건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면서, 그렇지 않으면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 P10
당신이 더 들어가면, 현관을 제외한 별채 전체를 차지하는 크고 넓은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곳의 벽에는 지저분한 파란색이 아무렇게나 발려 있고, 천장은 굴뚝 없는농가에서처럼 그을음투성이다. 겨울이면 분명히 뻬치까의 연기로 자욱해질 것이다. 창문마다 안쪽에 쇠창살이 보기 흉하게 설치되어 있다. 바닥은 회색이고 군데군데 갈라져 있다. 소금에 절인 양배추와 램프 심지의 그을음이 있고 빈대와 암모니아의 악취 때문에 막 방에 들어서면 당신은 동물 우리에 들어간듯한 착각이 들 것이다. - P10
그의 외모는 무디고 거친 농부 같다. 얼굴 생김새, 턱수염, 헝클어진 머리카락, 건장하고 투박한 체격은 배가 불룩하고 절제할 줄 모르며 고집이 센, 대로변에 있는 선술집의 주인을 연상시킨다. 얼굴은 험상궂은 데다 파란정맥이 드러나 있고 눈은 작고 코는 빨갛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손과 발은 거대하다. 그 주먹으로 한 대 맞으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 그런데 그의 발소리는 조용하고 걸음걸이는 조심스러우며 알랑거린다. 좁은 복도에서 마주치면 그는 언제나 먼저 멈춰 서서 길을 내주고, 기대되는 굵은 목소리가 아닌 높고 가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실례합니다! 하고 말한다. 그의 목에는 조그만 혹이 있어 풀 먹인빳빳한 칼라가 달린 옷을 입지 못하고 늘 부드러운 리넨이나 면으로 만든 셔츠를 입고 다닌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의사답지 못하다. 10년째 언제나 같은 양복을 걸치고다닌 탓에 유대인 가게에서 산 새 옷도 그가 입으면 헌 옷처럼 낡고 구깃구깃해 보인다. 그리고 언제나 똑같은 프록코트를 입고 환자를 보고 식사를 하고 초대받은 곳을 다니는데, 그것은 그가 인색해서가 아니라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 P31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으셨나요? 당신의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여기서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래 봐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다시 붙잡힐 테니까. 사회가 범죄자나 정신병자와 같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들면, 그것을 이겨 낼 수 없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입니다.」「여기에 있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감옥과 정신병원이 있는 한, 누군가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나라도,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구라도 기다려 봅시다. 먼 미래에 감옥과 정신 병원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창문의 쇠창살과 환자복도 사라지겠죠. 물론, 그날은 빠르든 늦든 올겁니다.」 - P57
들에게 하느이반드미뜨리치가 눈을 반짝거리며 일어나 창문을 향해 두 팔을 뻗고 격앙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철창 안에서 그대들을 축복한다! 정의 만세! 나는 기쁘도다! 「내가 보기에는 기뻐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소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말했다. 이반 드미뜨리치의 동작이 연극적으로 여겨졌지만, 그러면서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감옥과 정신 병원이 사라지고, 당신의 말처럼정의가 승리한다고 해도, 사물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자연의 법칙은 그대로일 겁니다. 사람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프고 늙고 죽을 겁니다. 찬란한 서광이 당신의 삶을 비춘다 해도 결국은 관 속으로 들어가 땅속에 묻히게 될 겁니다.」「그렇지만, 불멸은?」「오, 불멸이라니!」「당신은 믿지 않지만, 나는 믿소.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인지 볼테르의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작품 속의누군가가, 신이 없다면 사람이 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지. 만일 불멸이 없다면 사람의 위대한 지성이 언젠가 불멸을 발명해 낼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소.」 - P58
「당신이 언급하는 스토아 철학자들은 뛰어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학설은 2천 년 전에 이미 폐기되어 조금도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진전이 없을겁니다. 그것은 실용적이지 못하고 또한 전혀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설이라고 하면 무조건 탐닉하고 연구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성공을 거뒀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부와 쾌적한 생활에 대한무관심,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무시를 가르치는 그 학설은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지요. 왜냐하면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도 쾌적한 생활도 알지 못하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경멸하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 자체를 무시하라는 뜻이 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는 굶주림, 추위, 모욕, 상실, 죽음에 대해 햄릿처럼 공포를 느끼도록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느낌안에 삶 자체가 있습니다. 삶을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스토아 학설은 결코 미래를 가질수 없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삶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 - P68
까지 투쟁, 통증에 대한 민감한 반응,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 등등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이반드미뜨리치가 갑자기 생각의 끈을 놓쳐서 하던 말을 그치고 짜증스럽게 이마를 문질렀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군. 그가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그렇지! 내가하려던 말은, 스토아 학파의 누군가가 가까운 사람이 팔리지 않게 하려고 자기 자신을 노예로 팔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바로, 스토아 철학자도 자극에 반응을 보였다는 뜻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그런 고결한 행위를 하려면 분노하는 마음, 동정하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공부한 모든 것을 이곳 감옥 안에서 잊어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좀 더 기억해 냈을텐데. 그렇지, 그리스도는 어땠습니까? 그리스도는 울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하고, 아니면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현실에 반응했죠. 그분은 고통을 미소로 맞이하지 않았고, 죽음을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 하고 기도드렸습니다.」 - P69
의사는 걸어다니며 구경하고 먹고 마시기도 했지만, 그의 감정은 단 하나, 미하일 아베랴니치에 대한 불편함뿐이있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친구로부터 벗어나 쉬고 싶었고 그를 떠나 숨고 싶었지만, 친구는 그에게서 한 발짝도떨어지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볼거리가 없을 때에는 이야기로즐겁게 해주려고 했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이틀은 참았지만, 사흘째 되는 날에는 몸이 좋지 않아 하루 종일 숙소에 있겠다고 친구에게 선언했다. 친구는 그렇다면 자신도숙소에 남겠다고 말했다. 사실,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다. 쉬지 않고는 다리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얼굴을 등받이 쪽으로 돌리고 소파에 누워, 이를 악물고 친구의 말을 들었다. 미하일 아베랴니치는 프랑스가조만간 독일을 박살낼 거다, 모스끄바에는 사기꾼들이 많다, 말의 외양만 봐서는 말의 장점들을 판단할 수 없다고 열심히 이야기했다. - P89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창문으로 가서 벌판을 바라보았다. 이미 어둠이 내렸고, 지평선 오른쪽에서는 자줏빛의차가운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병원 울타리에서 가까운, 1백 사전이 채 되지 않는 곳에 돌로 된 벽으로 둘러싸인높고 흰 건물이 서 있었다. 감옥이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무서워졌다. 달도, 감옥도, 못이 박힌 울타리도, 멀리 보이는 화장터의 불길도 무서웠다. 등 뒤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뒤를 돌아보니, 빛나는 별 모양의 훈장을 가슴에 단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교활하게 눈을 찡긋했다. 그것도 무서웠다. - P111
들어와, 바닥에 그물 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섬뜩했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숨죽이고 누워 있었다. 다시 얻어맞을까 봐 공포에 떨었다. 마치 누군가 낫을 들고 와 그의 몸을 찌르고, 가슴과 창자를 여러 차례 비트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워서 그는 베개를 이빨로 악물었다. 혼란스러운가운데, 불현듯 견딜 수 없이 무서운 생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와 같은 고통을, 희미한 달빛을 받아 검은 그림자처럼 보이는 이 사람들이 몇 년이나 매일같이 겪었을 것이틀림없다. 어떻게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그는 고통을 몰랐고, 또 고통에 대한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니끼따처럼 완고하고 투박한 양심이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온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지르며, 니끼따와 호보또프와 사무장과 보조의사를 죽이고 자살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선 작은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다리도 꿈쩍할 수 없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셔츠와 환자복을 잡아 찢다가, 의식을 잃고 침대에 쓰러졌다. - P116
저녁 무렵,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뇌일혈로 죽었다. 처음에 그는 심한 오한을 느꼈고 구역질이 났다. 뭔가 혐오스러운 것이 몸속 전체로, 심지어 손가락 끝까지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위장에서부터 머리로 뻗치더니 눈과 귀로 넘쳐흐르는 듯했다. 눈앞이 파래졌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자신에게 마지막이 찾아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반 드미뜨리치, 미하일 아베랴니치와 수백만의사람들이 불멸을 믿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하지만 그는 불멸을 원치 않았다. 그는 아주 잠깐 불멸에 관해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전에 책에서 읽은 아주 아름답고 우아한 사슴떼가 그의 옆을 뛰어지나갔다. 아낙네가 그에게 등기 우편을 쥔 손을 내밀었다. 미하일 아베랴니치가 뭔가를 말했다. 그리고 모든것이 사라졌고,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의식을 영원히 잃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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